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 조성룡 선생의 강연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돈암초등학교 앞에서 방구가 나올 것 같아 몇 걸음 뒤처졌다. 이는 방구가 나오려고 할 때면 (나 혼자만) 언제 튼지도 모르는 나의 행동양식처럼 돼 버렸는데, 이날따라 유독 방구소리가 크고 길게 났다. 어둡고 조용한 보행로에서 몇 걸음 앞서 걷던 無는 마치 생전 처음 경험하는 방구소리인양 놀라며 헛웃음을 크게 짓고는 집에 올라가는 내내 내 방구 얘기만 했다. 방구로만 이루어진 얘기(대화라고 할 순 없다)라니!
건강을 생각할 때면 나는 늘 십 년도 더 전에 약수동에 살 적에 설거지하며 삐끗했던 허리에 혹시나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며 간혹 걱정을 하곤 했었는데 이마저도 작년 건강검진 때 허리시티를 찍고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부터는 사라졌고, 그 이후로는 눈의 피로와 세월에 따라 방전 속도가 증가하고 있는 보통 체력을 제외한다면 거의 유일하게 내 몸의 이상이 아닐까, 라고 의심이 되는 건, 사실은 방구다. 나는 오래전부터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내 몸의 현상의 일부라고 생각이 돼 무뎌졌을 정도고, 자주 변기를 막히게 하곤 했던 나의 변도 이젠 요령껏 막히지 않게 하는 방법을 터득(이라고 하기엔 그저 수시로 물을 내리는 것뿐이지만)하고 나서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겪고 있는 변비는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으레 그럴 거다, 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내 변의 압도적인 크기를 포함해서, 대구에서 한의원을 차린 사촌누나에게 찾아갔다가 보약을 짓는다고 맥을 짚고나서 일주일에 변을 몇 번 보냐는 누나의 질문에 두 번 정도라고 답했지만 사실은 당시만 해도 언제 변을 본 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내 변비는 심각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변비 증세를 의학적으로 인식한 나는 여전히 심각하고도 당연한(?) 변비를 겪고 있다. 그리고 남들이 아침마다 소변만 보러 가는 내가 부러울 정도로 화장실에서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변을 보는 수일 동안 나는 방구로 변을 대신하고 있다. 길에서든 어디서든. 그러니 나에게는 변을 대신할 정도로 당연한 생리 현상일 뿐인데 건강 문제를 굳이 떠올리라고 하면,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지만, 사실은 방구입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홍대에 다녀오며 방구 때문에 시달린 게 이틀이나 지났는데 無, 이 악독한 동반자는 빨래통에 담긴 내 속옷에 엉덩이 부분이 구멍이 난 걸 보며 분명 내 방구 때문일 거라며 또 방구 얘길 끊임없이 하고 있다. 심지어 네이버에 찾아보고는 “방구를 뀌면 암모니아 가스가 방출이 돼 동일한 지점에 반복이 되면 속옷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며 맥 화면을 띄워났으니 보라고 잠결에 흐릿한 눈짓을 보내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맥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일기를 쓰고 있다. 지금은 방구가 나올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