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9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2024)

"적당한 행복에 적당히 만족하라. 인생에서 유일하게 분명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건 불행이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EF가 밝히지 않았다는 데 눈길이 갈 것이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걸 돕는 데 유용한 기교였다. 출처를 밝히면 우리는 먼저 그런 말을 한 사람의 삶과 작업에 관해 우리가 아는 것, 또 일반적인 통념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에 따라 경의를 표하며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맞서기도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우리 자신의 격동적이고 안달 나는 삶에서도 우연이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해요. 우리가 깊이 만나는 사람의 수는 이상하게도 적어요. 열정은 우리를 맹렬하게 현혹하기도 합니다. 이성도 똑같이 현혹할 수 있죠. 우리의 유전적 유산이 우리 오금줄을 쥐고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 삶에서 이전에 있었던 사건들이 그럴 수도 있고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은 야전의 병사들만이 아니에요. 그런 장애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월하(月下)의 삶의 불가피한 결과인 경우도 많죠." (31-33) 


아포리즘에 현혹될 나이는 지났지만 EF의 말과 행동은 땅에 닿는 면이 많아서, 그런 듯해서, 자꾸 눈길이 간다. 

2025/04/25

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2025)

그러고 나서 주미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최악을 상상하며 얼마나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며 살고 있는지 마침내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짐작할 수조차 없는 미래와 끝에 대해서 대비할 능력이 마치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헛되게 믿으면서. 그렇게 말한 후 우리는 주미의 이제 일곱 살이 된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한없이 잔혹한 인생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또다시 기쁨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 더 말했다. 이미 다 환해졌다고 생각한 연노란색 하늘과 부드러운 윤곽을 지닌 산등성이가 맞닿은 부분을 따라 아주 가느다란 선이 생기고 그것을 우리가 발견할 때까지. (245)


아침, 출근길. 혼잡한 버스에 운이 좋게 난 자리에 앉아 루틴 대신 백수린의 책을 꺼내들었다. 버스에는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에 힘입어 책 속 인물들의 감정에 빠져든다. 백수린이 펼쳐내는 사소한 일상과 에피소드 들이 마음에 속속 와닿을 때마다 놀라며 감동한다. 

또래, 여성, 작가 들의 작품이 무수히 흩어져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2025/04/09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 (이현주, 2018)

내 삶만을 들여다보는 동안 내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그걸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삶이 나를 완전히 삼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았다. 사람을 볼 때도 나에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뉘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 삶에 거리를 둘 수 있었고 그제야 타인과 세상이, 무엇보다 내가 더 잘 보였다. 삶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를 보려는 노력과 삶을 더 잘 살기 위함, 그게 바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임을 깨달았다. (255-256)


옐로나이프와 시애틀 여행을 목전에 두고, 지난 주말 빌린 책을 보고 있다. 론리플래닛이 아닌 동네 서점을 다룬 책이라니. 

누군가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을 매일 봐야 한다면,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며칠을 방황하면서 든 생각은 여느 때처럼 읽기와 쓰기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나에게 읽기란, 쓰기란, 무엇인가. 

미국은 20년 만에 다시 가게 되었는데 마침 발효된 관세 탓에 환율은 금융 위기 이후 최고치라고, 점심을 먹으며 본 뉴스 채널에 나오고 있었다. 

이 와중에 미국이라니, 트럼프의 미국이라니. 

하지만, 잘 모르겠지만, 시애틀은 조금 구미가 당긴다. 

너바나, 지미 핸드릭스, 아마존, 코스트코, MS, 보잉, 램 콜하스의 도서관, 프랭크 개리의 뮤지엄... 이런 것들보다 흥미로운 건 도시가 형성된 자연(빙하)의 힘과 도시를 둘러싼 자연 그 자체 때문에. 

우리 여정은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저 대자연을 향해. 

2024/12/02

오늘 수영

(24.12.2) 34바퀴, 1,700m

헤드업 발차기 2, 배영 발차기 4, 배영+평영 5, 자유형 10, 잠영 1/2, IM 3, 접영 6, 배영 1/2

 

(24.12.3) 자유수영, J가 갑자기 나타나 뭔가 좀 느슨하게 했다. 

(대략) 발차기 4, 자유형 8, 평영+자유형 2, 평영 5, 접영 2

2024/11/01

라이너 쿤체(Reiner Kunze)

은엉겅퀴 


뒤로 물러서 있기

땅에 몸을 대고


남에게 

그림자 드리우지 않기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