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설에는 '한 방'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단편소설 특유의 좁은 지면 탓에 문장을 아껴 쓰며 굽이굽이 나아가다 순간 탁, 터뜨리는 에피파니라고 해야 할까요, 와우 포인트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부족하다고 하잖아요. 모든 문장을 쭉 빨아올리며 꼭대기에서 탁 터뜨리는, 푹 꺼뜨리기도 하지만 그건 비위 약한 작가들을 위한 탁 터뜨림이고요. 여하튼 결정적인 한 장면,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한순간, 우리가 책을 덮고 고개를 젖혔을 때 공중에 떠 있는 그 뭐가 제 글에는 없대요." (10쪽)
"왜긴요. 딴 애들이 불쌍해서죠. 소설에 쓴 모든 문장이 그 '한 방'을 위해 쓰이는 것 같잖아요. 그 한순간을 들어올리기 위해 팔을 벌벌 떨며 벌을 서고 있는 것 같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뭐 소설계의 대장장이가 되어 모든 문장을 평평하게 두들겨 신scene들의 평등을 꾀하겠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럴 주제도 못 되고요, 그저 모든 자잘함을 지우며 홀로 우뚝 선 한순간을 지지하는 것을 찜찜해한다는 거죠." (11쪽)
"백 마디 말보다 이런 뇌리에 박힌 한순간이 결국 인간을 바꾸는 거 아닐까? 나만 해도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영상을 보지 않고 있어. 보면 바뀌니까. 고기를 못 먹게 될 거야." (14쪽)
'그러니까 이런 거란 말이지.' 목경이 눈을 뜨며 생각했다. 먼훗날, 숨넘어가기 직전, 누군가 자신에게 오늘에 대해 묻는다면 목경은 이 이미지만을 기억할 것이다. 처음에 들었던 두 사람의 대화는 잊고. (14쪽)
근본적으로 그의 소설론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건 "영원히 일회용 비닐봉지와 용기를 쓰지 않겠다" "'되도록'은 안 된다"(13쪽)며 온몸으로 짐을 잔뜩 안고 떠난 세번째 여자의 목소리다. 그 안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쓸 수 있는 것을 쓰겠다는 마음이다. (소유정 해설, 59쪽)
그러나 이 소설은 힘이 세서 그런 물음표들을 다 쓸어버린다. .... 작가는 두 진영(?) 중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모두가 그를 자기편이라고 믿게 만든다. 좀 잊고 산 거 같은데, 원래 이런 게 소설 아닌가. (신형철 심사평, 347~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