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6

나폴레옹제과점이 있는 한성대입구역

주로 산책으로 연결되는 동네와 성북동은, 나에게는 하나의 공간처럼 여겨지지만 그렇게 본다면 대학로나 낙산공원, 더 나아가 삼청동, 계동까지도 묶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우선 분리하기로 하되 하나처럼 느껴지도록 잇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한성대입구역이라는 지점을 두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말 한성대입구역이야말로 내가 걸어 다니곤 하는 많은 장소들을 연결해준다. 우선은 복원한 성북천의 시작 지점이고 집에서 낙산공원에 가려면 스치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대학로에 넘어가거나 집으로 넘어올 때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리고 성북동에 갈 때 명륜동이나 와룡공원에서 가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한성대입구역을 거쳐 가곤 한다. 
그렇다면 이토록 내게 있어서 주요한 지점인 한성대입구역엔 무엇이 있나? 

우선 나폴레옹제과점이 있다. 빼놓을 수 없는 1번이다. 나폴레옹제과점은 원래 지금 있는 곳에서 낙산성곽 방향인 길 건너편 1층에 작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언젠가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짓더니 명성(?)에 걸맞는 크기로 새로이 자릴 잡았다. 언제부터 내가 그곳에 드나들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빵보다는 케이크가 먼저였다. 지금은 가족이나 지인의 기념일이 있으면 케이크는 꼭 나폴레옹제과점에서 사려고 할 정도로 그곳 케이크에 익숙해지고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엔 바로 먹지 않을 거라면 반드시 냉장보관을 하라는 위대한 통팥빵과 생크림빵이 있다. 지금도 통팥빵을 처음 먹었을 때의 감격이 생생하다. 길쭉하고 날씬한 빵을 가볍게 부여잡고 한 입 물었을 때 전해지는 통팥의 질감과 냉장보관에서 비롯되는 차가운 감촉, 바스러질 것 같은 빵의 조화는 과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빵 나오는 시간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그때 그때의 운에 맡기는 나로서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지 하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나폴레옹에 갔을 때 쟁반도 들지 않고 냉장보관 코너로 직행을 했는데 통팥빵이 하나도 없으면 몹시 서운하다.
재료의 솔직함이 전해지는 건 생크림빵도 마찬가지다. 네가 진정 이제껏 먹어왔던 게 팥빵이고 생크림빵이 맞느냐고 묻기라도 하듯. 통팥빵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생크림빵 역시 마치 차갑고 신선한 아이스크림이 빵 사이에 그대로 스며 있는 듯한 맛을 선사하는데 이건 냉장보관의 효과가 극대화된 것임이 분명하다. 원래 팥빵을 좋아하는 나는 우선 통팥빵을 사수하고 생크림빵으로 눈을 돌리는 편인데, 어쨌거나 이 둘의 맛을 본 후터는 다른 곳에서 동종의 빵을 먹기가 약간은 꺼려진다. 

나폴레옹제과점, 한성대입구역

주로 퇴근길에 가끔 책을 읽으러 스타벅스에 가곤 하는데, 내가 자주 가는 스타벅스는 바로 나폴레옹 옆에 위치하고 있다. 대체로 스타벅스는 분위기가 비슷하고 손님이 많은 편이지만 이곳은 선곡도 볼륨의 정도도 괜찮아서 대화 소음이 심하지 않은 곳이라면 두세 시간 정도 책을 읽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또한 바로 옆에 나폴레옹이 있으니 그곳에서 요기할 빵 몇 가지를 사서 가면 시간이 더욱 든든하다. 특히 식사 무렵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다수의 사람들이 스타벅스 커피에 나폴레옹 빵을 먹으며 시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마 전, 동네에서 둘째 조카 돌잔치를 하고 부모님이 내려가시기 전 가볍게 저녁을 먹어야 하기에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다가, 가볍게 먹을 거면 국수나 먹을까요, 하고는 성북동 국시집으로 갔다.
나폴레옹제과점 뒷골목에 가정집 형태로 간판이라고 해야 손바닥보다 조금 큰 게 고작이어서 아는 사람이 아니면 찾기가 수월치 않은 이곳을 알게 된 건 맛 칼럼을 맛깔나게 쓰는 황교익의 글에서였다. 박정희 정부 시절, 분식의 날이 지정되었던 1969년에 명동에 있는 명동교자와 함께 문을 열었다고 하니 벌써 40년이 넘는 세월이 쌓인 곳이다.
어느 날 산책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들러 처음 국수를 먹었는데, 대체로 슴슴한 엄마의 손맛에 길들여진 내 미각에 이곳 육수는 조금 짰다. 이는 나보다 더 싱거운 미각을 자랑하는 누나를 이곳에 처음 데려왔을 때에도 드러났는데 누나는 국물을 한 수저 입에 넣더니 “왜 이렇게 짜!”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거부감이 들 정도의 짠맛은 아니고 대체로 무난한 편이다. 그리고 기계로 빼낸 면은 가늘고 푹 삶아져 있으며, 양은 제법 많아서 한 그릇 비우고 나면 그윽하게 배가 불러온다.
이곳을 찾는 손님층을 보면 오래된 식당들이 대체로 그렇듯 나이 지긋하신 가족 단위가 많은데 그 분들이 여전히 이곳을 찾는 걸 보면 그래도 맛은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것 같다.


2014.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