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4

히로시마에서는 최초의 원자폭탄이 도시를 파괴하고 세상을 뒤흔든 지 30일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불가사의하게 그리고 끔찍하게 죽어가고 있다 ━ 하늘과 땅을 온통 뒤흔들어놓은 그 대폭발에서도 상처를 입지 않았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기자는 원자병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히로시마는 폭격당한 도시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증기롤러가 깔아 뭉개고 지나가서 그 도시를 완전히 없애버린 것 같다.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사방을 둘러보면 25-30평방마일 내에서는 건물 한 채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저지른 그 같은 파괴를 보면 뱃속이 휑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자는 임시 임시 경찰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도심의 한 판잣집 같은 건물로 갔다. 거기서 남쪽을 바라보니 붉은 돌부스러기들만 3마일 정도 뻗쳐 있다. 수십 개로 구획지어진 도시의 거리며, 건물, 집, 공장, 인간 들을 파괴하고 원자폭판이 남긴 것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폭탄이 떨어졌을 때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으나 나중에 괴상한 후유증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들의 건강은 악화됐다. 식욕이 없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져나가고 몸에는 푸른 반점이 생겼다. 그 다음에는 귀와 코와 입에서 출혈이 시작됐다. 처음에 의사들은 일반적인 쇠약증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들에게 비타민 A를 주사했는데 결과는 끔찍했다. 주사바늘이 꽂힌 곳부터 살이 썩어가다가 예외없이 죽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이 투하한 최초의 원자폭탄이 가져온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후유증 가운데 하나이다. 거기서는 내가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특이한 냄새가 났는데, 유황 냄새와 비슷하긴 하지만 정확하게 그 냄새도 아니다. 아직도 타고 있는 불더미 옆을 지날 때나 잔해더미에서 시체들을 끌어내고 있는 곳 등 모든 것이 파괴된 지역이면 예외없이 그 특이한 냄새가 났다.  
"아침 일찍 공습경보가 있었지만 정작 나타난 것은 비행기 두 대뿐이었지요. 우리는 정찰기로만 생각하고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해제 경보가 울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러 나갔지요. 그후 8시 20분쯤 내가 사무실로 가려고 막 자전거에 올라탔을 때 비행기 한 대가 돌아왔어요. 그러고는 뭔가가 번개처럼 번쩍하는 동시에 뜨거운 열기와 폭풍처럼 세찬 바람이 얼굴에 확 와닿았어요. 나는 땅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내 옆에서는 집이 무너져내렸지요. 내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에 옆에서 강력한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벼락 같은 폭발 소리가 났어요. 올려다보니 낙하산 모양의 거대한 검은 연기기둥이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더군요. 그 중심부에는 진홍빛 선이 있었는데, 그것이 연기기둥을 헤치고 점점 퍼져나가 마침내 전체가 빨갛게 되었어요. 그리고 히로시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나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윌프레드 버체트, <히로시마의 그늘> 63-67쪽, 표완수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