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之鄕 |
출판도시, 게스트하우스 지지향紙之鄕. 생각보다, 기대보다 멋진 곳이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의 위치가 그러한 효과를 더욱 끌어올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멋진 곳이다. 약간 비틀어진 서쪽을 향해 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음악은, 아까 로비에 있는 갤러리 지지향 - 곧 열린도서관 <지혜의 숲>으로 거듭날 - 에서 들었던 오페라 음악에 자극을 받아 정경화의 바이올린 음반을 틀어두었다.
지혜의 숲 |
열화당 |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건 오후 4시 무렵. 오전에 일어나 빨래를 돌리고 집안을 대충 정리한 다음 바라데로 편 쿠바여행기를 빠르게 쓰고 대충 짐을 쌌다. 그리고는 씻고 집을 나서 일상日常에 들러 커피를 사고 스시를 포장해 집으로 돌아와 요즘 즐겨 마시는 스파클링워터와 함께 먹었다. 음악을 조금 크게 틀고선 - 전제덕과 데파페페 - 커피를 듬뿍 내렸다. 다행히 텀블러에 담아갈 커피는 잘 내려졌다. 집에 오는 길에 사온 과일을 통에 담는 걸 끝으로 출발 준비를 마친 우리는 3시가 되어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운전은 내가 했다. 막히지만 않으면 출판도시 가는 길은 운전하기에 참 기분이 좋은 길이다.
지지향에 도착해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방에서 조금 쉬다가 심학산에서 석양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비빔밥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는 탐나는 헤르만하우스 곁을 지나 산 옆구리를 타고 낙조전망대를 향해 걸었다. 구불구불. 200미터도 안 되는 야트막한 산이 숲은 제법 울창해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마치 깊은 산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산은 산이었다.
살아보고 싶은, 헤르만하우스 |
해가 뜨기 전, 커튼 사이로 내다본 안개 자욱한 출판도시는 나의 환영이었을까. 해가 뜨기가 무섭게 안개로 추정되던 흐릿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산책을 나갔다. 7시가 채 안 된 시각이었지만 해가 뜬 아침은 이르다는 느낌을 주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어제, 낙조전망대에서의 석양은 조금 심심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지만 해가 넘어가는 서쪽 하늘 밑으론 말끔하지 않은 공기가 잔뜩 서려 있었고 그 사이로, 어느새 하류 끝까지 흘러온 한강을 붉게 물들이던 해는 금방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석양보다 출판도시와 한강, 그리고 저 너머 섬처럼 보이는 뭍과 뒤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아련하니 보기 좋았다.
낙조전망대에서의 석양, 심학산 |
pajubookcity, 2014 |
출판도시에 도착하고, 지지향에 짐을 풀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들뜨고, 산책을 하고, 심학산에 올라 석양을 내려다 보는 모든 과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래전부터 출판도시에 머물러 보고 싶어 한 나의 희망은, 기대 이상으로 충족되었다.
아침 산책을 짧게 마치고 돌아와 두 시간 정도 더 잤다. 일어나 씻고 짐을 챙겨, 아쉽게 숙소를 나서니 12시가 다 되었고, 못 와본 사이 북카페(행간과여백)로 탈바꿈한 돌베개에 들러 두 권의 책을 샀다. 그러고 나서 어제 없어서 못 산 빵을 먹으러 따순기미에 가 팥빵과 튀김소보로, 수제버거와 고르곤졸라빵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배가 불렀다.
계획보다 지연된 시간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피곤했기에 헤이리에 가고자 한 계획은 전면 취소하고 미메시스에 들러 알베르토 아후벨의 전시를 관람했다.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디자인한 미메시스뮤지엄은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유려한 곡선으로 마감된 우아한 건축물이다. 제대로(?) 사진으로 담아보고자 애를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거대한 관람공간을 누비며 전시에 집중하기보다 건축물의 선線에 주목한 나는 곳곳에 난 창으로 스미는 빛과 함께 그러한 선들이 빚어내는 내부의 풍경을 담아내느라 분주했다.
지금은 미술관 로비에 있는 카페에 앉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둘 다 몹시 졸려하고 있다. 이대로 더 이상의 일정 없이 서울로 돌아가야겠다.
2014년 6월 6일에서 7일까지, 게스트하우스 지지향과 미메시스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