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열쇠를 하나 샀다.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게 열리고 잠기는지. 내 일생 처음으로 열쇠를 산 것이다. 그리고 몸이 흐트러진다. 내 의식과 무의식을 잠가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불안하다. 누구를 만나고 다방에 가서 율무차를 마시고 마지못해 흡연을 하고 술을 건네고 당구를 치든지 결국은 전자오락실이다. 버스 안에 손잡이를 잡고 흔들린다. 걸어온다. 집. 빈 집, 혹은 어머니가 계신 집. 발을 닦기. 엄지 발가락부터 하나하나. 기타를 잡고 튜닝을 한다. 불안하다. 기타를 놓는다. 나의 문학은 영원히 튜닝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기형도, <짧은 여행의 기록> 50쪽, 살림, 1990
이 글은 <짧은 여행의 기록>이란 제목으로 시인 사후에 출판된 산문집에 실린 편지 중 일부다. 편지라고 하지만 독자로서는 한 편의 문학처럼 대하며 읽었을 뿐인데, 며칠 전 알게 되었다. 편지의 대상, 즉 '준'이라고 시인이 칭한 그는 조병준 시인이었다. 소설가 성석제, 시인 원제길 등과 함께 기형도와 우정을 나누었다는, 그 시인.
고등학교 때 절친한 친구인 조병준을 찾아 멀지 않은 서강대 캠퍼스를 자주 갔다. 조병준도 문학회 모임에 가끔 참석해서 준회원으로 간주되었다. 둘은 어쩌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토라진 계집애들처럼 이별을 한다고 종알거렸는데 그 덕분에 가끔 있곤 하던 이별식 석상에서 냉면은 잘 얻어먹었다. '성자를 찾아서'라는 시로 그때 우리를 감동시킨 조병준은 자신의 방에서 수백 장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예술의 귀족'이었다. 그의 방에서 엉덩이를 맞대고 밥 딜런이나 레너드 코헨을 들으며 시시한 연애담이나 시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한 적이 많았다. 동승동 언덕바지에 있던 그 집에서 나오는 아침이면 가까운 학림 다방에서 R. 스트라우스를 듣고 나서 205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곤 했다. 기형도가 이름을 생략하고 '조'라고 부르던, 또는 성과 이름의 첫 자를 생략하고 '준'이라고 부르던 조병준은 지금 인도에 가 있다. 그는 기형도의 생전에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였고 따라서 글자로 만들 수 있는 기형도의 생각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성석제, <정거장에서의 충고> 163-164쪽, 문학과지성사, 2009
그 사실을 알고 검색을 하다가 성석제의 동생 성우제의 블로그에 실린 글을 보게 되었는데, 시인이 생전에 수다스럽고,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 주고, 노래도 곧잘 하였다고 하는데, 요절한 시인을 문학으로만 대했던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오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오는데 갑자기 살기를 느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소리를 지를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나는 사람들 틈에 끼워져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쉬지 않았다. 손을 들어 심장 가까이 댔다. 미약한 울림이 쓸쓸하게 내 감각을 위로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얼굴 가득히 땀이 흘렀다. 심장마비란 이런 것일까. 나는 중계역(신도림)에 내려 콘크리트 의자 위에 쭈그리고 앉았다. 부끄럼은 잘 타는 편이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슴은 곧 터질 것 같이 팽팽한 풍선처럼 흔들렸다. 내 의식의 등유가 미친 듯이 출렁거렸다. 나는 아득히 내 아는 이들의 얼굴을 생각하고 천천히 허공을 향해 호명했다. 말을 나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나는 흔들리는 연기처럼 수직으로 일어섰다.
기형도, <짧은 여행의 기록> 57쪽, 살림, 1990
어쨌든, 조병준 시인의 글을 하나둘 찾아 읽어보려 한다. 우선 수류산방에서 펴낸 책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