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3

티벳게스트하우스

약속대로, 아니 나의 예약과 요구대로, 그리고 메일로 거듭 확인한 바대로 숙소에서는 공항에 픽업을 나왔다. 밤 10시 40분경 비행기는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에 거칠게 착륙을 했다. 비행기에 연결한 계단을 내려와 땅에 발을 딛자 활주로 한복판에 놓인 듯한 황량함이 엄습해 왔다. 이미 가득 들어찬 버스에 오르니 이내 출발. 입국심사는 심플했다. 

WITH VISA, WITHOUT VISA

세 줄로 길게 늘어선 어느 한 줄에 서서 손에 쥐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비자신청서를 슬쩍 살펴보니 사진란이 비어 있는 인간은 나뿐인 듯했다. 그 와중에 공항 직원은 스테이플러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비자신청서에 붙여주고 있었다. 

NO PICTURE

그 직원이 비어 있는 나의 비자신청서를 보며 한 말과 내가 답한 말은 이게 전부다. 비자fee 25불을 지불하고 여권에 직사각형의 유효기간이 손수 적힌 비자를 받으니 입국심사는 끝. 입국스탬프는 따로 찍어주지 않는다. 북적북적한 수화물 찾는 곳에서 의외로 내 짐은 금세 나타났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자정이라는 시각이 무색할 정도로 인산인해.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쉽게 티벳게스트하우스 라는 푯말이 보여 다가가 말을 붙였더니 지프로 안내한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건달 같이 생긴 두 청년이 오더니 지폐 몇 장이 쥐어진 손을 내밀며 팁을 요구한다. 어처구니가 없을 틈도 없이 습관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이곳이 네팔임을 인식하며 간단히 ‘NO’라고 내뱉는다. 곧장 그들은 사라진다. 사는 게 저토록 쉬울 수 있구나. 이곳은 네팔이구나. 실감한다.  
더 사인. 이곳 명절 기간이라 그런지 타멜 거리는 분주하다. 불 켜진 상점도 거의 없는데 이들 인파는 대체 어디에서 몸을 추스린단 말인가. 낮고 허름한 건물들. STD와 같은 전화방을 보자 더욱 네팔이 실감난다. 십 년 전이 손에 잡힐 듯 밀려든다. 처량해진 기억에 어느새 생기가 들러붙는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약간은 조용한 골목에 숙소는 자리하고 있었다. 육중한 대문을 열어젖히자 높다란 건물이 실체를 드러내고 역시나 나는 반사적으로 이곳이 내가 예약한 호텔이 맞는지 고개를 쳐들어 간판을 확인한다. 맞다. 여권을 내밀고 숙박계를 작성하여 체크인을 하고, 와이파이 로그인 정보를 확인. 501호 키를 받아들고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에 들어서니 평범한 싱글룸이다. 좁은 싱글침대 두 개, 욕실. 대체로 깔끔하지만 특유의 인도나 네팔 분위기. 가격은 16달러. 아마 이 가격이면 값싼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주일도 머무를 수 있으리. 
아침이 밝아오고, 내 눈으로 히말라야를 확인하는 순간 내 마음은 붕 떠버려 정상적인 판단이나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실패하게 될 줄 모르겠으나 어쩐지 이제는 이런 곳도 친숙하지만 편하지가 않다. 좀 더 깔끔했으면 좋겠고, 보다 정숙했으면 좋겠다. 자야겠다. 벌써 세시가 다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