2023/06/28

독일은 형식적인 절차가 중요하고, 건조해요. 건축주와 미팅을 한다면 오늘 날씨가 어떠니 따위를 딱 두 마디 하고 세 번째 문장부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식이에요. 또 한번 계획과 협의를 끝내면, 변수 없이 그대로 실현하는 미덕을 중시해요. 그러기 위해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미리 정하기 때문에 계획 과정에 시간을 몇 배로 많이 들이고요. 가끔 예측 못한 상황으로 무언가 틀어져도 원래 계획대로 끌고 나가려는 의지가 강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죠. 한국은 이보다 확실히 유연한 것 같아요. 작년에 하동을 여행하는데 농촌 풍경이 참 아름다웠어요. 집 위에 가벼운 철제 구조를 올려 고추를 말린다거나 하는 의외성이 쌓이면서 전체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수원 성곽 옆 주택(2023) 프로젝트로 한국에서는 처음 설계부터 시공의 전 과정을 맡아 했는데, 현장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시시각각으로 많은 것이 바뀌는 상황이 계속되더라고요. 현장의 분들과 끝없는 '딜'을 해야 한달까요? 어쩔 때는 이런 과정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설계안과 실제가 너무 멀어져버리거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_ '뿌리가 땅을 말할 때: 김기준', <SPACE(공간> 2023년 6월호 인터뷰 중


베를린에서 아뜰리에를 운영하는 김기준 건축가의 공간 인터뷰. 

동네에 있다는 '수원 성곽 옆 주택'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