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4

운하는 뱃길 용도가 아니라 물길이라는 의미로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배가 다니기는 하지만 우선은 물을 통과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베네치아가 건설된 땅은 개펄 가운데 위치했기 때뭉네, 바다의 간만(干滿) 즉 밀물과 썰물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만약 베네치아가 지금처럼 운하에 의해서 무수히 나뉘지 않고 전체를 매립해서 통합했다면 이 도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수시로 물에 잠겨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큰비가 내리면 육지에서 급하게 흘러 들어오는 강물이 바다의 밀물과 만나면서, 그럴 때마다 도시는 물에 잠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강의 흐름과 바닷물의 간만 관계를 면밀히 고려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운하를 설치한 결과, 마치 실핏줄이 온몸에 퍼지듯이 도시 곳곳에 운하가 지나가게 되었다.  
손세관, <베네치아> 56쪽, 열화당, 2007

어두움과 밝음의 대조, 좁은 도로에서 개방된 공공장소로의 극적인 변환 등은 베네치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징이며, 이는 이슬람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베네치아 주민들은 주거지 주변의 폐쇄된 골목길과 개방적인 광장 사이에서 이러한 시각적 변화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도시 중심부를 거닐다 보면 전혀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리저리 꺽이면서 연속하는 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공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된 상점들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도시생활을 맞이하게 된다. 마침내 발길이 산 마르코 광장이나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스키아보니 해얀, 또는 리알토 다리에 이르면, 보행자는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열린 공간과 만나게 된다. 
같은 책 77쪽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라구나(lagoona, 석호潟湖)는 매우 특이한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처럼 완만한 개펄로 조성된 지역이 라구나가 형성될 수 있는 적합한 지역인데, 전 세계적으로 라구나를 발견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라구나는 육지로부터는 담수가, 외해로부터는 해수가 흘러 들어오는 완만한 개펄지대로서, 우리말로 풀이한다면 '경사가 매우 완만한 개펄지대' 또는 '소택지(沼澤地)'가 적절할 것이다. 라구나는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를 매우 애매하게 만들어, 밀물 때에는 물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에는 물 위로 드러나므로 바다인지 육지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보통 땅에 굴곡이 있어서 썰물 때에는 물길이 있는 개펄을 형성하다가 밀물 때에는 수면이 넓게 펼쳐진 곳에 크고 작은 섬들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라구나는 시간에 따라 변화가 많고 다채로운 경관을 연출한다.  
같은 책 47쪽
저는 오랫 동안 외국인들에게 한국 전통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 옛것에서 높은 가치와 깊은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리고 나누어 마땅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이야기했을 때 선입견 없이 알아 보고 사랑해 주는 외국인들이 있었고, 다시 찾아와 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외국인을 상대로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만 내달리던 시대에 오히려 이 땅에서는 그런 이들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때 너희 안의 정말 소중한 것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던 선진국의 문화인들을 만났습니다. 자기네의 실패를 교훈 삼아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해 준 이야기였지만, 지금 살펴보면, 우리는 그들이 잘못 갔던 길마저 똑같이 가 보고 있나 싶어 마음이 슬픕니다모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 조용한 마을 한산에 직접 찾아가 모시를 직접 사고, 새벽 모시장을 뛰어난 그래픽과 기사로 꾸며 알린 것은 일본의 잡지사였습니다. 역사적인 문화 잡지 <긴카(銀花)>의 1998년 가을호였습니다. 우리는 그 두 해 전부터 긴 준비 기간을 가지고 차근히 공부하고 여러 장인을 만났습니다. 그 때도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그렇게까지 귀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한산의 모시장은 영영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때보다 덩치가 커진 모시 전수관을 가면 지금도 전시와 시연을 관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모시가 삶과 역사에 완전히 하나 되어 있던 그 시대의 울림을 담은 자료는 남아 있지도 않고, 앞으로 도저히 만들 수도 없습니다. 
최지은, <모시한산> 9쪽, '어머니의 마음', 수류산방, 2015

이 책은 모시 한복의 멋이나 새로운 모시 공예품, 디자인을 소개하려는 의도로 만들지 않았으며, 한산 모시의 역사나 기능을 고증하려는 뜻도 없다. 또 어리석은 마음으로 굳이 덧붙이자면, 모시풀을 거두어다 입술을 헤어 가며 희고 가는 실을 토해 내며 늙어진 여자들의 이야기는 모시의 언저리라, 수류산방에서 책 제목을 "언저리의 미학"이라 한 뜻을 밝혀 둔다. 
같은 책 16쪽 

2017/04/10

(1704 광주 의재미술관) 의재를 찾아서

광주시 동구 운림동 85번지. 증심사와 약사사에 불공드리러 가는 마음들이 새벽부터 또 그 다음 새벽까지 끊이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오르다 보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길이 바로 의재 선생이 30년을 오가신 증심사 계곡 등산로이기 때문이지요.
요즘 이 등산로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의재 선생의 작업실이었던 춘설헌과 선생의 묘소, 옛날 차 공장이 그대로 있는 계곡 건너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집인 듯 미술관인 듯, 작은 나무 상자 같은 건물이 생겼거든요. 의재 선생을 기리는 마음과 정성이 지나쳐 혹시나 산과 물이 중심인 이 계곡보다 더 잘 보이게 되면 어쩌나, 설계자도 건축주도 시공자도 조심조심 마음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10년을 계획하여 지어 낸 건물이라고 합니다. 의재 선생의 그림이 살 집인데, 그저 무등산과 그림과 차가 좋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집인데 으리으리하고 첨단 기능을 갖추면 무엇에 쓴답니까. 옛 농업 학교 건물은 약간만 개보수하여 그대로 두었고, 담도 없고 커다랗고 세련된 간판도 없는, 새 건물인지 원래 있었는지 갸우뚱하게 만드는 그런 건물입니다. 
심세중,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 242쪽, 디자인하우스, 2001

몇 해 전 눈이 가득 내린 새해 첫날, 아무 계획 없이 광주에 갔다. 그렇게나 많은 눈이 내린 줄은 미처 몰랐다. 용산에서 광주행 첫 열차에 올라 잠든 후 눈을 떴을 때, 열차는 정읍 부근을 달리고 있었는데 주위가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산보다는 너른 들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남도 땅 가운데, 사방이 고요한 풍경에 사로잡혀 열차는 광주로 다가가고 있었다. 광주역에 내려 간장게장이 나오는 백반을 먹고 광장에 나오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 1980년 5월의 광주를 알고 있다는, 그 무등산. 그곳에 오르기로 하고 관광안내소에 들러 폭설에도 개방된 등산로가 있는지 확인했다. 단 한 곳, 증심사 입구만 개방이 되어 있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바로 무등산으로 향했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증심사 입구에 내리니 등산객들로 꽤나 붐볐다. 그들 행렬을 따라 나도 무등산에 난생 처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어서 문빈정사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하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폭설에 아이젠도 없이 산에 오르려니 긴장이 되었지만 무등산의 등산로는 말 그대로 순했다. 큰 어려움이 없었던 기억이다. 서석대까지 올랐다. 서석대와 하얀 눈이 이루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개방된 등산로가 하나뿐이었기에 올랐던 길로 되돌아 내려왔다. 그런데, 그런데 두 번이나 스친 길가에서 의재미술관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 기억으론 그렇다. 광주에 가야했다. 의재뿐만이 아니더라도, 광주에 가야 할 이유는 많지만, 오로지 의재만으로도 광주에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2017/04/06

기형도와 조병준

오늘은 열쇠를 하나 샀다.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게 열리고 잠기는지. 내 일생 처음으로 열쇠를 산 것이다. 그리고 몸이 흐트러진다. 내 의식과 무의식을 잠가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불안하다. 누구를 만나고 다방에 가서 율무차를 마시고 마지못해 흡연을 하고 술을 건네고 당구를 치든지 결국은 전자오락실이다. 버스 안에 손잡이를 잡고 흔들린다. 걸어온다. 집. 빈 집, 혹은 어머니가 계신 집. 발을 닦기. 엄지 발가락부터 하나하나. 기타를 잡고 튜닝을 한다. 불안하다. 기타를 놓는다. 나의 문학은 영원히 튜닝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기형도, <짧은 여행의 기록> 50쪽, 살림, 1990

이 글은 <짧은 여행의 기록>이란 제목으로 시인 사후에 출판된 산문집에 실린 편지 중 일부다. 편지라고 하지만 독자로서는 한 편의 문학처럼 대하며 읽었을 뿐인데, 며칠 전 알게 되었다. 편지의 대상, 즉 '준'이라고 시인이 칭한 그는 조병준 시인이었다. 소설가 성석제, 시인 원제길 등과 함께 기형도와 우정을 나누었다는, 그 시인. 


고등학교 때 절친한 친구인 조병준을 찾아 멀지 않은 서강대 캠퍼스를 자주 갔다. 조병준도 문학회 모임에 가끔 참석해서 준회원으로 간주되었다. 둘은 어쩌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토라진 계집애들처럼 이별을 한다고 종알거렸는데 그 덕분에 가끔 있곤 하던 이별식 석상에서 냉면은 잘 얻어먹었다. '성자를 찾아서'라는 시로 그때 우리를 감동시킨 조병준은 자신의 방에서 수백 장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예술의 귀족'이었다. 그의 방에서 엉덩이를 맞대고 밥 딜런이나 레너드 코헨을 들으며 시시한 연애담이나 시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한 적이 많았다. 동승동 언덕바지에 있던 그 집에서 나오는 아침이면 가까운 학림 다방에서 R. 스트라우스를 듣고 나서 205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곤 했다. 기형도가 이름을 생략하고 '조'라고 부르던, 또는 성과 이름의 첫 자를 생략하고 '준'이라고 부르던 조병준은 지금 인도에 가 있다. 그는 기형도의 생전에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였고 따라서 글자로 만들 수 있는 기형도의 생각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성석제, <정거장에서의 충고> 163-164쪽, 문학과지성사, 2009

그 사실을 알고 검색을 하다가 성석제의 동생 성우제의 블로그에 실린 글을 보게 되었는데, 시인이 생전에 수다스럽고,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 주고, 노래도 곧잘 하였다고 하는데, 요절한 시인을 문학으로만 대했던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오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오는데 갑자기 살기를 느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소리를 지를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나는 사람들 틈에 끼워져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쉬지 않았다. 손을 들어 심장 가까이 댔다. 미약한 울림이 쓸쓸하게 내 감각을 위로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얼굴 가득히 땀이 흘렀다. 심장마비란 이런 것일까. 나는 중계역(신도림)에 내려 콘크리트 의자 위에 쭈그리고 앉았다. 부끄럼은 잘 타는 편이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슴은 곧 터질 것 같이 팽팽한 풍선처럼 흔들렸다. 내 의식의 등유가 미친 듯이 출렁거렸다. 나는 아득히 내 아는 이들의 얼굴을 생각하고 천천히 허공을 향해 호명했다. 말을 나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나는 흔들리는 연기처럼 수직으로 일어섰다. 
기형도, <짧은 여행의 기록> 57쪽, 살림, 1990

어쨌든, 조병준 시인의 글을 하나둘 찾아 읽어보려 한다. 우선 수류산방에서 펴낸 책부터. 

청명과 한식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을 한식(寒食)이라 하는데, 이날은 종묘와 능원에 제향(祭享)을 지내는 날로 절기와 관계없이 성묘를 하는 하나의 명절로 여겨왔다. 반면 청명은 1년 24절기의 하나로, 동지에서부터 한 절기씩 나누어 가다 보면 한식과 서로 겹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엄연히 다른 날이다.
청명(淸明)은 봄이다. 그래서 봄에 피어나는 싹이나 꽃들이 한창인 것을 알 수 있다. 진달래와 목련은 꽃을 떼어낸 지 벌써 오래고, 개나리도 꽃을 피운다. 앵두나무의 하얀 꽃과 조팝나무의 작은 꽃들은 일시에 피어나서 우리를 기쁘게 한다. 외래종 민들레와 토종 민들레도 순서를 다투며 피어나고, 제비꽃과 꽃다지꽃, 양지꽃, 할미꽃, 그런가 하면 이른 봄에 먹었던 달래는 지천으로 하얀 꽃을 피워내니 작은 메밀밭을 연상케 한다. 바야흐로 봄의 절정에 와 있는 것이다.
원래 찬밥을 먹는 날은 한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청명이나 한식 때에는 아직 잡풀이 자라지 않아 마른 바람이 불어오므로 불이 나기 쉬운 계절이다. 따라서 나무를 심거나 묘를 손보는 사람들은 찬밥을 먹어 산불을 예방하는 때이기도 하다. 
한호철, <24절기 이야기> 92-94쪽, 지식과교양, 2016



춘분이 지나면 완연한 봄이지만 아직 아침 저녁에는 약간의 찬 기운이 남아 있다. 영상의 날씨로 확실하게 돌아섰지만 아침에는 영상 3-5도로 쌀쌀하다. 그러나 낮에는 10-15도 정도 되어 일교차가 꽤 크다. 게다가 입춘이 설날 전에 오면 봄 추위가 길어져 춘분이 지나도 꽃샘추위가 올 수 있다. 그래서 발아가 금방 되는 채소 종자를 춘분에 바로 심으면 싹이 나왔을 때 마지막 꽃샘추위에 냉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
청명 즈음해서 음력으로 중요한 날이 있다. 삼짇날이다. 음력 3월 3일은 양의 날이 겹쳐서 아주 길한 날로 여겨왔다. 작년 9월 9일 강남으로 돌아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다. 삼짇날은 원래 음력 3월 들어 첫 번째로 오는 뱀날(상사일上巳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날이 따뜻해 뱀도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라 이날 뱀을 보면 재수 좋다고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재수 없다고 하는 데도 있다. 어쨌든 삼짇날이 되면 완연한 봄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하여 봄꽃 구경하러 나들이 가는 날이기도 하다. 진달래꽃 따다 화전 부쳐 먹고, 양지 바른 곳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어린 쑥을 뜯어다 쑥버무리를 해먹는다. 청명이 되면 이제 안심하고 무엇이든 파종하는 날이니 화사한 봄꽃에 마음 들뜨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몸을 놀려 농사에 매달려야 한다. 
안철환, <24절기와 농부의 달력> 136쪽, 139쪽, 소나무, 2011 


그런데, 
미세먼지에 신음해야 하는 청명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