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인간은 왜 증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걸까요? 신학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은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을 믿음belief으로 대체하기 때문이에요. 증명은 두뇌의 활동에 바탕을 두고 있죠. 그렇다면 믿음은 두뇌로 하는 것일까요, 마음으로 하는 것일까요? 이런 것들을 '만약 ~라면, ~이다'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기계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해 기계에게 '마음'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까요? 과학적으로 '마음'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논란인 상황에서 말이죠. / 게다가, 수많은 철학자들이 지적해 왔듯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시간'의 존재예요. 인간이 끊임없이 고뇌하며 이 세계를 향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시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 즉 유한하며 사멸하는 존재라는 데 있어요.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1958)에서 명확히 들려주듯, 인간이 누군가의 탄생을 기뻐하는 이유 역시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47쪽)
하지만 그 변화의 흐름이 구조적인 것이라면 그 변화가 무엇인지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에 적응함과 동시에, 그 변화가 만들어 낼 위험이 어떤 것인지 예측하여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겠죠. (68쪽)
이것이야말로 내가 우리 사회에 살며 가장 근본적으로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더 깊이 잠수하지 못하고 표면에서만 허우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