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탄사스에서의 새 아침이 밝았고,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벽에 날이 밝으면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로사 마리아(숙소 주인)는 마탄사스에 아주 좋은 가볼 만한 곳이 있다며 친절히 버스 번호까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저 멀리 체 게바라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 체 게바라가 선봉이 된 군대가 결정적 승리를 거두며 쿠바 혁명의 큰 변곡점이 된 그곳, 산타클라라에 이미 가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바라데로에 가게 되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숙소를 나서는데 로사가 쿠바인들이 타는 로컬버스(아스트로)는 관광객이 탈 수 없다고 내게 일러주었으나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터미널에 갔고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규정이 실제로 굉장히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떼를 써도 아스트로 티켓은 절대 끊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산타클라라로 가는 기차나 비아술은 밤중에나 있었고 공교롭게도 아직 오전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버스를 알아보았더니 바라데로에 가는 비아술이 얼마 후 도착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결국 바라데로를 거쳐 산타클라라에 갈 수밖에 없었다. 관광객을 위한 버스인 비아술의 스케줄은 철저하게 마탄사스에서 바라데로를 거쳐 산타클라라로 가도록 짜여져 있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베트남 청년 |
그때 터미널 창구에서 생떼를 쓰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한 동양인 청년이 다가와 서툰 영어로 일러주기를, 자기는 베트남에서 공부를 하러 쿠바에 와서 3년 동안 머무르고 있는데 관광객 신분으로는 쿠바인들이 이용하는 로컬버스를 절대 이용할 수 없고 자기처럼 공부를 목적으로 비자를 발급받아 그를 증빙할 수 있는 신분증이 있으면 확인 후 티켓을 살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신분증을 보여주었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신분증을 빤히 쳐다보던 나는 그에게, 대체 왜 그렇게 하는 거냐고 (물론 상대가 적절하진 않지만) 쏘아붙이듯 물어보았으나 청년의 대답은 간단했다. 쿠바는 관광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관광객들이 타도록 되어 있는 비아술에 비해 로컬버스의 값은 터무니없이 싸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가게 된 바라데로에서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아침에 있는 산타클라라행 버스표를 끊었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휴양지답게 곱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해변을 실컷 걸었고 맥주도 마시며 밥을 먹고 단지 하룻밤을 묵었을 뿐이다. 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으니 바로 석양과 쿠바 전역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환전율이다. 그 외 휴양의 도시 특성상 도시 전반에 만연해 있는 돈이 중심이 된 서비스 문화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휴양의 도시, 바라데로의 해변 |
산책하다가 만난 |
석양은 그야말로 행운! |
Varadero, Cuba, 2007 |
바라데로의 석양을 다시 한 번 |
하얀 백사장, 흩어지는 구름, 찢어질 듯 석양, 달콤한 빵, 환상적인 환율, 끝내주는 숙소.
들쳐본 옛 노트에는 이렇게 바라데로가 남겨져 있었다.
2014.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