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7

꿀벌의 무지

꿀벌은 몸통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서 원래는 제대로 날 수 없는 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꿀벌은 자기가 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당연히 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날갯짓을 함으로써 정말로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얼마나 신빙성 있는 말인지 모르지만,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꿀벌의 무지와 같은 것이다.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대학 다닐 때부터 글쓰기는 곧 영어로 쓰는 것을 의미했고, 한 번도 우리말로 글 쓰는 것에 관심을 가지거나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거의 의도적으로 책도 우리말로 된 것보다는 영어로 된 것을 더 많이 읽었고,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지금도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영어이다. 그러나 나는 꿀벌과 같이 그냥 무심히 날갯짓을 한다. 그러므로 나의 글은 재능이 아니라 본능이다. 그래서 머리 속에 있는 말보다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고르지도, 다듬지도 않고 생긴 그대로 투박한 글로 옮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의 악몽은 항상 내 몸과 다리를 지탱해 주는 목발, 그리고 보조기와 연관된 것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길바닥에 앉아 있고, 사람들은 길을 가다 말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지만, 목발과 보조기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다. 이 글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꼭 그와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나는 땅바닥에 앉아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나를 에워싼 채 보고 있는 듯한 느낌. 얼른 일어나 도망가고 싶지만 일어설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당혹감. 너무 부끄러워 당장이라도 땅속으로 꺼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책을 엮게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재능도, 재주도 없으면서 '꿀벌의 무지'만으로 쓴 끌들을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날지 못하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 나의 무지와 만용에 스스로 갈채를 보낸다. 못한다고 아예 시작도 안 하고, 잘 못한다고 중간에서 포기했다면 지금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_장영희, <내 생애 단한번> 6~7쪽, 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