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타인의 취향 Le Goût Des Autres



아녜스 자우이 감독, 1999년
이 영화를 내가 알게 된 건 대학시절 우연한 기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언제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이끄는 서로의 어긋난 취향 대결이 '다름'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우리 문화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던 기억은 물론, 잊을 수 없었다. 그런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을까, 이 영화는 무려 십 년이 지난 2009년이 되어서야 우리 나라에 수입이 돼 이대에 있는 아트하우스모모에서 개봉을 하게 된다. 개봉 당시 영화를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때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영화 자체로서 큰 반향을 갖기에 상업적 요소가 둔하기 때문에 속칭 흥행작은 아니었을 걸로 쉬 짐작할 수 있다.
만일 본인이 좋아하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고, 같이 영화를 보고자 하는 이가 그와는 다른 취향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상대의 취향에 동참해줄 의향이 있는 이들에겐 이 영화가 흥미롭게 전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는 그저 그런 내용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어떤 계기'는 존재한다.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를 첫번째 '나의 취향'으로 꼽은 건 '다름'에 대해 취하고 싶은 나의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a와 y의 자리에서 나눴던 작은 대화 생각이 난다. 당시 우리는 '인정'과 '이해'의 차이에 대해 나름 설전이 오갔는데, 나와 y는 인정과 이해는 다른 것이라 여겼고, a는 인정을 이해의 후속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당연히 a는 상대를 이해해야만 인정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물론 나는 a의 견해를 존중하지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그 전에,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불필요한 노력을 줄이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도 필요한 게 아닐까. 
여튼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는, 처음 볼 때보다 슬프게 다가왔다. 문학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무릇 문화예술이란 우리 삶을 단면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