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9

체 게바라 그리고 산타클라라

일출 너마저, 바라데로

예정에 없던 바라데로에서의 석양과 아침의 태양은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석양과 일몰로 완벽히 각인된 바라데로를 떠나는 마음은 왠지 아쉬웠지만 산타클라라로 향하는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드디어 체를 만난다는 실질적 기분이 들어서이다. 
체 게바라가 쿠바혁명 후 산업부장관, 국립은행총재 등을 역임하다가 홀연히 콩코로 뛰어들어 무장투쟁을 돕고 볼리비아에서 투쟁을 이어가다 결국 붙잡혀 사살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볼리비아 밀림에 사실상 버려진 그의 시신이 쿠바와 아르헨티나 정부의 노력으로 발굴되어 쿠바로 돌아오는 데에는 자그마치 3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혁명투사들의 시신은 쿠바혁명의 가장 빛나는 승리로 기억되는 산타클라라에 안치되었다. 1997년의 일이다. 

산타클라라 혁명광장의 체 게바라

바라데로를 떠난 버스가 마침내 산타클라라로 진입하고 있을 즈음, 친절한 버스기사는 잠시 버스를 세우고 육성을 울린다. 저 멀리 체가 보이느냐고.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창밖으로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마치 당장이라도 총부리를 겨누고 전진할 듯한 체의 동상을 카메라로 캠코더로 눈으로 응시한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듯했다. 다시 천천히 버스가 움직이고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체의 모습도 각을 달리한다. 
기념관을 비롯해 정식으로 혁명광장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그 모습을 미리 본 이상 지나칠 수 없었다. 먼저 혁명광장에 들렀다.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고 나는 먼발치에서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로모로 몇 컷 담아냈다. 체를 감싼 새파란 하늘이 유독 아름다웠다. 

승리할 때까지

Che Guevara, Santa Clara, Cuba, 2007

스물한 살 무렵 알게 된,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체 게바라 평전>을 읽는 데 6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의 평전을 읽고 쿠바에 관심을 갖고 유재현이 쓴 쿠바 관련 책을 읽고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보며 가슴을 쿵쾅거리고 실제 쿠바에 닿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르트르가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 치켜세운 체 게바라가 죽은 1967년 이후, 그의 얼굴은 세계 곳곳의 혁명의 현장에서 깃발이 되어 나부꼈지만 21세기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장 매력적인 상품으로 변모되었다. 물론 이마저 지금은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그것이 상품이든 책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의 이름이나 얼굴을 보면 가슴이 뛴다. 그리고 그것은 그때마다 내게 말을 걸어온다. 아직도 여전히 그러고 있느냐고. 
체 게바라가 현대의 자본에 의해 어떤 식으로 활용되든 간에 이곳은 산타클라라다. 쿠바 전역 어디에서든 그의 얼굴은 벽화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산타클라라에서 그를 만나는 느낌은 사뭇 진지할 수밖에 없다. 
다음 날, 시가 공장에 들렀다가 다시 체를 찾은 나는 그의 무덤 앞에 있는 흉상 위로 앙증맞게 빛나는 별을 보며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곳을 빠져 나와 시가 공장에서 산 시가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손가락보다 굵은 시가의 맛은 썼고 연기는 매캐했다. 

체는 영혼의 순례자였다. 

사랑이 담긴 희망을 내보였고, 투쟁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였다. 
체가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단언했을 때 이것은 ‘함께한다'는 것을 뜻한다. 
체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의 고통까지도 함께했다. 
그는 바로 휴머니즘의 전도자였다. 
“별이 없는 꿈은 잊혀진 꿈이다"라고 엘뤼아르는 말했다. 
별이 있는 꿈은 깨어 있는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체는 한 번도 눈을 감아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이 씌어지고 난 뒤 1997년 10월 17일, 죽은 지 30년 만에 체 게바라는 쿠바의 산타클라라에 안장되었다.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



2014.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