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3

여기, 두 개의 문 앞에 우리 운명의 결정자, SS 하급장교가 서 있다. 그의 오른쪽에는 블록앨테스터가, 왼쪽에는 막사반장이 서 있다. 알몸인 채로 타게스라움에서 10월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나온 우리들은 두 개의 문 사이를 몇 걸음에 달려가서 SS 대원에게 카드를 넘기고 다시 숙소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SS 대원은 두 행동이 이어지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우리의 얼굴과 등을 한눈에 보고 각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렇게 하여 자기가 받은 카드를 오른쪽 남자에게, 혹은 왼쪽 남자에게 건네준다. 이게 우리들 각자의 죽음과 삶을 가르는 것이다. 3~4분 사이에 200명이 수용된 한 막사의 선발이 '완료'되고, 오후에 1만 2,000명이 수용된 전 수용소의 선발이 끝난다.   
_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195-196쪽, 이현경 옮김, 돌베개. 

너무 끔찍해서 서둘러 읽을 수 없었고, 읽는 동안 어떤 불특정한 지점을 응시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2005년의 워싱턴 그리고 2013년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떠올린다.

2018/02/14


물론 우리가 ㅇㅇㅇ 한 분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니다. 안 될 경우 대안은 있어야 하니까.
그래 두 팀을 더 후보군으로 정했다.

와이즈건축과 푸하하하프렌즈

여전히, 우리는 이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이튿날


지긋지긋한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우리는 ㅇㅇㅇㅇ으로부터 회신을 받았다.

편지를 보낸 후


"우선, 저희는 저희가 거주하게 될 집이 동네에 자연스럽게 스미길 바랍니다."

메일을 쓰며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말을 무엇보다 먼저 하고 싶었기에 그 대상은 ㅇㅇㅇㅇ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아내는 안 될 거라며 한 발 물러나는 몸짓을 보였지만, 나는 며칠을 망설이며 쓰고 다듬은 메일을 보냈다. 2017년 3월, 늦은 밤이었다.
메일에는 저토록 추상적인 바람 외에도 최소한 갖춰야 할 규모와 추상적인 바람 못지 않게 중요한 우리의 요구사항이 하나 더 담겼다. 그것은 커뮤니티 성질을 가지는, 개인 집이라는 사적인 성격과는 조금 동떨어진, 중성적인 공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내용을 위해서라도 윤곽은 미리 갖춰야 하겠기에, 그러면서도 혹 과대한 부피는 염려가 되어 조심스럽게 글자를 배열했다.

2018/02/13

2017년 2월 23일의 일기


그러니까 어제, 오후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지도를 보니 괜찮아 보여 퇴근하고 아내와 함께 가 보았다. 가 보니, 괜찮다. 괜찮았다. 그러니까 아내와 나는 그 땅을 본 순간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래, 느낌이 좋다.
바로 부동산으로 가서 긍정의 의사를 전하니 곧장 계약을 하자고 한다. 그게 바로 오늘. 도서관 앞 땅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동시에 우리 땅이라는 직감이 머릴 스친다. 그러자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 계약 무산의 과정을 겪었다.)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그 땅에 들렀다. 어두울 때 골목의 분위기를 보고 싶었다. 높이 매달린 가로등 불빛은 꽤나 밝았고, 거주자 우선주차 때문에 도로는 비좁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답답해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좋은 느낌을 유지한 채 집으로 돌아가니 이제는 돈 문제가 전속력으로 달려 들었다. 하! 정신이 없는 게 아니라 녀석을 안고 그대로 뒤로 나자빠져 뒹굴고 있었다.
은행에 가서 대출 요건을 알아보고, 계약금만 빠듯하게 맞춰 부동산으로 향했다. 시간이 좀 일러 그 땅을 주위를 배회하다가 — 현재 조건만 유지되면 일조량이 아주 넉넉하다 — 부동산으로 갔다.

그렇게 우리가 노랠 부르던 집을 짓기 위한 첫 관문, 땅을 계약했다. 이제부터 시작. 하지만 돈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그리고 늘 고대해 왔지만 너무 갑작스럽다는 얼떨떨함. 그래서 미처 준비가 소홀하거나, 건축가를 택하는 데 조바심으로 그르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대중없이 나를 공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