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우리집 셋째

우리 가족은 수원 행궁동에 산다. 

오늘은 퇴근길에 카페에 들러 먹음직스런 케이크를 하나 샀다. 초는 다섯 개.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오자마자 돌잔치를 했던 막내는 곧 만 여섯 살이 된다. 그러니 다섯 개의 초는 다름아닌 '집'의 나이인 셈이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이사온 날을 기념해 조촐하게 케이크에 초를 꽂고 '집의 생일'을 축하한다. 

오늘은 둘째인 막내가 말했다.  

"다섯 살이면 우리집 셋째네." 


새집을 짓기 위해 우리가 헐어버린 옛집 주인과 계약을 체결하던 날 부동산을 나와 등기부등본에 걸려 있는 근저당을 말소하기 위해 옛 주인과 동행했다. 옛 주인은 같은 날 집 두 채를 매도했는데 그 중 한 채가 장안문 앞에 있는 정지영커피집이다. 주인과 동행해 먼저 들른 곳은 자동차 부품이 즐비한 그의 가게였는데, 정지영커피집 바로 옆에 있던 그 가게도 지금은 술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행궁동에 이사온 2019년만 해도 동네가 지금처럼 번잡하지는 않았지만 변화는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 사이 뒷집 어르신이 지병으로 동네를 떠나시고, 골목 안에 계시던 할머니도 떠났다. 골목의 파수꾼처럼 매의 눈으로 부지런히 동네를 보살피던 어르신마저 떠나자 골목에 있던,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 먹던 평상은 치워졌다. 하루는 골목에서 빗질을 하고 있는데 평소에 즐겨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던 골목 건너집 할머니가 아무 기대도 희망도 없는 말투로 말하셨다. 우리 곧 이사간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은 헐리었고 아직 빈 터로 남아 있다. 

부끄럼 많은 첫째 아이가 이사오자마자 찾아가 놀곤 하던, 또래가 살던 골목 안쪽 집은 이제는 동네에 두 개나 들어선 유명한 카페가 되었고,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골목에서 맘껏 놀고 있으면 러닝 셔츠 바람으로 길에 나와 아이들을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살던 집은 공방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만 해도, 이사오고 나서도 한동안은, 우리 집 앞 골목이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 중에는 가장 한산했다. 그랬던 길과 골목마저 이렇게 됐으니 신풍장안동의 다른 곳은 말해 무엇하랴. 

아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피하고 싶어서 차마 묻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24년 이른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