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4

편지를 보낸 후


"우선, 저희는 저희가 거주하게 될 집이 동네에 자연스럽게 스미길 바랍니다."

메일을 쓰며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말을 무엇보다 먼저 하고 싶었기에 그 대상은 ㅇㅇㅇㅇ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아내는 안 될 거라며 한 발 물러나는 몸짓을 보였지만, 나는 며칠을 망설이며 쓰고 다듬은 메일을 보냈다. 2017년 3월, 늦은 밤이었다.
메일에는 저토록 추상적인 바람 외에도 최소한 갖춰야 할 규모와 추상적인 바람 못지 않게 중요한 우리의 요구사항이 하나 더 담겼다. 그것은 커뮤니티 성질을 가지는, 개인 집이라는 사적인 성격과는 조금 동떨어진, 중성적인 공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내용을 위해서라도 윤곽은 미리 갖춰야 하겠기에, 그러면서도 혹 과대한 부피는 염려가 되어 조심스럽게 글자를 배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