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운데 대성당을 끌어안은 밀라노 시가지에는 또하나 중요한 기호가 있다. 바로 나빌리오 운하다.
19세기 파리에서 시작된(그리고 오늘날 대체로 '서구적'이라고 여겨지는) 서유럽의 도시계획 이념은 기하하적인 원이나 직선 위에 구축된 강인하고 인공적인 도시공간 구성에 기초하는데, 대표적인 도시들이 하나둘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중세에는 주로 대성당을 기점으로 외곽을 이루는 성벽을 향해 시가지가 불규칙적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시가지 중심에 대성당이 있다는 점은 밀라노도 다르지 않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운하가 이 도시를 여느 도시와 다르게 만들어준다. 밀라노 사람이 성벽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이 운하는 성벽 한참 안쪽에, 좁은 곳은 반지름 500미터 정도의 불규칙한 원을 그리며 형성되어 있다. 원래는 대성당 건설에 사용할 석재를 운반하기 위해 팠다고 하는데, 폭이 20미터도 안 되지만 밀라노 남서쪽에서 알프스로부터 흘러드는 티치노 강으로 이어져 중요한 교통수단 역할을 했다. 그와 동시에 파리의 센강, 로마의 테베레 강 같은 자연의 물길이 없는 밀라노 사람들에게는 없어선 안 되는 풍취를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운하로 갇힌 둥근 도심 공간은 밀라노라는 도시의 중핵을 이루며 번영을 가져왔다. 그러나 실로 아쉽게도, 종전 후 부흥 과정에서 나온 성급한 도시 정비안 탓에 이 운하는 대부분 흔적도 없이 매립되어버렸다.
이 '나빌리오의 고리' 바로 옆에 사는 한 노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이 집 앞에는 좁다란 보도 너머로 운하 물이 흘렀어요. 겨울이면 나빌리오에서 피어오른 안개에 가스등 불빛이 부옇게 가라앉아 정말 아름다웠지요. 아침에는 안개 속에서 갑자기 납작한 물윗배가 나타나기도 했고요. 운하가 없어지고 도심의 습기가 한결 덜해진 건 사실이지만요.
오늘날 도심을 둘러싼 세나토 거리나 비스콘티 디 모드로네 거리를 숨막힐 듯 가득 채운 자동차 무리를 보고 있자면, 문득 옛날 그 아래를 흐르던 물소리가 땅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70-71)
누구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욕심으로 화제를 독차지하려는 사람이 있는 밤이면 시간의 흐름이 더디게 느껴졌다. 우리의 이런 대화가 알고 보면 호스트의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싶어 문득 공허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초대를 받으면 또 기대감을 안고 찾아가게 되는 이유는 역시 대화로 만들어내는 허구 세계의 즐거움 때문이었으리라. 오늘은 재미있었다, 혹은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마치 작품을 논하듯 그날 대화의 성과를 비평했다. (88)
스테파노는 페데리치 부인이 주최한 모임에 혼자 올 때도 있고 아내 라우라와 함께 올 때도 있었다. 라우라는 스테파노와 비슷하게 키가 커서 늘 굽 낮은 구두를 신었다. 키가 작은 페데리치 부인이나 내게 인사할 때면 항상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구부려주었다. 파도바의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는 종종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정치인이었는데, 그녀는 큰 키와 유명인인 아버지 모두 부끄럽게 여기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스테파노가 천천히 문학론을 펼치면 라우라는 그를 보는 듯 마는 듯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자기 생각과 다른 얘기가 나오면 그렇지만, 하고 끼어들어서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띄엄띄엄 제 의견을 말했다. 말을 마칠 때는 항상 내 생각은 그래요, 하고 매듭지으며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쑥스럽게 어깨만 살짝 움직이는 그녀의 웃음을 보면 문득 긴장이 풀리면서 왠지 모르게 설득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이론을 말한 것도 아니고 모두를 장악할 만한 주장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체로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인데도, 다들 라우라의 의견을 여름날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다리곤 했다.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