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제1회 돈암쌀롱영화제




기획  用  /  포스터 제작  無

기획의 변

이 동네에 산 지도, 정릉에 살 적을 포함하면 12년이다. 
 그동안 내 사는 동네 '돈암'에 정이 들 만큼 들었고, 
그로부터 기인한 보이지 않는 손에 끌려 여태 '돈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동네든 
오래 살다보면 정이 들기는 매 한가지이겠지만, 
어떻게든 끈끈하게 맺어진 동네와의 관계를 
쉽게 뿌리치기에 나는 너무 오래 동네에 살았다. 

작년 이맘때, 고향에 사는 친구들 몇이 서울에 왔다. 
동네 횟집에서 겨울이면 이내 생각나는 방어회로 
일차를 마시고, 이차는 맥주와 함께 우리 집 거실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우리는
각자 취향이 그윽한 곡들을 듣기 원했고, 나는 에어플레이로 
그들의 요구에 답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우리의 노래는 
쌓여가고, 취기는 노래의 리듬을 타고 출렁거렸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그렇게 시나브로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해장을 하고 집을 나서던 친구 L이 던진 한마디. 

"잘 놀고 간다, 돈암쌀롱!"


그렇다. 돈암쌀롱의 기원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無用이 만나던 초반 나눴던 영화 얘기에 
왕가위 감독이 등장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각자의 선호 영화를 하나씩 들다가 이참에 
언제 한 번 '왕가위 특별전'을 하자고, 내가 제안했다. 
그러니까 이번 돈암쌀롱영화제는 오래된 제안의 
한 변형에 불과할지 모르나, 앞으로 (아마도) 지속될
소박한 출발에 은은한 의미로서의 방점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