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박민규의 글도 힘주어 말하고 있지만, 나는 서사론 강의의 도입부에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좋은 이야기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을 다룬다. 사고는 ‘사실’과 관계하는, ‘처리’와 ‘복구’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사건이 정말 사건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산출한다.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때 해야 할 일은 그 진실과 대면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는 사건, 진실, 응답의 구조를 갖는다. 4월 16일에 일어난 일은 ‘세월호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대한민국의 진실을 못 본 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의 주인공이 진실에 응답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시해질 뿐이지만, 우리가 그런 일을 하면 죽은 사람들이 한 번 더 죽는다.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불법이다. 같은 사람을 두 번 죽이기 전에 이 불법 정부는 기소되어야 한다.
사고와 사건을 구별하면서 시작되는 나의 서사론 강의는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서 끝난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다.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 한정돼 있으니 느낄 수 있는 감정도 제한돼 있다. 그때 문학작품의 독서는 감정의 시뮬레이션 실험일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살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솟구치지는 않았으니 그 감정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아니면 그 감정에 가까이 다가갈 방법이 없다. 예컨데 자식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진상을 알 수 없고 시신도 찾을 수 없을 때 사람이 느끼는 감정 같은 것. 인간은 무능해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고 또 인간은 나약해서 일시적인 공감도 점차 흐릿해진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정부가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려고 할 때, 그런 말들은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죽이려 든다.
요컨데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좋은 문학이 언제나 해온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말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4월 16일의 참사 이후, 상황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실은 수장될 위기에 처했고, 슬픔은 거리에서 조롱받는 중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모두 세월호 참사 이후 출간된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것들이다.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과 사회과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숙연한 열정으로 써내려간 이 글들이 더 많은 분들에게 신속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다급한 심정 속에서 이 단행본을 엮는다. 이 책은 얇지만 무거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진실과 슬픔의 무게다.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픔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제 이 책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눈먼 자들의 국가> 신형철, 문학동네
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눈에 띈 책이 이것이다. 주문한 책을 퇴근길에 경비실에서 찾아 집에 들어와 포장을 뜯고 우선 이 부분을 읽었다. 그리고 박민규의 글을 읽었다. 피곤했고 어서 씻고 자고 싶은데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어느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흐느껴 한참을 울었다. 안되겠다 싶어 씻으러 들어간 욕실에 주저앉아 또 흐느껴 울었다. 대체, 이토록 잔인한 '사건'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사고는 물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은 사고 이후에 일어난다. 박민규도 말했지만 이는 뺑소니를 생각해 보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모호한 '사건' 앞에 어리둥절하게 서 있다. 사고는 이미 일어났다. 하지만 사고는 물론 사건 또한 여전히 생생하게 우리 눈앞에 살아있다. 사고를 수습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수습하지 못하고(혹 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왜곡하거나 다른 의도의 옷을 입히는 것은 그 순간 사건이 된다. 그래서 사건은 분노를 일으킨다. 그러나 사건의 주체는 사건을 사고의 구석으로 몰아간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얇은 이 책을 읽어나갈 심정이 벌써부터 참담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딛고 일어서야 할, 그래서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숙연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