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9

마탄사스의 석양은 핑크빛

다시 돌아올 아바나를 아침 일찍 산책하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침은 대체로 고요했지만 이른 바다는 짙은 색을 띤 악마의 모습으로 포효하고 있었다. 말레콘 너머 바닷길을 따라 20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엔,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낸 1959년 쿠바 혁명 후 오랫동안 쿠바를 어쩌지 못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가 거대한 숨을 토해내고 있다.

적게는 60여 차례, 많게는 6천여 차례에 달한다는 CIA의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 기도는 이미 식상한 스토리이고, 60년대 초반 아바나 항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상선을 폭파한 이래로 심심찮게 유사한 종류의 테러가 있어왔다. 70년대에는 쿠바 국적의 민항기가 폭탄 테러로 추락했고 90년대에는 북부의 해안도시인 카르데나스에 무장 게릴라들이 침투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아바나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고 1997년에는 아바나와 바라데로의 호텔과 식당, 나이트클럽 등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다. 이런 테러에는 주로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들을 앞세우고 있지만 CIA와 마이애미의 반카스트로 조직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유재현, 강)

동네 골목길을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숙소로 돌아가 까사 주인 아주머니가 끓여준 커피를 마시며 떠날 준비를 했다. 어디로 가냐고 묻길래 마탄사스에 간다고 했더니, 기차역과 터미널에 전화를 걸어 시간을 알아봐 주셨다. 기차는 없다고 했고 버스를 타야 한다며 알려준 아주머니의 친절에 마음이 후텁해졌다.

숙소 주인 부부, 아바나
아침의 갈림길, 아바나, 쿠바, 2007

늘 그랬듯, 터미널까지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보이는 낯선 풍경을 로모에 담으며 여유를 부리다 보니 의외로 제법 많이 걷게 됐고 조금 더워져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했더니 당최 알아듣질 못하는 거였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상점 주인 뒤에 있는 냉장고 문을 직접 열어젖히며 아이스크림을 꺼내 들고는 계산을 치르려 했더니 그제서야 주인은 아, '엘라도(helado)'하며 미소를 짓는다. 

에스파뇰에는 명사, 대명사, 형용사, 관사에 성(性) 구별(別)이 있는데, 명사를 예로 들면 주로 남성명사는 'o'로, 여성명사는 'a'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친밀한, 친구란 뜻을 가진 amigo(a)가 그렇다. 나는 쿠바를 여행하는 내내 아미고와 치노(Chino, 중국사람)란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비아술(Viazul)을 타고 아바나를 빠져나가며, 도로에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히치하이커들을 뒤로 하며 다시 돌아올 때를 기약한다.

쿠바의 버스는 비아술과 아스트로가 있는데, 비아술은 관광객 전용 버스로 유명한 도시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렌트를 하지 않는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이용할 수밖에 없는 버스다. 그리고 아스트로는 비아술과 대비되는 로컬버스인데 내가 갔을 때만 해도 관광을 목적으로 한 외국인은 탈 수가 없었다. 아바나에서 곧장 비아술을 탄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스스로를 비춰주는 거울 앞에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마탄사스에 도착해 고즈넉한 길을 걸으며 우선 숙소를 잡기로 한다. 하지만 아바나에서처럼 론리에 소개된 숙소는 모두 방이 없었고, 역시 아바나에서처럼 까사에 계신 분들의 도움으로 아늑한 가정집에 발코니가 딸린 작은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쿠바에서 호텔이 아닌 까사 빠티쿨라라고 불리는 가정집에 딸린 방을 구하는 건 간단하다. 그렇게 숙박을 치는 집엔 까사의 마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까사 마크가 붙은 곳 외에도 숙박을 치는 곳이 의외로 많았고 마탄사스에서 머문 곳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가격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대체로 비슷했다.

까사 마크, 바라코아

비아술을 타고 마탄사스로 들어오며 마주친 풍경들이 아주 운치가 있어서 산책하기에 제격인 곳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조금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충 방에 짐을 풀고 가벼운 차림으로 숙소를 나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저녁이 가까운 무렵의 오후가 되자 골목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떤 곳에서는 이미 춤의 파도가 덩실덩실, 또 어떤 곳에서는 꼬마 아이들이 골목길 야구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멀리, 언뜻 비치는 빛의 색을 따라 닿은 곳에서는 석양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나는 석양을 보는 게 언제나 좋았다. 아마도 인도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그 마음은 인도 웬만한 도시 어딜 가나 있는 선셋포인트에서의 시간을 매일 즐겨서일 텐데, 일상에서는 그 무렵이 아련하기만 하다. 석양이 좋은 건, 물론 보기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오후에도 저녁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에, 비록 아주 잠깐이지만, 머무른다는 느낌 때문에 그렇다. 마치 여명이 그렇듯.
그렇게 석양에 넋을 잃고 있다가 잠깐 뒤를 돌아보았더니 한 소년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미소짓는 소년, 마탄사스, 쿠바, 2007
마탄사스의 석양

+
쿠바를 그리워만 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1년 정도가 지난 무렵 수첩을 뒤져 주소가 적혀 있는 곳 모두에 인화한 사진을 보냈는데, 아바나의 숙소 주인 부부는 잘 받아보았을까, 나를 기억은 하고 있을까?  


2014.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