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7

카페 그 곶


한담마을을 제대로 찾아 갔는지 모르겠지만, 카페 봄날과 바다라면을 파는 곳 근처에 갔는데 너무 복잡해서 질겁을 하고 차를 돌려 나왔다. 그곳이 결국 한담마을이었을까. 
운전을 최대한 천천히 하며 너른 해변도로에서 비껴나 여전히 2차선인 해변길을 따라 이 마을 저 마을 지나며 풍경을 스쳤다. 하지만 곁에 있는 바다보다 멀리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한라산이 내 의식을 빠르게 압도했다. 그래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도 가까운 바다보다는 멀리 한라산을 거듭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대체로 서귀포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모습에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시선과 의식과 한라산이 불러일으키는 감동은. 

한라산

이제는 가는 방향 그대로 달려 협재와 금능 해변으로 갔다. 먼저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협재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차를 세우고 해수욕을 하고 싶다는 가벼운 욕구를 슬며시 누르고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비양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금능해변에서 바라보는 비양도

그리고 금능. 북적이는 협재보다 금능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덥다고 당장에 바다로 뛰어들기에 내 마음은 너무도 자라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 커서, 뒤의 옅게 예정된 일정들이 눈에 선명히 밟히는 바람에 더 고민 없이 다시 차를 몰고 점심을 먹으러 금능낙원으로 갔다.
금능낙원은 몸국과 고기국수, 밀면을 파는 곳인데 ‘뼛속까지 시원한 밀면’과 함께 오리전문점인 듯한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밖에 자리를 잡고, 몸국과 밀면을 시키고 음식이 나오기 전에 맥주를 한 병 꺼내왔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우리는 맥주를 홀짝이며 제주에 있음을 실감했다. 
음식이 나왔다. 먼저 밀면 육수에 손이 갔다. 달고 시원했다. 그리고 단맛은 뒤로 갈수록 더 손댈 수 없을 만큼 강력해졌다. 반면 몸국은 더운 날씨에 불편할 뜨거운 음식임에도 희한하게 시원한 맛이 났다. 미역 비슷한 느낌에 시원하고 뜨거운 국물이라.
조금 걷다가 카페 그곶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금능낙원에서 그곶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주차를 하기 전에 이미 그곶에 도착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고자 했던 나에 비해 無는 더위에 이미 수긍해 카페에 들어가고자 했고, 그래서 일단 카페에 들어섰는데, 아 느낌이 좋다.

카페 그 곶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기 전에 그곶의 곳곳을 둘러보았는데, 뭔가, 대체로 걸려 있고 대체로 바닥에 놓여 있는 이곳의 인테리어는 복합적이면서도 아늑하고 공간감이 있으면서도 채워진 느낌이다. 서로 맞지 않은 테이블과 의자, 어디서 손 닿는 대로 주워온 듯한 조명들, 그에 반해 차분히 놓여진 건반과 그 위의 선반들, 그리고 좋은 사운드의 스피커와 오래된 오디오. 롯데. 불현듯 시골 우사(牛舍) 사무실로 밀려난 오래된 우리집 오디오 생각이 났다. 그것도 롯데고 여기 있는 것과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짐작이 될 정도의 외향을 지니고 있다. 아직 작동이 될까, 그걸 가져와서 이사갈 ㅇㅇ동에 두고 써도 될까. 궁금해진다.

그 곶에서의 시간
본격 제주 잡지, i'm in island now

라떼와 아메리카노 그리고 치아바타를 주문했다. 커피는 그저그랬고 치아바타는 괜찮았다.
금요일이긴 해도, 평일인데 빈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제법 알려졌나 보다. 아까부터 흐르고 있는 이노센스미션, 좋은 사운드로 들으니 더 좋고 무엇보다 이곳과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린다.
에어를 가져오니 이렇게 틈 날 때마다 기록을 이어갈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 매번 여행을 다녀와서 기록을 해야지, 하는 보통의 미룸과 잊혀짐과는 달리 때맞춰 기록을 할 수 있다는 게 이토록 충분한 만족일 줄은 미처 몰랐다.
이제 이곳을 나가면 우리는 저지예술마을을 거쳐 이타미준의 건축이 모여 있는 비오토피아로 갈 예정이다. 과연, 우리는 이타미준을 접할 수 있을 것인가.


2014. 7. 18. 카페 그 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