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1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2024)

바슐라르의 이 책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들 둘레로 문학적 공간이 생겨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 책. 우리가 유년에 꿈꾸던 것을 온전히 이해하게 해주는 책.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매혹과 동시에 반감을 주는 책.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간의 시학>은 집에 관한 책이다. 제목을 보며 저자가 건축가거나 시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프랑스의 저명한 과학철학자다.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난 바슐라르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하며 대학을 마쳤다. 그리고 지방의 소읍인 고향에서 중등학교 물리, 화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43세의 늦은 나이에 소르본대학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 

바슐라르는 집념은 무척 강했지만 타인의 말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과학사 강의에서 한 학생으로부터 강의에서 다루는 세계가 너무 살균되어 있다는 불평을 듣고 존재론적 충격에 빠진다. 그날 그는 자신이 그동안 왜 불만족스러웠는지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람은 살균된 세계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는 법이지요. 그 세계에 생명을 이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미생물, 세균 들을 들끓게 해야 했습니다. 상상력을 회복시키고, 시를 발견해야 했던 거지요." (154-155)

문제는 우리가 살림살이를 하면서 이러한 이미지들을 체험할 수 없을 정도로 기계적으로 일한다는 데에 있다. 한 사람이 온 가족의 설거지와 빨랫감을 해치우듯 처리해야 하는 분주한 일과 속에서 노동은 기계적 활동이 될 수밖에 없다. 거기엔 몽상을 위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들을 떠올린다면 바슐라르는 반근대적 몽상가다.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생산성의 논리에 철저히 반대하는 것이 몽상의 논리다. 몽상은 여유 없는 곳에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