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8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이미상,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제 소설에는 '한 방'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단편소설 특유의 좁은 지면 탓에 문장을 아껴 쓰며 굽이굽이 나아가다 순간 탁, 터뜨리는 에피파니라고 해야 할까요, 와우 포인트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부족하다고 하잖아요. 모든 문장을 쭉 빨아올리며 꼭대기에서 탁 터뜨리는, 푹 꺼뜨리기도 하지만 그건 비위 약한 작가들을 위한 탁 터뜨림이고요. 여하튼 결정적인 한 장면,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한순간, 우리가 책을 덮고 고개를 젖혔을 때 공중에 떠 있는 그 뭐가 제 글에는 없대요." (10쪽) 


"왜긴요. 딴 애들이 불쌍해서죠. 소설에 쓴 모든 문장이 그 '한 방'을 위해 쓰이는 것 같잖아요. 그 한순간을 들어올리기 위해 팔을 벌벌 떨며 벌을 서고 있는 것 같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뭐 소설계의 대장장이가 되어 모든 문장을 평평하게 두들겨 신scene들의 평등을 꾀하겠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럴 주제도 못 되고요, 그저 모든 자잘함을 지우며 홀로 우뚝 선 한순간을 지지하는 것을 찜찜해한다는 거죠." (11쪽)


"백 마디 말보다 이런 뇌리에 박힌 한순간이 결국 인간을 바꾸는 거 아닐까? 나만 해도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영상을 보지 않고 있어. 보면 바뀌니까. 고기를 못 먹게 될 거야." (14쪽)


'그러니까 이런 거란 말이지.' 목경이 눈을 뜨며 생각했다. 먼훗날, 숨넘어가기 직전, 누군가 자신에게 오늘에 대해 묻는다면 목경은 이 이미지만을 기억할 것이다. 처음에 들었던 두 사람의 대화는 잊고. (14쪽)


근본적으로 그의 소설론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건 "영원히 일회용 비닐봉지와 용기를 쓰지 않겠다" "'되도록'은 안 된다"(13쪽)며 온몸으로  짐을 잔뜩 안고 떠난 세번째 여자의 목소리다. 그 안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쓸 수 있는 것을 쓰겠다는 마음이다. (소유정 해설, 59쪽) 


그러나 이 소설은 힘이 세서 그런 물음표들을 다 쓸어버린다. .... 작가는 두 진영(?) 중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모두가 그를 자기편이라고 믿게 만든다. 좀 잊고 산 거 같은데, 원래 이런 게 소설 아닌가. (신형철 심사평, 347~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