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3

학교 - 교육지옥인가, 민주적 자치공동체인가

제가 보기에 새누리당 정권이 전교조를 탄압하려고 저렇게 극렬하게 나오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결국 전교조가 민주적 성향을 가진 교사들로 구성된 잘 조직된 지적 그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사들이란 무엇보다 외부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교단에서 어느 정도 자율적인 활동이 보장된 사람들입니다. 그 교단을 통해서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적 가치를 전파하는 게 싫고 두려운 거죠. 이 나라 수구 지배층이 KBS와 MBC를 포함한 주류 미디어는 전부 자기편으로 만들었는데, 아직 장악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미디어 하나가 있잖아요. 바로 학교 교단이라는 프로파간다 미디어 말입니다. 교단이라는 것은 자라는 세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때 알거나 느낀 게 그 뒤 제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학교교육의 영향은 수십 년 후에 나타나는 것만도 아닙니다. 지금 교단에서 교사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가치를 전파하느냐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의 우리사회 현실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한국의 지배세력은 겉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내심으로는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것도 싫고, 국민이 똑똑해지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똑똑해지면 다루기 힘드니까요. 그러니까 전교조가 생리적으로 싫은 거예요. 예를 들어, 전교조가 생기기 이전에 우리나라 학교들에 촌지문제가 심각했잖아요. 그런데 전교조가 창설되고 전교조 교사들이 일제히 촌지를 거부하면서 결국 촌지문제는 학교에서 거의 사라졌죠. 이런 게 싫은 겁니다. 적당히 썩은 선생, 썩은 교육이 맘에 드는 거예요. 그래야 자기들이 설 자리가 넓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죠. 중산층 학부모들도 마찬가집니다. 전교조 창설 당시에 중산층 부모들이 주로 반대를 했는데, 그 사람들의 논리가 뭐였느냐 하면, 학교 선생님들이 어째서 노동자냐 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노동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혹은 노동자를 업신여기는 속마음을 내비친 거죠. 당시 어느 잡지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어떤 학부모들은 전교조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은 자기들도 잘 안다고 그랬어요. 그렇지만 전교조 교사들이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 공생의 삶을 강조하는 것은 원론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자기 아이들만은 예외로 하고 싶다는 얘기를 솔직하게 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하든 자기 아이만은 경쟁사회에서 이기기를 부모로서는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부터 경쟁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죠. 그런 얘기를 솔직히 털어놨습니다. 결국 그런 거예요. 전교조가 밉고 싫은 것은 전교조가 도덕적으로 옳고, 인간적으로 좋은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게 뭐냐면, 지금 한국사회에는 폭주하는 권력에 제동을 걸 저항세력들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습니다. 일반 노동조합은 벌써 노조로서 기능부전에 빠졌고, 시민운동단체들도 이빨이 빠져버렸어요. 다들 고만고만하게 연명하며 하루하루 이슈별로 싸우고 있지만, 정부나 대기업의 횡포를 막을 만한 힘은 전혀 없습니다. 국회에는 야당이 있다고는 하지만 뭘 하는지 모르겠고요. 하기는 야당도 힘을 발휘하려면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이 활기 있게 살아서 받쳐줘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아직까지는 가장 잘 조직된, 그것도 지적으로 상당히 고른 수준을 가진 교사들의 조직인 전교조가 거의 유일한 대항세력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수구세력에게는 전교조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어떻게든 깨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점에 대해서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지식인들도 별로 인식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전교조가 무너지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기반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분명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어떻든 사회당이라는 상당한 힘을 가진 야당세력이 일본에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당의 정치적 기반이 주로 노동조합이었고, 그중 제일 잘 조직된 큰 노동조합이 국영철도노조와 일본교직원노조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1980년대 중반에 철도를 민영화한 것은 경제논리 때문인 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나카소네 총리가 이끌던 자민당 정권이 사회당의 정치적 기반인 노동조합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철도 민영화도 그냥 민영화가 아니라 소위 분할민영화라고 해서 여러 개로 쪼개어 나눴습니다. 그러고는 기존 국영철도노조에서 탈퇴하는 노동자만 민영화된 철도회사들에 재취업할 수 있게 만들었죠. 그 결과 일본에서 제일 힘이 있었던 철도노조는 완전히 와해되었죠.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라는 것으로 민영화를 밀어붙였지만, 실은 이렇게 음험한 정치적인 계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여튼 이런 상황 속에서 ‘일교조’도 현저히 동력을 상실합니다. 지금 일본이 전후의 평화헌법체제를 벗어나서 다시 군국주의를 지향하고, 사실상의 자민당 독재정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결국 사회당, 철도노조, 일교조와 같은 대항세력이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때는 일본이 고도경제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한때 학생운동을 한 사람들도 대기업으로 들어가고, 관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의 민주세력들은 거의 전면적으로 무너집니다. 이런 일본의 선례를 보면 우리도 굉장히 걱정이 됩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민주주의를 이 정도나마 버텨주고 있는 것은 철도노조나 전교조 같은 조직이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전교조의 의미를 이렇게 좀더 폭넓고 거시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녹색평론 138>, 김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