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6

출판도시에서

紙之鄕

출판도시, 게스트하우스 지지향紙之鄕. 생각보다, 기대보다 멋진 곳이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의 위치가 그러한 효과를 더욱 끌어올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멋진 곳이다. 약간 비틀어진 서쪽을 향해 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음악은, 아까 로비에 있는 갤러리 지지향 - 곧 열린도서관 <지혜의 숲>으로 거듭날 - 에서 들었던 오페라 음악에 자극을 받아 정경화의 바이올린 음반을 틀어두었다.


지혜의 숲
열화당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건 오후 4시 무렵. 오전에 일어나 빨래를 돌리고 집안을 대충 정리한 다음 바라데로 편 쿠바여행기를 빠르게 쓰고 대충 짐을 쌌다. 그리고는 씻고 집을 나서 일상日常에 들러 커피를 사고 스시를 포장해 집으로 돌아와 요즘 즐겨 마시는 스파클링워터와 함께 먹었다. 음악을 조금 크게 틀고선 - 전제덕과 데파페페 - 커피를 듬뿍 내렸다. 다행히 텀블러에 담아갈 커피는 잘 내려졌다. 집에 오는 길에 사온 과일을 통에 담는 걸 끝으로 출발 준비를 마친 우리는 3시가 되어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운전은 내가 했다. 막히지만 않으면 출판도시 가는 길은 운전하기에 참 기분이 좋은 길이다. 
지지향에 도착해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방에서 조금 쉬다가 심학산에서 석양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비빔밥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는 탐나는 헤르만하우스 곁을 지나 산 옆구리를 타고 낙조전망대를 향해 걸었다. 구불구불. 200미터도 안 되는 야트막한 산이 숲은 제법 울창해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마치 깊은 산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산은 산이었다. 


살아보고 싶은, 헤르만하우스

해가 뜨기 전, 커튼 사이로 내다본 안개 자욱한 출판도시는 나의 환영이었을까. 해가 뜨기가 무섭게 안개로 추정되던 흐릿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산책을 나갔다. 7시가 채 안 된 시각이었지만 해가 뜬 아침은 이르다는 느낌을 주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어제, 낙조전망대에서의 석양은 조금 심심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지만 해가 넘어가는 서쪽 하늘 밑으론 말끔하지 않은 공기가 잔뜩 서려 있었고 그 사이로, 어느새 하류 끝까지 흘러온 한강을 붉게 물들이던 해는 금방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석양보다 출판도시와 한강, 그리고 저 너머 섬처럼 보이는 뭍과 뒤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아련하니 보기 좋았다.


낙조전망대에서의 석양, 심학산
pajubookcity, 2014

출판도시에 도착하고, 지지향에 짐을 풀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들뜨고, 산책을 하고, 심학산에 올라 석양을 내려다 보는 모든 과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래전부터 출판도시에 머물러 보고 싶어 한 나의 희망은, 기대 이상으로 충족되었다.

아침 산책을 짧게 마치고 돌아와 두 시간 정도 더 잤다. 일어나 씻고 짐을 챙겨, 아쉽게 숙소를 나서니 12시가 다 되었고, 못 와본 사이 북카페(행간과여백)로 탈바꿈한 돌베개에 들러 두 권의 책을 샀다. 그러고 나서 어제 없어서 못 산 빵을 먹으러 따순기미에 가 팥빵과 튀김소보로, 수제버거와 고르곤졸라빵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배가 불렀다.













계획보다 지연된 시간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피곤했기에 헤이리에 가고자 한 계획은 전면 취소하고 미메시스에 들러 알베르토 아후벨의 전시를 관람했다.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디자인한 미메시스뮤지엄은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유려한 곡선으로 마감된 우아한 건축물이다. 제대로(?) 사진으로 담아보고자 애를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거대한 관람공간을 누비며 전시에 집중하기보다 건축물의 선線에 주목한 나는 곳곳에 난 창으로 스미는 빛과 함께 그러한 선들이 빚어내는 내부의 풍경을 담아내느라 분주했다.

지금은 미술관 로비에 있는 카페에 앉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둘 다 몹시 졸려하고 있다. 이대로 더 이상의 일정 없이 서울로 돌아가야겠다.

2014년 6월 6일에서 7일까지, 게스트하우스 지지향과 미메시스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