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3

일정과 준비


전체 일정
2014년 9월 27일 ~ 10월 12일

이동
인천 - 카트만두 : 말레이시아항공
카트만두 - 포카라 : 국내선(예띠에어라인, 부다항공)
포카라 - 나야풀 : 로컬버스

트레킹
9월 29일 ~ 10월 9일(10박 11일)

트레킹 루트
나야풀Nayapul - 비레탄틴Birethanti - 수담Sudame - 힐레Hille - 티케둥가Tikhedhungga(1박) - 울레리Ulleri - 반탄티Banthanti - 고레파니Ghorepani[푼힐Poon Hill](2박) - 치트레Chitre - 시카Shikha - 타토파니Tatopani(3박) - 고레파니Ghorepani[푼힐Poon Hill](4박) - 데우랄리 패스Deurali Pass - 타다파니Tadapani(5박) - 촘롱Chomrong(6박) - 시누와Sinuwa - 밤부Bamboo - 도반Dovan(7박) - 히말라야Himalaya - 데우랄리Deurali - 마차푸츠레 베이스캠프Machhapuchhre Base Camp[안나푸르나 남봉 베이스캠프South Annapurna Base Camp](8박) - 안나푸르나 남봉 베이스캠프South Annapurna Base Camp(9박) - 촘롱Chomrong(10박) - 지누단다Jhinu Danda - 시와르Siwar - 나야풀Nayapul

준비물
여권, 지갑, 이티켓, 팀스, 퍼밋, 책(오래된 미래, 바람을 담는 집, 붉은 꽃 동백), 일기장, 펜, 시계, 선글라스, 리코(충전기, 배터리 4개), 아이폰(이어폰, 충전기), 헤드랜턴, 모자, 물통(1리터), 장갑, 비니, 토시, 목토시, 타이즈, 양말4, 속옷4, 손수건, 스포츠타올2, 수건, 옷가지(바지2, 반팔2, 긴팔3, 반바지1), 등산화, 고어텍스, 슬리퍼, 판쵸, 다운자켓(경량), 세안제, 샴푸, 면도기, 물티슈, 휴지, 타이레놀, 비아그라, 썬블락, 로션, 칫솔, 치약, 자물쇠, 맥가이버칼, 손톱깍이, 고리3, 가루비누, 비누, 침낭, 지도

트레킹 외
패러글라이딩(포카라)
스파&트레커 마사지(카트만두)

학교 - 교육지옥인가, 민주적 자치공동체인가

제가 보기에 새누리당 정권이 전교조를 탄압하려고 저렇게 극렬하게 나오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결국 전교조가 민주적 성향을 가진 교사들로 구성된 잘 조직된 지적 그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사들이란 무엇보다 외부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교단에서 어느 정도 자율적인 활동이 보장된 사람들입니다. 그 교단을 통해서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적 가치를 전파하는 게 싫고 두려운 거죠. 이 나라 수구 지배층이 KBS와 MBC를 포함한 주류 미디어는 전부 자기편으로 만들었는데, 아직 장악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미디어 하나가 있잖아요. 바로 학교 교단이라는 프로파간다 미디어 말입니다. 교단이라는 것은 자라는 세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때 알거나 느낀 게 그 뒤 제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학교교육의 영향은 수십 년 후에 나타나는 것만도 아닙니다. 지금 교단에서 교사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가치를 전파하느냐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의 우리사회 현실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한국의 지배세력은 겉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내심으로는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것도 싫고, 국민이 똑똑해지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똑똑해지면 다루기 힘드니까요. 그러니까 전교조가 생리적으로 싫은 거예요. 예를 들어, 전교조가 생기기 이전에 우리나라 학교들에 촌지문제가 심각했잖아요. 그런데 전교조가 창설되고 전교조 교사들이 일제히 촌지를 거부하면서 결국 촌지문제는 학교에서 거의 사라졌죠. 이런 게 싫은 겁니다. 적당히 썩은 선생, 썩은 교육이 맘에 드는 거예요. 그래야 자기들이 설 자리가 넓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죠. 중산층 학부모들도 마찬가집니다. 전교조 창설 당시에 중산층 부모들이 주로 반대를 했는데, 그 사람들의 논리가 뭐였느냐 하면, 학교 선생님들이 어째서 노동자냐 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노동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혹은 노동자를 업신여기는 속마음을 내비친 거죠. 당시 어느 잡지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어떤 학부모들은 전교조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은 자기들도 잘 안다고 그랬어요. 그렇지만 전교조 교사들이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 공생의 삶을 강조하는 것은 원론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자기 아이들만은 예외로 하고 싶다는 얘기를 솔직하게 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하든 자기 아이만은 경쟁사회에서 이기기를 부모로서는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부터 경쟁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죠. 그런 얘기를 솔직히 털어놨습니다. 결국 그런 거예요. 전교조가 밉고 싫은 것은 전교조가 도덕적으로 옳고, 인간적으로 좋은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게 뭐냐면, 지금 한국사회에는 폭주하는 권력에 제동을 걸 저항세력들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습니다. 일반 노동조합은 벌써 노조로서 기능부전에 빠졌고, 시민운동단체들도 이빨이 빠져버렸어요. 다들 고만고만하게 연명하며 하루하루 이슈별로 싸우고 있지만, 정부나 대기업의 횡포를 막을 만한 힘은 전혀 없습니다. 국회에는 야당이 있다고는 하지만 뭘 하는지 모르겠고요. 하기는 야당도 힘을 발휘하려면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이 활기 있게 살아서 받쳐줘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아직까지는 가장 잘 조직된, 그것도 지적으로 상당히 고른 수준을 가진 교사들의 조직인 전교조가 거의 유일한 대항세력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수구세력에게는 전교조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어떻게든 깨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점에 대해서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지식인들도 별로 인식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전교조가 무너지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기반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분명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어떻든 사회당이라는 상당한 힘을 가진 야당세력이 일본에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당의 정치적 기반이 주로 노동조합이었고, 그중 제일 잘 조직된 큰 노동조합이 국영철도노조와 일본교직원노조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1980년대 중반에 철도를 민영화한 것은 경제논리 때문인 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나카소네 총리가 이끌던 자민당 정권이 사회당의 정치적 기반인 노동조합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철도 민영화도 그냥 민영화가 아니라 소위 분할민영화라고 해서 여러 개로 쪼개어 나눴습니다. 그러고는 기존 국영철도노조에서 탈퇴하는 노동자만 민영화된 철도회사들에 재취업할 수 있게 만들었죠. 그 결과 일본에서 제일 힘이 있었던 철도노조는 완전히 와해되었죠.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라는 것으로 민영화를 밀어붙였지만, 실은 이렇게 음험한 정치적인 계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여튼 이런 상황 속에서 ‘일교조’도 현저히 동력을 상실합니다. 지금 일본이 전후의 평화헌법체제를 벗어나서 다시 군국주의를 지향하고, 사실상의 자민당 독재정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결국 사회당, 철도노조, 일교조와 같은 대항세력이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때는 일본이 고도경제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한때 학생운동을 한 사람들도 대기업으로 들어가고, 관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의 민주세력들은 거의 전면적으로 무너집니다. 이런 일본의 선례를 보면 우리도 굉장히 걱정이 됩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민주주의를 이 정도나마 버텨주고 있는 것은 철도노조나 전교조 같은 조직이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전교조의 의미를 이렇게 좀더 폭넓고 거시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녹색평론 138>, 김종철

오직 진실만이 위로입니다

삶이 거짓말처럼 참혹할 때 죽음이 더 삶답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위로하려 마십시오. 유일한 위로는 진실입니다.


<녹색평론 138>, 김해자

2014/11/12

이사를 하고 난 뒤, 집에 오면 늘 뭔가에 분주하다. 무엇이 그리 눈에 띄고 또 하게 만드는지. 오늘은 집에 왔더니 약간은 시큼하면서도 눅눅하고, 그러면서 신 냄새가 났다. 그래서 우선 베란다 창을 모조리 열고 정체가 무엇일까 살피는데 주범은 바로 주말에 집에 꽂아두었던 꽃이었다. 칠할 이상이 크게 시들어버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얼핏 보아도 썩은 듯한 물은 흐릿한 색으로 묵직한 냄새를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물을 비워내고 시든 꽃은 신문에 싸서 버린 후 약간 남은, 한 움큼도 되지 않는 산 녀석들을 다시 새 물을 받아 원래의 자리에 놓아두었다. 그래도 음악과 책만이 가득한 이 허전한 집에 녀석이 있으니 사뭇 다른 느낌과 기분이다. 
수건을 비롯한 빨랫거리들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샤워를 한 뒤 마른 옷가지를 정리하고 행주를 삶고 그 사이 세탁이 완료된 빨래를 널고 테이블에 앉아 사흘치 신문을 천천히 훑는다. 신문에서 발견한 몇 가지 단어. 
무라카미 하루키, 수색중단, 36년, 우승, FTA. 
시기가 시기인 만큼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이른바 ‘무상’ 논쟁이다. 다시 또, 재벌 손자에게 밥을 왜 주냐는 이야기가 제 목숨 죽은 줄 모르고 고개를 든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지긋지긋한 정치인들도 개개인의 면면을 보면 그들의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제법 훌륭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들이 모이면 대체 왜 그 모양일까. 예산 논쟁은 보나마나 연말까지 지루하게 이어질 테고 그 지루함과는 별개로 우리는 벌써 한 해가 다 갔다며 시간 앞의 속수무책을 한탄하겠지. 
몇 해 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한 오래된 나는 어딘가로 가고픈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서 전철에 몸을 실었다. 춘천행이었다. 제법 추웠던 기억, 낭만시장이라 이름 붙인 중앙시장엔 중국 관광객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고 유명한 닭갈비 골목도 긴 줄의 수를 헤어리기 어려울 만큼 북적였다. 나는 시장에 있는 작은 분식집에 들어가 끼니를 보통으로 해결하고 꽤나 한적해 보이는 카페를 찾아 실망스러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일기를 썼다. 

춘천이다. 물론 계획에 없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뒤척이고 있는데 밖에서 눈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다를까 커튼을 살짝 밀쳐 밖을 보니 한바탕 눈이 내린 뒤였다. 여전히 날씨는 잔뜩 흐리기만 하고. 산책을 하려던 계획은 이내 숨어버리고, 첫날인데 뭐라도 해야 하는데 싶은 생각에 잠실에 있는 삼백집에 가서 점심이나 먹을 생각으로 근처에 사는 친구녀석에게 전화를 했더니 지방에 가 있다고 하고, 길상사에나 다녀올까 싶은 생각을 잠시 하다가 문득 춘천이 떠올랐다. 
‘기분과 희망’이란 단어만 공허하게 떠있는 맥북의 화면을 넘겨 경춘선 열차를 검색했다. 가는 방법은 두 가지. 청춘열차를 타느냐 전철을 타느냐. 가는 열차는 이미 매진이 돼 돌아오는 열차만 예매를 하고 씻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상봉역에 내려 춘천행 열차가 출발하는 곳으로 달렸다. 눈앞에서 열차를 놓쳤는데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허전했던 플랫폼엔 어느새 경춘선 전철을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심보선을 읽다 손이 시렵고 집중도 안 되던 나는 가을방학을 들으며 내심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비록 30분을 차가운 플랫폼에 서 기다려야 했지만. 
한 대의 아늑해 보이는 청춘열차를 보내고 난 뒤 전철이 플랫폼에 도착하고 라인의 끝에 자리를 잡은 나는 심보선 대신 로맹 가리를 집어든다. 단편집을 읽다 졸다 밖을 내다보니 세상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어느새 나는 북해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하코다테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내린 눈을 맞으며 걷던 언덕과 도심을 가르는 전차에서의 내 모습을. 가평과 강촌에서 절반 가량의 사람들이 빠진 전철은 한 시간 남짓 달려 남춘천역에 도착했다. 지도 하나 없이 그곳에 내린 나는 이정표를 보며 효자로를 따라 시청 쪽으로 걸었다. 눈은 그쳤지만 길은 미끄러웠고, 두툼하게 옷을 입어 춥진 않았지만 노출된 얼굴은 걸음이 계속될수록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춘천엘 다녀왔다. 일로써 다녀오긴 했지만 스산한 겨울 냄새로 가득한 그곳은 시린 정겨움이 있었다. 서투르게 기억나는 도시의 길을 벗어나 일행 중 한 분이 미리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해질 무렵이 지나 사위가 어두웠지만 숙소의 아늑함과 무엇보다 시내에서 십여 분 벗어났음에도 완전히 분위기를 달리하는 동네의 고요함이 마음에 들었다. 
하룻밤을, 따뜻하지만 건조하게 보낸 뒤 아침은 숙소 주방에 마련된 토스트와 커피, 어젯밤 사온 과일로 대신했다. 그리고 일을 보고서는 점심을 먹고 일행과 헤어져 다시 나는 ‘남춘천역’에서 청춘열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많이 잤는데도, 겨울 풍경이 창밖에 무수한데도 나는 잠을 잤다. 강촌에서, 청평에서 깼지만 다소 포근하고도 낮은 기분으로 잠을 잤다. 
집에 돌아오니 흐트러진 사흘치 신문과 시들어버린 꽃이, 주인 없는 집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은 이제서야 데미안 라이스의 새 앨범으로 몸을 떨며 겨울, 이 저녁을 뜻하지 않은 한가로움과 교차하는 분주함으로 눈을 밝히고 있다.

2014/11/08

Jeonju, 2011, Lomo

전주, 2014, Ricoh

어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제는 현 부서의 지난 멤버들 모두가 모이는 자리, 회식이었다. 나는 어떤 들뜬 기분도 아니었음에도 자리를 이동하며 술을 마셨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한 명씩 돌아가며 건배사 아닌 한 마디씩의 말을 할 때에는 머릿속에 든 게 하나도 없음에도 거침없이 쏟아지는 말에, 그리고 그 말의 타자와의 유사성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언제부터 졸았는지 깨어나니 나는 밖으로 나와 있었다. 또 다른 자리로 이동하려는 무리의 사람들의 목소리는 격양돼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곳을 벗어나 길고긴 퇴근길에 접어들었다. 
집에 오니, 오는 길에 많이 졸아서인지, 아님 샤워를 한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사당에서 잡아탄 택시가 동작대교를 건너 남산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남산 1호, 2호, 3호 터널의 지리적 접근성과 연결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용산기지를 통과할 때에는 이곳이 광활한, 한강과 남산을 이어주는 공원으로 재탄생하는 상상을 해 보았으나 이는 언제 현실로 구체화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마스터플랜 계획가로 지정된 승효상 건축가도 허탈할 거야, 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하였다. 

이 나라는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어렴풋 일어난 사이 전화벨이 울린다. 옆동에 사는 누나의 목소리. 
“내가 며칠 전 갑자기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며 깁스를 해서 애들 보기가 불편해. 밥도 못 해먹고 시켜먹어. 애들 아빠도 어디 가서 그런데 우리집에 오면 안 돼?”
도서관에 가서 이것저것 하려는 계획을 접고, “조금 있다가 갈게”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샤워. 
여전히 머리가 무거웠다. 그래도 씻으니 조금 나은 듯해,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내렸다. 냉장고에 있는 몇 조각의 식빵을 꺼내 굽고, 계란후라이 하나, 사과 한 알. 주말의 아침식사.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세월호 특별법 통과, 본회의장의 울분, 파트릭 모디아노의 노벨상 수상 여파, 샌프란시스코의 메이저리그 우승에 대한 뒷이야기… 
준비된 아침을 다 먹고, 일어나 읽다만 녹색평론을 다시 편다. 

배달되는 문학잡지들 곳곳에 슬픔이 배어있다. 제일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인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울컥, 목이 메곤 한다. 슬픔뿐 아니라 분노와 무력감, 열패감 같은 감정들도 묻어난다. 광화문에서 낭송하던 시인들의 목소리가 지면 속에도 핏물처럼 점점이 새겨져 있어 읽기가 힘들다. 산문이나 시평들도 참사를 다룬 글들이 많다. 너무도 끔찍한 일이 이토록 어이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이번에는 달라질 거라는, 사회적 전환의 계기가 될 거라는 예상은 순진한 믿음이 아니었다. 대통령부터 여야의 정치인까지 한목소리로 무려 ‘국가의 개조’까지 들먹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은 다시 잊으라고 한다.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지른다. 두 번의 선거를 치러낸 저들의 의기양양은 유족들을 비아냥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려워라, 목숨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저 벽을 무엇으로 넘을 것인가. 
언제부턴가 기묘한 풍문 하나가 떠돌았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어 내수경기 침체가 심각하다는, 얼핏 피상적인 것 같지만 상당히 조직적으로 유포되는 풍문이었다. 그런 식의 불안이 불러오는 효과에 미소를 짓는 자들이 누구일지는 빤한 일이다. 손님이 없는 식당도, 매출이 줄어든 점포도, 유례없는 가격 폭락 사태를 맞은 농산물도 참사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이란다. 하여 참사 따위 잊고, 그러니까 제 입으로 말한 국가의 개조 따위도 잊고, 빨리 경제를 살리는 일에 매진하라는 요구가 국민의 뜻이라고 풍문은 재빨리 진화한다. 이런 얄팍한 사기극은 그러나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주위에서 보고 듣는 바로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장삼이사들이 많다. 마치 참사 이전에는 서민경제가 흥청거리기나 했던 것처럼. 공기 중에 섞여 있어 숨을 멈추지 않는 한 계속 들이마셔야 하는, 이 사회의 운명이 되어버린 온갖 거짓들에 숨이 막힌다. 

녹색평론 138, 이 또한 지나갈 것인가, 최용탁

우울하다. 창밖으로 비치는 거대한 흐린 날씨처럼. 
아침에 고른 씨디는 넥스트의 앨범 두 장. Lazenca-A Space Rock Opera와 The Return of N.EX.T PART1. 
신해철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어느 저녁, 그리고 그 전에 그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이석원이 쓴 일기에서 본 그와 이석원의 이야기들. 그가 결국 죽음을 맞고 나서야 나는 기사를 한둘 찾아보며 그동안의 경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간신문에 실린 음악평론가 임진모의 그에 관한 칼럼. 
일기를 쓰고 있는 중에도, 거의 무의식중으로 들리는 음악의 풍부한 사운드와 날카로운 가사는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머리를 두드린다. 임진모가 썼듯, 마왕으로 대표되는 그의 여러 이미지는 결국 그의 본연의 업이었던 음악가로서의 결과물로 귀결된다. 그러니 신해철, 그를 음악가로서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서 나는 이 흐린 아침, 그가 만든 음악을 차분히 듣는다. 명반이다,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 가야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