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6

지상의 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이들과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녕 아름답구나. 

여행 준비의 마지막을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읽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환전도 하고, 여행자보험도 알아보고, 잔뜩 설렘도 품고 있지만. 
정유정의 여행기를 읽으며,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에 푹 빠졌다. 아주 매력적이다. 소요기간은 17일 정도. 이번 여정에 주어진 시간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이미 나는 고개를 돌려 에베레스트를 쳐다보며 포카라행 국내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그리고 포카라에서 나야풀을 통해 푼힐을 거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을 할 예정이다. 흔히 말하는 abc트레킹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비롯된 말이다. 
히말라야, 그곳을 나는 거의 십 년이 다 돼 가는 2005년 2월에 가보려고 했었다. 첫 해외여행이었고 인도 바라나시에서 급하게 네팔행을 결정했고, 소나울리에 있는 육로 국경에서 비자를 받고 포카라에 가겠노라고 야심차게 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나를, 그리고 두 명의 일행을 들뜨게 했던 포카라행 버스는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춰서야 했다. 하루 또 하루. 완전한 길에서의 노숙을 비롯해(정확히 어느 건물 처마에서였다) 통제된 꽉 막힌 길에서 사나흘을 보내자니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걸음을 돌린 우리는 부처 탄생지인 룸비니에서 며칠 머무르다 델리를 거쳐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떠난 인도여행에서 나는, 비틀즈가 요가를 수행했던 곳으로 유명한 리시께시를 거쳐 4300미터의 위용을 자랑하는 타포반 근처까지 2박 3일의 트레킹을 했다. 갠지스강이 발원하는 곳이라는 거대한 빙하지대를 거쳐 손발을 모두 써야 오를 수 있는 거친 코스를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곳엔 흡사 ‘구루’로 보이는 분이 허름한 천막에서 지내며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정해진 비용은 없었다. 함께 간 캐나다 여성과 내가 지불한 금액이 얼마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삭막하고 시리던, 그렇지만 찬란했던 풍경을 기억한다. 멀리 시야가 닿는 곳에는 대한민국에서도 원정대가 와 있다는 베이스캠프가 있었다. 깃발이 나부끼는 것 같기도 했고, 텐트가 여럿 보였던 어스름한 기억들. 
그런 추억 아닌 추억이 있는 곳이, 나에겐 히말라야다. 그리고 다시 네팔, 포카라, 안나푸르나로 나는 간다. 

8년 전의 히말라야, 타포반, 인도, 2006

2월에 항공권을 예약할 때만 해도 언제 9월이 오나 싶었다. 히말라야에 간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니면서도 간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 중에, 내가 예약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는 두 차례나 세계사에 남을 사고로 산산히 부서지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흔하지 않은 항공기 사고에 비하면 아차 싶은 주기이기도 하지만, 내가 취한 조치는 미리 예약해둔 비행기 스케줄의 변동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항공사에 컨펌 메일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십 년 전만 해도 현재의 이티켓이 아닌 종이항공권이었고, 출발 1, 2주 전에 항공사에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내가 예약한 항공 스케줄을 재확인(리컨펌)해야 했다. 2014년 지금의 나는 십 년 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가 메일을 보내고 받았으며, 엊그제 다시 한 번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확인했다. 
지상의 밤은 미국의 독립영화 감독 짐 자무시의 영화 제목이다. 내가 영화를 봤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트레킹을 위한 출국을 하루 앞두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이 말을 떠올렸고, 곧 내가 밟을 고도(高道)의 땅을 은근하고 꽉찬 설렘으로 기다린다. 그곳은 어떤 풍경으로 나를 압도할까. 나는 궁금하다. 해뜨기가 무섭게 걷기 시작해 매서운 추위가 닥치는 해질 무렵 전에 걷기를 마무리하는 하루 하루가 나에게 선사하게 될 감흥을, 자연의 존재를, 생명의 신비를. 뻔하다. 무턱대고 나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염없이 멀어지는 밟아온 길에 흘리며 같은 생각을 하고 또 할 것이다. 그러다가 대자연 앞에 겸허함으로 몸을 움츠릴 것이고, 그런 과정을 트레킹을 할 열흘 내내 반복할 것이다. 
안녕, 나마스테, 타시텔레!

2014/08/15

제주, 여행의 끝

7시가 조금 넘어 일어난 나는 동네를 산책하고 싶어 리코만 챙겨 숙소를 나섰다. 벌써 숙소 스텝들은 아침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한 시간 가량, 천천히 동네에 난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분위기에 생각을 맡겼다. 언젠가부터 나는 중산간 마을을 떠올리기만 하면 비극이란 단어를 습관처럼 옆에 붙여두곤 했는데 이번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자연사랑미술관, 옛 가시리초등학교

숙소 근처에는 폐교된 학교에 어떤 미술관이 들어서 있었는데 정문 앞에 보니 학교에 대한 이력이 작은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거기엔 가시리초등학교가 4.3 때 폐교되었다가 다시 문을 열었지만 학생 수가 줄어 십여 년 전에 인근 한마음초등학교와 통합되었다고 쓰여져 있었다. 그렇다. 중산간 마을에서 내가 비극의 기운을 떨칠 수 없는 건 바로 4.3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제주의 풍광에 매료되고, 그것을 즐기기에 앞서 제주가 오랜 시간 지니고 있는 고통스러운 역사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고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주를 올바로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게 도리고 순서다. 
숙소에 돌아와 숙소에서 준비해준 아침으로 팬케이크와 요거트와 커피, 차를 먹고는 씻고 숙소를 나섰다. 나올 때 숙소 여주인이 잠만 자고 떠난다며 아쉬워했으나 이미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움직여야 했다. 너븐숭이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날씨는 그럭저럭, 한적한 도로를 달려 닿은 너븐숭이는 작년 가을에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고 있었다. 그곳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동측 일주도로에서 좌회전하는 신호를 만들고 안내판을 설치하면 훨씬 나아질 텐데, 쾌적한 도로 운영을 위해 아마도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애초에 너븐숭이를 만든 목적이 반쯤은 상실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기념관을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가. 더군다나 제주에서 4.3에 대한 떠올림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현 상태의 접근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아무도 없는 기념관에 들어갔더니 사무실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더니 전시관 관람을 먼저 할 것인지, 13분짜리 영상을 먼저 볼 것인지 묻길래, 영상을 먼저 보겠다고 했더니 기꺼이 디브이디를 틀어주셨다. 개괄적이면서도 심플하게 만들어진 영상을 보고 자리를 뜨려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붙잡으신다. 그러면서 4.3사건의 전개과정, 그리고 북촌리 마을의 비극에 대해 알기 쉽게,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셨다. 사실 위주로 객관적으로 당시 상황을 전달하려고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동안 제주인들 내부에 공공연히 쌓여 왔던 울분이 깊이 내재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랜 시간 동안 입밖에 꺼내지도 못했던 말 못 할 비극에 대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그것이 마지노선이었다. 사실 제 가족을 모두 잃은 슬픔에는 무작정 하소연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런 삭힘이 몸에 배어 있는 그 모습에 어떤 위로나 추모의 마음도 보잘것없이 여겨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전면적으로 나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국가의 역할, 지난 횡포, 책임과 무책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정책적으로 뒷바침을 해 줘야 한다. 그게 인간된, 그러한 인간 집단이 모인 나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정부가 할 일이다. 


순이삼촌 문학비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와 애기무덤과 순이삼촌 문학비 일대를 천천히 걸으며 다시 한 번 제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부 삼신인이 벽랑국 세 공주와 연을 맺어 후손을 낳고 농사를 일구며 탐라라는 나라를 세우고, 몽골의 침입에 끝까지 대항하다 결국 속국이 아닌 직접 지배로 귀결된 오랜 역사, 조선 시절 횡포에 가까운 과도한 공물 착취, 수많은 지식인들의 유배지, 제국주의 일제의 야욕에 곳곳이 구멍 난 시리도록 아름다운 섬나라, 이제는 동북아 힘 겨루기의 지리적 요충지로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안타까운 제주, 그러한 제주에 대해서 말이다. 
너븐숭이를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 곰막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까웠고 바다와 바로 인접해 있었다. 식당은 월요일이라 그런지 한적했고 서빙하는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활어회와 회국수, 활우럭탕과 맥주 한 병을 시켜 배부르게 먹고는 우리가 가고 싶어 했던 카페 달빛봉봉베란다로 향했다. 그런데 미리 알고 있던 주소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주소가 달라 긴가민가하며 미리 알고 있던 곳으로 차를 몰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카페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차피 복불복이라 생각하고 간 길이었으니 미련 없이 엑셀을 밟아 삼성혈로 갔다.

삼성혈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들르려고 했던 곳인데, 첫날 아침식사 때문에 동선을 반대로 잡았더니 결국 마지막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야속한 비행기 시간으로 인해 20분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시실에서 상영하는 영상이 13분. 영상을 다 보고나니 울창한 숲길을 산책할 시간은커녕, 둥글게 쳐진 울타리 너머로 멀리 보이는 삼성혈을 보고 떠나기 바빴다. 삼성혈.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삼신인의 신화를 간직한 곳. 그게 어느 정도의 허구를 지닌 역사적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비의 섬 제주는 그런 식으로 곳곳에 신비로움을 가득 안고 있다. 앞으로도 제주를 꾸준히 찾겠지만, 올 적마다 그러한 제주의 오랜 이야기들을 들으러 발품을 아끼지 않고 다니고 싶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 티켓팅을 했는데 어처구니없게 나란한 좌석이 남아 있지 않아 앞뒤로 앉아야 했다. 비행기는 연결 문제인지 뭔지, 한 시간 가량 지연되어 김포에 도착하니 이미 6시가 다 되어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으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 無가 공항버스에 오르는 걸 보고 나도 돌아서 공항전철을 타러 지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다. 문득 제주로 가는 쉼 없이 흔들리던 비행기와 궂은 날씨에 결국 번쩍하며 번개까지 맞았던 순간이 떠오르며 슬몃 웃음이 났다. 우리는 언제 또 제주를 찾게 될까.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제주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2014. 7. 21. FIN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에 가더라도 용눈이오름은 먼저 시야에 두고 가고 싶었다. 그런데 우린 용눈이오름에 오르기로 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소들은 분주하게 무리지어 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작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직 해는 떠 있었지만 이미 서쪽 하늘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하긴 우리가 도착한 시각이 벌써 6시가 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니 천천히 오르면 능선쯤에서는 석양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 쉽게 나온다. 





완만한 동선을 따라 아주 느긋하게 걸었다. 가는 방향 멀리엔 한라산이 왼편으로는 용눈이의 능선과 멀리 성산일출봉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측으로 돌아보면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부동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발걸음을 서두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 가을에 왔을 때에는 억새가 그곳의 정취를 만끽하는 데 일조했는데 이번엔 푸름이었다. 여름 한가운데의 푸름들, 가을에 자리를 내주기 전의 푸름들은 말 그대로 푸르렀다. 바람이 조금 불었던가. 너도나도 사진을 많이 찍으며 발걸음을 더욱 느리게 붙잡았다. 어느 부부는 웨딩 촬영을 하는지 소들이 이리저리 풀을 뜯어먹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더니 기어코 그들이 관람로를 점령했다. 어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어떤 어른은 재밌다고 연신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우리는 동선을 조금 벗어나 동편 언덕에 오르는 여유를 부리며 풍경을 만끽했다. 더 만끽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시간을 더디게 쓰고 있었다. 
드디어 능선에 다다랐는데 소들이 언제 능선까지 점령했는지 풀을 뜯는 소들과 무엇이 그렇게 간지러운지 푯말지주에 죽어라 목을 긁어대는 소들로 마치 장날 시장에라도 나온 듯한 북적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새 해는 점점 멀어져 우리의 눈높이를 낮추고 있었다. 동시에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 하지만 내 시선을 거듭 사로잡은 건 다랑쉬오름도, 지는 해도, 멀리 일출봉과 우도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 먼 바다 - 수평선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주섬의 중심 한라산이었다. 백록담이 있는 한란산 주봉의 실루엣이 오름에 오르는 내내 시선을 사로잡더니 기어코 그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을 내 작은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발상이고 시도이지만 두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찍었고 그럴수록 한라산의 신비로움만이 액정에 어렴풋 드러났다. 







능선을 반쯤 돌았을까, 해가 지자 금세 어두워진 주위 탓에 어느덧 모두들 내려가고 능선엔 우리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마 타이밍이 필요했다고 하면 이때였으리라. 초생으로 가고 있을 그믐이 우리 눈앞에 나타날 타이밍 말이다. 그렇지만 이미 모든 게 좋았기 때문에 더는 우리에게 무엇도 필요치 않은 듯 달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울 건 없었다. 이미 가득해진 우리 마음과 감성은 그것이 더해졌다면 넘쳤을지도 모른다. 
가장 높은 능선에 도달하니 이제는 어둠이 금세 안개와 함께 주위를 애워쌌다.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꼈다. 다랑쉬오름은 분화구로 구름을 빨아들이고 있었고 이제껏 잘 보이기만 했던 조금 멀리 있는 모습들은 모두 사라지거나 아련한 불빛으로 바뀌었다. 바다로 다가갈수록 불빛이 많아졌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우리도 아이폰 플래시를 켜고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크게 서두를 수 없었던 건 동선에 수두룩했던 소똥 때문이었다. 이제는 거의 사위가 캄캄해졌고 우리는 내려와 자동차에 앉았다. 어느새 별이 내려앉았다. 별이 내려앉고 귀뚜라미가 쉴 새 없이 울어대는 마당에 급하게 출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속삭임에 가까운 엷은 대화로 시간을 하염없이 축냈다.  


2014. 7. 21.

2014/08/13

의외의사실

얼마 전, 언니네이발관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었었다. 단순히 도메인이 만료되었을 거라 쉽게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다시 열린 홈페이지에서 이석원의 일기를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작년 늦은 여름 무렵, 이석원의 블로그에서 그가 보석 같은 공간이라 표현한 일러스트레이터 김준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기억. 
이석원이 인사동 쌈지길에서 <쌀롱 드 언니네이발관>이라는 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알고 가려고 했을 때는 이미 가게 문을 닫은 후였다. 이발관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이석원이 어떤 계기로 인해 가게를 접고 앨범 작업에 몰입해 그들 앨범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발표하였다고 하는데, 내 머리를 스치는 기억은 그 계기라고 하는 것이 바로 김준의 블로그에서 어떤 자극을 받은 거였던 걸로 남아 있다. 이 기억이 반대로 이석원의 블로그에서 김준의 블로그를 알게 되면서 불현듯 떠올랐는데, 그래서 나의 어렴풋한 기억을 다시 확인하고자 아무리 구글링을 해 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발견한 것이 지금은 닫힌, 이발관 홈페이지에 있는 <의외의사실> 페이지였는데, 그곳에는 김준이 한동안 이발관 홈페이지 대문에 실린 그림 작업을 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많진 않았지만 가벼운 빛을 내며 자리잡고 있었다. 그때의 반가움이란. 
왜냐하면 이석원의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김준의 블로그에서 나는, 언뜻 크게 보이진 않지만 실로 대단한 파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그림들의 가늘고 감각 있는 선과 무엇보다 짧게 남기는 문구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또한 블로그와는 별도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남기는 독서일기는 나의 독서취향과도 너무나 흡사해서 정말 많이 놀랐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독서일기도 거의 매일 살펴보게 된다.  
그때 이석원이 김준의 블로그를 소개한 건 그가 매년 한 해 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 전시하는, 이름하여 <의외의사실> 전시 소식이었는데, 계동에 있는 자그마한 한옥 ‘고방’에서였고 2012년 동안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래서 <2012년의 의외의사실>. 그날 나는 성북동에 갔다가 성곽을 타고 와룡공원을 거쳐 삼청동으로 내려가 계동으로 갔다. 그리고 드디어 중앙고등학교에서 조금 내려오다가 오른편에 있는 ‘고방’에 들렀는데, 그의 그림들이 대체로 내게 전해주는 감동, 그러니까 ‘확’이 아닌 은근한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방금은, 이발관 홈페이지에 있는 <의외의사실>을 다시 보려고 구글링을 하다가 재밌는 걸 찾았는데 이석원이 2008년에 쓴 일기였다. 거기엔 이석원이 5집 <가장 보통의 존재>에 실릴 곡 중 한 곡의 가사를 완성했는데 그 곡에 <의외의사실>이란 제목을 붙이고 싶어서 김준 씨에게 괜찮겠느냔 의사를 물으며 가사를 남겨놓았고, 실제 발표된 앨범에 <의외의 사실>이란 곡이 실려 있다.


하지만 재밌는 건, 김준의 블로그를 쭉 뒤지다 알게 된 사실인데, 올해로 사용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블로그의 제목 <의외의사실>을 김준 씨 역시 영국의 소설가이자 버지니아 울프와도 어울렸던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소설에서 발견하였다는 것.
이석원이 <쌀롱 드 언니네이발관>을 운영할 때 그곳에도 김준 씨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없어진, 사실 어디를 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불특정한 많은 것들이 그냥 그리워지는 새벽이다.

게스트하우스, 타시텔레

타시텔레, 가시리, 표선면, 제주

멋진 숙소다. 이곳이 멋지다고 단정짓듯 말하는 건, 이곳의 위치 때문이다. 한적한 중산간 마을에 동네 고유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다르게 말하면 대체적인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가 아닌 원래 이곳에 오래 있었던 느낌이 가득 전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제주 특유의 돌담으로 둘러져 있거나, 제주 바람 때문에 건물들이 바짝 엎드려 있거나 하진 않다. 대신, 타시델레 블로그에 따르면, 이곳은 주인장들이 손수 만든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마당 한켠엔 목재들이 수북이 쌓인 곳도 있었고, 각각의 건물이나 내부 곳곳은 전문가의 손길이 미친 정교함보다는 나름의 정성이 엿보이는 구석이 많았다.
두모악을 나와 광동식당에서 생소금구이 3인분(4인분 같은)에 맥주 한 병을 나눠 먹었다. 고기는 튼실했고 껍질은 야들야들했다. 그래서 먹는, 씹는 맛이 아주 충실했다. 두루치기도 먹고 싶었지만 욕심은 금물, 이미 고기 3인분에 밥까지 먹은 것도 과했다. 제주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시는 아주머니의 인심은 따스하고 편안했다. 인심이 편안하다. 그런 게 있다. 장사라는 속성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일정 부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보다 원래 친근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 분이셨다. 여튼, 맛있게 고기와 밥을 먹고 실컷 부른 배를 식히느라 식당 밖에 있는 마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적당히 쉬었다.
그러고 나서 타시델레로 이동을 했는데, 목적지가 가까워지며 주위를 둘러보니 동네 분위기가 너무 아늑하고 좋았다. 게스트하우스 건물들도 자연스럽게 자릴 잡고 있었고, 체크인을 하러 들어간 공동 공간인 주방과 카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너무 배가 부른 탓인지, 동네나 게스트하우스를 둘러보기는커녕 졸려서 둘 다 침대에 뻗어 두 시간을 내리 자버렸다.


2014.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