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5

스토너 (존 윌리엄스, 2015)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을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학생이 눈을 깜박이자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뺨에 내려앉았다. 햇빛이 뺨의 솜털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책상을 꽉 붙들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갈색 피부에 감탄하고, 뭉툭한 손끝에 꼭 맞게 손톱을 만들어준 그 복잡한 메커니즘에 감탄했다. 작고 작은 정맥과 동맥 속에서 섬세하게 박동하며 손끝에서 온몸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피가 느껴지는 듯했다. 

윌리엄 스토너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주위 학생들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그들이 나간 뒤로도 몇 분 동안 그는 꼼짝않고 앉아서 자기 앞의 좁은 바닥 널을 빤히 바라보았다. 바닥 널은 그가 결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학생들의 부산한 발길에 닿아서 니스 칠이 완전히 벗겨진 상태였다. 그는 그 바닥 위에 자신의 발을 미끄러뜨리며 나무가 신발 바닥에 닿는 거친 소리를 듣고, 가죽을 통해 느껴지는 거친 질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늦가을의 쌀쌀함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창백한 하늘 아래 둥글게 말리거나 비틀려 있는 나무들의 벌거벗은 가지가 보였다. 수업에 들어가려고 서둘러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학생들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이 중얼거리는 소리, 돌로 포장된 길에 신발이 또각또각 닿는 소리가 들리고, 추위에 발갛게 변한 채 가벼운 산들바람을 피해 수그린 얼굴들이 보였다. 그는 호기심에 차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들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들이 자신과 아주 멀지만 또한 아주 가까운 존재인 것 같았다. 그는 이런 느낌을 간직한 채 서둘러 다음 강의에 들어갔다. 토양화학 교수가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필기하고 외워야 할 내용을 불러주는 단조로운 목소리에 맞서 그 느낌을 간직했다. 이 강의의 내용을 외우는 고된 과정이 점점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2학기에 윌리엄 스토너는 기초교양 강의들을 빼버리고, 농과대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철학과 고대역사의 기초강의 한 개씩과 영문학 강의 두 개를 들었다. 여름에 그는 다시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했지만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22~24)

"자네도 도망칠 길을 없어, 친구. 없고말고. 자네가 누군가? 소박의 땅의 아들? 자네가 행세하는 것처럼? 아니, 아니지. 자네도 환자일세. 자네는 몽상가이고 광인이야. 세상은 더 미쳤지만. 산초가 없는 우리만의 돈키호테. 푸른 하늘 밑에서 뛰놀고 있지. 자네는 꽤 똑똑해. 어쨌든 우리 둘의 친구인 저 녀석보다는 똑똑하니까. 하지만 자네에게는 오점이 있네. 오래된 약점. 자네는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여기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곧 알 수 있을 걸세. 자네 역시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졌다는 걸. 자네가 세상과 싸울 거라는 얘기가 아냐. 세상이 자네를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내도 자네는 아무것도 못할 걸세. 그냥 멍하니 누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겠지. 자네는 항상 세상에게서 실제로는 있지 않은 것, 세상이 원한 적 없는 것을 기대하니까. 목화밭의 바구미, 콩줄기 속의 벌레, 옥수수 속의 좀벌레. 자네는 그런 것들을 마주보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해. 너무 약하면서 동시에 너무 강하니까. 이 세상에 자네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없네." (45~46)
 

스토너가 온몸으로 자각한 저 느낌을, 나도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25/10/14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2021)

안다. 늘 그렇듯이 언어란 결국 모든 것을 변조해버릴 것이다. 작가는 이 점을 너무 잘 알고,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좋은 작가들이 문장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피와 땀을 흘리고, 최고의 작가들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몸이 부서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찾아낼 수 있는 진실이 있다면 거기서 찾아내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에.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 그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그런 작가들 - 이들만이 내가 계속 읽고 싶은 작가이고, 나를 고양시키는 작가이다. 이제 도대체 읽을 수가 없는 책들은 - (218)


에너지 소모가 심한 하루를 보내고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 안에서, 그래도 모자라 집에 도착해서 잠깐 집중해서 마저 다 읽었다. 에너지가 소진되어서일까, 책에 깊이 빠져버린 걸까. 신형철처럼 나도 연달아 또 읽어야 하는 걸까. 쓰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한 걸까. <룸 넥스트 도어>라는 영화를 봐야 하는 걸까. 

이 작가를 왜 이제 알았을까. 그 많은 질문들은 다 어디에 숨어 있을까. 

2025/09/28

먼저 온 미래 (장강명, 2025)

"그때까지 정석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알파고  때문에 그 틀이 깨졌고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어요. '바둑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정답이 정답이 아니게  됐다, 이제 마음대로 둬도 된다'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다시 '알파고 정석'이 생겼어요. 그때 자유라는 건 틀이 무너질 때 생기는 잠깐의 해방이었던 거죠. 지금은, 저는 되게 슬퍼요. 지금 기사들이나 학생들이 두는 바둑은 저희가 배운 바둑이 아니에요. 전혀 다른 바둑이에요. 에전에는 정석이 있어도 그걸 비틀 수가 있었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또 난리가 나죠. 살짝 비튼 것에 대한 연구가 막 시작되고, 또 다른 변화가 생겨요. 약간 개성 있는 기사가 정석을 비틀면 거기서 변화들이 조금씩 생기고, 정석들이 조금씩 변화했거든요. 예전에 우리가 만들었던 정석은 이렇게 여러 기사가 많은 걸 경험하고 연구하면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비틀 수가 없어요. AI가 정해주니까. AI를 사용하면 이길 확률이 바로 뜨니까 '이 수는 아웃' 이렇게 돼요. 전보다 더 견고한 성에 답답하게 갇혀버린 느낌이에요. 바둑이 싫어진 건 아니고, 바둑을 좀 잃어버린 기분이에요.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을 뺏겨버린 느낌." (58)

 

"제가 어려서 바둑을 배울 때 바둑은 평생 공부를 해도 끝에 다다를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프로기사 수준이 되면 누군가에게 배운다기보다는 스스로 갈고닦고 혼자 수련하는 거죠. 그래서 아무도 답을 모르는 것을 내가 공부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런 게 없어졌어요.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연구하던 것과 AI가 정답을 알려주는 상태에서 연구하는 건 다르죠." (59) 


엊그제 배송된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를 읽고 있다. 챗GPT로 대표되는 AI시대의 - 우리가 아직 완전히 실감한다고 하기엔 섣부르지만 - 예고편은 사실상 '이세돌 vs 알파고' 간 바둑 대결이 아니었을까. 시간을 곱씹어보니 무려 9년 전. 바둑을 두지 않고 둘 줄도 모르지만, 이 책은 바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AI가 바둑판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에 대한 르포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바둑 AI프로그램이 보급되면서 변화가 스며들고 있는 바둑계의 풍경을 여러 바둑 기사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약간 자조하듯 읊조린다. 비단 바둑계에서만 그러하진 않을 것, 이라고. 

2025/09/20

어린이는 멀리 간다 (김지은, 2025)

누구에게나 옆집이 있고 아마도 드문드문 어린이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어린이는 살아 있다. 옆집의 어린이는 격리 없이 멀리 갈 수 있어야 하고, 멀리까지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어린이에게 보내는 안부를 잊지 말아야 한다. 'N번방'의 수많은 피해자 가운데 옆집의 어린이가 있다는 현실을 뼈아프게 자각해야 하고, 돌봄 공백 속에 집에 갇힌 옆집 어린이의 근황을, 내가 버리는 쓰레기 더미를 껴안고 살아가게 될 그들과 그들의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고발하고 구조에 나서고 행동하는 옆집의 어른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믿는다. (99)


좋아서, 숨을 고르고 가만 생각하고 싶어서 급하게 읽지 못하는 책이 있다. 주말 아침, 지하에 내려와 주중을 되돌아보고 주말에 할 일을 점검한다. 

좋은 책이 너무 많다고 조바심내지 않는다. 

2025/08/22

가만한 당신 세 번째 (최윤필, 2022)

어려운 재난 용어와 참담한 숫자를 전달하는 게 그의 일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선 유머와 위트를 곧잘 구사하곤 했다고 한다. 2017년 어느 기자회견 도중 그는 '산사태로 기울어진 전신주 사진'도 함께 주목해달라고 말해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 무렵 비리에 연루돼 조사를 받던 한 정치인이 운전 도중 전신주를 들이받은 사건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거였다. 회견 직후 트위터에는 전신주를 지키자는 뜻의 '#SaveTiangListrik'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뉴욕타임즈> 기자에게는 "트럼프의 가짜 뉴스와 달리 나는 진짜만 제공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는 SNS를 통해 재난 소식과 안전 홍보 메시지뿐 아니라 일상적인 풍경 사진과 재미있는 사연, 직접 촬영한 재해 관련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언젠가 그는 "재해와 재난 정보도 사람의 이야기임을 여기와서 알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결국엔 상실과 치유에 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추상적인 미덕일수록 부풀려 표현하기 쉽고, 부풀린 표현은 말의 값어치를 떨어뜨리지만, 그는 정확하고 신속하고 정직한 공보관이면서 따뜻한 공보관이기도 했다. 정작 그는 "따분한 뉴스만 전하면 나부터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89-290)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 시리즈는 시중에 세 권 나와 있는데, '가만히'가 아닌 '가만한'에 한동안 눈길이 가는 제목이다. 내가 그의 글을 처음 언제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한국일보 기자다. 같은 제목의 '부고기사'도 쓰고 '기억할 오늘'이라는 아주 짧은 것도 쓴다. '부고기사' 말 그대로 죽은 자에 관한 것인데, 여느 부고와 달리 그의 부고는 죽음과 장례식장 정보에 그치지 않는다. 

우선 부고 대상이 아주 유명해서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은 아닌 경우가 많지만 나름의 유명세를 가지면서 우리에게 전해질 만한 따뜻하고 '소수'적인 이야기를 가진 이라는 점이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그 이야기 하나 하나가 다채로우면서도 눈물이 날 만큼 '좋다'. 

따스하면서도 새로운 시선, 여기에 뒤쳐지지 않는 글솜씨. 요 며칠 책에 실린 30인의 부고 기사를 읽는 데 출퇴근 시간을 할애하며,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