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현상설계지침은 박물관의 시대적인 함의와 논의의 지점을 보여주는데, 바로 한국성에 대한 요구다. 즉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문화의 장 속에 합류' 시키며, '한국 및 한국예술의 고유성에 대한 상징물로서 전시관의 개념을 재정립' 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상당히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인' 이 프로젝트는 단일 매스로 풀어낸 정림건축의 안을 당선안으로 결정하면서, 혁신적인 실험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박길룡 교수는 이에 대해 "합리성을 선택하는 보수성에 기울어졌다"고 평가한다. 당선작이 모더니즘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합리적 근대성과 지역적 낭만성을 엮고 있으며, "내부의 명쾌한 기능처리가 강점"이었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 나라의 공공시설로서 그 표상이 읽히도록 한 점을 높게 평가"한 심사평은 당시 한국의 상황과 관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일 것이다. 전진삼 씨는 이에 대해 "정치적 디자인 수완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문화시설로서 박물관이 아니라, 공공시설로서 그 표상이 읽히는 한국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 시대의 '선택'이었다.
동작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너오는 도로는 용산에 이르러 미군기지에 막혀 우회하게 된다. 현상설계지침에는 향후를 대비해 계획되어 있는 직선도로 조건이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도시계획시설로 입안된 도로는 곧장 부지 옆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결정났으며, 그 결과 건물의 길이는 서편으로 15미터 가량 이동하면서 축소되었다. 그와 함께 사각형이었던 로툰다영역도 원형으로 바뀌었다. 또한 모든 물길을 거울못에 집합시킴으로써 낮은 지대의 단점을 보완하려던 개념은 근본적으로 침수가 되지 않는 상한선으로 성토하자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결국 건물을 3미터 이상 높아졌고, 거울못은 축소되었으며, 긴 매스와 배치상에서 대응하던 주차장은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작은 변화는 결과적으로 대형 매스의 부자연스러움을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다.
_임진영, <국립중앙박물관, 10년의 기록>, 공간, 2005. 11
다음은 공간(2005. 11)에 실린 박승홍 인터뷰
(정치적 디자인 수완이 돋보였다는 지적에 대해)
권위주의적 표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전혀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적은 없다. 이 건물이 가진 스케일로 권위적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여러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박물관 내부의 프로그램도 공간의 권위적 성격을 완화하고 있다.
공공건물로 인식되는 특성은 일부러 감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조건과 환경으로부터, 그리고 개념으로부터 타당하게 도출된 접근이라면 굳이 그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초기 개념에 대해)
벽, 성벽에 관한 생각을 했다. 벽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보편적인 시간 개념, 초월의 개념, 영원함을 담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정서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 그 지역의 특성상, 다른 것은 못해도 꼭 한 가지 바랐던 것은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땅에 깊이 박혀 있는 우직한 건물이 되길 원했다. 세련된 멋 없이, 우직하게 박혀 있는 건물 말이다.
(심사위원들이 못을 없애려 한 이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물과 물이 근접해서는 안 된다는 발상이었던 것 같다. 물이 건물의 아래쪽에 있음을 설명해도 설득이 힘들었다. 또 못의 형태가 한국적인가, 아닌가에서 한국의 못에는 가운데 구름다리가 지나간다. 동선이 너무 돌아간다는 이야기까지 지적되었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을 그대로 옮겨놓지 않겠다는 것이 이미 이 프로젝트의 전제였다. 형태를 따르는 것은 무의미하며, 경험이나 질감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는데도 그런 논의가 나왔다. 또 직선 진입을 고려해보자고 해서 이를 설득하기 위해 시뮬레이션까지 만들었다. 예전 관공서는 대칭 구성에 가운데로 진입하는 관료적인 형태가 많은데, 이런 큰 건물의 경우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면 중압감을 더 주게 된다. 때문에 오히려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주변을 보고 건물의 일부를 보고, 또 멀리서 봤던 건물의 모습을 바로 가까이에서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건물과 사람의 상호교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건물 길이 축소에 대해)
20미터 축소되었다. 그 20미터를 줄이느라, 400미터 퀄리티가 줄어드는 셈이다. 길이를 줄이기 위해 로비 형태가 바뀌었고, 못의 규모도 크게 줄어든 상태다. 그 외에 조경도 조금 더 자연적인 느낌의 구릉이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전체적인 큰 틀은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완성된 건축물의 설득력에 대해)
초기 계획보다 건물이 올라갔다. 이런 규모에는 1미터 높이도 상당히 차이가 크다. 지금 부지는 그 일대에서도 가장 낮은 곳이어서 지침에도 침수지역에 대한 고려가 언급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지 선정 초기에 의견이 분분했던 것이다. 어쨌든 주어진 부지에서 고안한 것이 바로 못이고, 건물과 수장고를 이중벽으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즉 침수시 그 물을 못으로 다 모아내는 개념이었다. 만약 정말 불가항력의 엄청난 비가 온다면, 물을 빼내고 유물을 옮길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침수를 고려한 설계 아이디어다.
그런데 그래도 계속 문제가 되니까 결국 건물을 올리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그 큰 매스가 높아지니 중압감은 상당히 더해졌다. 더구나 문제는 뭔가. 건물을 올린 만큼 저층부에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곳에 주차장을 넣자고 해서 변경된 것이다. 하지만 주차장 역시 전체 배치 개념 중 한 요소였다. 전체 건물의 길이와 주차장의 길이를 서로 같게 하고, 일부러 전면에 배치해서 서로 교류한다는 설정이었다. 사람들이 주차장에 도착해서 연못을 돌아 접근하는 것이 개념이었다. 그래서 중압감이 생길 수 있는 건물의 규모에 적응하고 친근해지게끔 하는 아이디어라서 주차장은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주차장을 지하에 두면 사람들은 주차장에서 건물 안으로 바로 올라서게 된다. 물론 기능적으로 합당한 결론이지만, 그것이 옮겨감으로써 전체적인 체험구조가 상당히 뒤바뀌었다.
(미군 이전 이후 가능성)
그 부분에서 열린마당이 중요하다. 큰 의미에서 남북을 통과한다는 것이지만 말장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그곳에서 남산을 바라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미군기지가 개방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북쪽에서 접근할 수 있다. 북측 입면이 정면성이 중요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