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3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2023)

언론이 하는 일은 겪은 이들과 겪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기억의 연결고리가 깜빡이다 꺼지지 않도록 기능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공적인 애도에 대해 적으려면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야기가 때론 이야기에 불과하고, 지나치게 매끈히 다듬어진 이야기는 오히려 해체가 필요할지도 모르며,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위험성을 또렷이 기억하면서. 기억을 듣고, 이야기로 꿰어서, 이해로 마음을 집어넣는 일이 쉬워지면, 슬픔을 나눈 공동체를 상상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누군가의 애도가 우리의 애도가 되고 결국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도록. (262)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특히 사진이나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기자라면 '보이는 고통'을 만났을 때 기록하고 촬영해서 독자와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본능을 억누르기 어렵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고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지면과 화면에 잘 옮겨진 타인의 고통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사이에 '보여줄 수 없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96) 


특혜에서 배제된 집단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선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악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약자라는 맥락 안에서 조명받곤 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136) 


해넌의 전략은 '우리'의 연민을 응집하려는 것이었던 듯하다. 넷플릭스를 보고 인스타그램도 하고 이렇게나 '우리'와 닮은 사람들에게도 "빈곤하고 외딴 곳에 사는 이들"에게나 일어나는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니 충격적이라는 말은 뱃속에서 갓 끄집어낸 듯 정직하게 날것이라, 순식간에 그가 규정한 우리라는 틀 밖에 있는 사람을 배제하고 탈락시킨다. 그가 말하는 '우리'의 바깥, 빈곤하고 외딴 곳이라 불린 유럽의 바깥에서는 생명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게,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식으로. 계급 차별과 제국주의 가장 안쪽에서 나온 말이다. (14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