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3

원더풀 사이언스 (나탈리 앤지어, 2010)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가장 정교한 발톱으로 문제를 공격해 느낄 수 있고 음미할 수 있는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는 기술이다. (38)


반 데르 발스의 힘도 분자를 결합시키는 또 다른 힘이다. 이 이름은 이 힘을 발견하고 수학적으로 설명한 19세기 네덜란드 물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사실 반 데르 발스의 힘은 결합시키는 힘 가운데 가장 약한 힘으로 수소결합의 4분의 1 크기밖에 안 된다. 그러나 약한 것이 도리어 장점이어서, 반 데르 발스의 힘은 수많은 금속과 액체에 필수적이며, 우리의 생존을 결정하는 물질들의 특성을 결정한다. 수소결합을 비롯한 다른 결합들은 전자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음전하 입자와 양전하 입자가 상당히 고정되어 있는 배열의 분자나 화합물을 만든다. 그러나 반 데르 발스의 힘은 전자의 다른 성질을, 다시 말해 전자가 얼마나 즉흥적인지를 보여준다. 

전자는 당연히 다른 전자가 근처에 오는 것을 꺼려한다. 같은 전자에 대한 뿌리 깊은 반발심 때문에 우리는 텅 빈 공간에 가까운 원자들로 이루어진 물체를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전자는 또한 양성자에 끌린다. 그 양성자가 자신이 속한 원자의 핵에 들어 있건 이웃한 다른 원자의 핵에 들어 있건 가리지 않는다. 이런 전자의 성질은 전자가 분자나 이온의 일부가 돼서 액체나 고체 상태로 있을 때도 변함없다. 한결같이 양성자는 좋고, 전자는 싫은 것이다. 이 같은 전자의 선천적인 극단적 성향 때문에 원자나 분자가 서로 가까이 다가가면 전자들은 다른 전자를 피해 자신의 구름 집 한쪽 끝이나 그 집을 벗어난 어딘가로, 양성자의 기운을 좀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때문에 분자는 전하의 불균형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약한 극성을 띠게 되고, 이런 양전하와 음전하가 겹쳐지게 되면 여러 물질들을 서로 묶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깨지기 쉬운 힘이다. 분자나 이온을 만들 때와 달리 이 경우는 원자들끼리 전자를 정식으로 공유하는 것이 아니며, 디즈니 만화의 등장인물처럼 생긴 물 분자의 경우처럼 전자 궤도가 균형을 잃어도 된다고 허용하는 것도 아니다. (223-224)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2017)

한가운데 대성당을 끌어안은 밀라노 시가지에는 또하나 중요한 기호가 있다. 바로 나빌리오 운하다. 

19세기 파리에서 시작된(그리고 오늘날 대체로 '서구적'이라고 여겨지는) 서유럽의 도시계획 이념은 기하하적인 원이나 직선 위에 구축된 강인하고 인공적인 도시공간 구성에 기초하는데, 대표적인 도시들이 하나둘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중세에는 주로 대성당을 기점으로 외곽을 이루는 성벽을 향해 시가지가 불규칙적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시가지 중심에 대성당이 있다는 점은 밀라노도 다르지 않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운하가 이 도시를 여느 도시와 다르게 만들어준다. 밀라노 사람이 성벽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이 운하는 성벽 한참 안쪽에, 좁은 곳은 반지름 500미터 정도의 불규칙한 원을 그리며 형성되어 있다. 원래는 대성당 건설에 사용할 석재를 운반하기 위해 팠다고 하는데, 폭이 20미터도 안 되지만 밀라노 남서쪽에서 알프스로부터 흘러드는 티치노 강으로 이어져 중요한 교통수단 역할을 했다. 그와 동시에 파리의 센강, 로마의 테베레 강 같은 자연의 물길이 없는 밀라노 사람들에게는 없어선 안 되는 풍취를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운하로 갇힌 둥근 도심 공간은 밀라노라는 도시의 중핵을 이루며 번영을 가져왔다. 그러나 실로 아쉽게도, 종전 후 부흥 과정에서 나온 성급한 도시 정비안 탓에 이 운하는 대부분 흔적도 없이 매립되어버렸다. 

이 '나빌리오의 고리' 바로 옆에 사는 한 노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이 집 앞에는 좁다란 보도 너머로 운하 물이 흘렀어요. 겨울이면 나빌리오에서 피어오른 안개에 가스등 불빛이 부옇게 가라앉아 정말 아름다웠지요. 아침에는 안개 속에서 갑자기 납작한 물윗배가 나타나기도 했고요. 운하가 없어지고 도심의 습기가 한결 덜해진 건 사실이지만요. 

오늘날 도심을 둘러싼 세나토 거리나 비스콘티 디 모드로네 거리를 숨막힐 듯 가득 채운 자동차 무리를 보고 있자면, 문득 옛날 그 아래를 흐르던 물소리가 땅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70-71) 


누구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욕심으로 화제를 독차지하려는 사람이 있는 밤이면 시간의 흐름이 더디게 느껴졌다. 우리의 이런 대화가 알고 보면 호스트의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싶어 문득 공허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초대를 받으면 또 기대감을 안고 찾아가게 되는 이유는 역시 대화로 만들어내는 허구 세계의 즐거움 때문이었으리라. 오늘은 재미있었다, 혹은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마치 작품을 논하듯 그날 대화의 성과를 비평했다. (88)


스테파노는 페데리치 부인이 주최한 모임에 혼자 올 때도 있고 아내 라우라와 함께 올 때도 있었다. 라우라는 스테파노와 비슷하게 키가 커서 늘 굽 낮은 구두를 신었다. 키가 작은 페데리치 부인이나 내게 인사할 때면 항상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구부려주었다. 파도바의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는 종종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정치인이었는데, 그녀는 큰 키와 유명인인 아버지 모두 부끄럽게 여기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스테파노가 천천히 문학론을 펼치면 라우라는 그를 보는 듯 마는 듯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자기 생각과 다른 얘기가 나오면 그렇지만, 하고 끼어들어서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띄엄띄엄 제 의견을 말했다. 말을 마칠 때는 항상 내 생각은 그래요, 하고 매듭지으며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쑥스럽게 어깨만 살짝 움직이는 그녀의 웃음을 보면 문득 긴장이 풀리면서 왠지 모르게 설득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이론을 말한 것도 아니고 모두를 장악할 만한 주장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체로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인데도, 다들 라우라의 의견을 여름날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다리곤 했다. (92)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2023)

언론이 하는 일은 겪은 이들과 겪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기억의 연결고리가 깜빡이다 꺼지지 않도록 기능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공적인 애도에 대해 적으려면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야기가 때론 이야기에 불과하고, 지나치게 매끈히 다듬어진 이야기는 오히려 해체가 필요할지도 모르며,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위험성을 또렷이 기억하면서. 기억을 듣고, 이야기로 꿰어서, 이해로 마음을 집어넣는 일이 쉬워지면, 슬픔을 나눈 공동체를 상상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누군가의 애도가 우리의 애도가 되고 결국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도록. (262)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특히 사진이나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기자라면 '보이는 고통'을 만났을 때 기록하고 촬영해서 독자와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본능을 억누르기 어렵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고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지면과 화면에 잘 옮겨진 타인의 고통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사이에 '보여줄 수 없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96) 


특혜에서 배제된 집단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선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악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약자라는 맥락 안에서 조명받곤 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136) 


해넌의 전략은 '우리'의 연민을 응집하려는 것이었던 듯하다. 넷플릭스를 보고 인스타그램도 하고 이렇게나 '우리'와 닮은 사람들에게도 "빈곤하고 외딴 곳에 사는 이들"에게나 일어나는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니 충격적이라는 말은 뱃속에서 갓 끄집어낸 듯 정직하게 날것이라, 순식간에 그가 규정한 우리라는 틀 밖에 있는 사람을 배제하고 탈락시킨다. 그가 말하는 '우리'의 바깥, 빈곤하고 외딴 곳이라 불린 유럽의 바깥에서는 생명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게,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식으로. 계급 차별과 제국주의 가장 안쪽에서 나온 말이다. (142-143)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2021)

매 순간 갖가지 원인이 우연히 겹쳐서 '지금'이 태어나고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는 식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성립되는 것 아닐까요. 구키 슈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지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우연이다. 우연은 '현실의 생산점'이다. (103)


수많은 조건과 여러 줄기의 흐름이 한순간 '만나서' 우연히 '지금'이 태어납니다. 야구에서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현실이란 이렇게 성립되는구나 하며 놀랍니다. 그와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현실이 태어나는 순간은 물론,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선수들의 강인함도 아름답습니다. 선수들은 현실이 우연에 좌우된다 할지라도 결코 노력과 준비를 그만두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면서도 선수들은 배트를 휘두르고 글러브를 내밉니다. 필연성을 추구하여 시합의 전개를 예측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일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던집니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믿고 몸을 내맡길 만큼 강인한 것입니다. 저는 그처럼 강인한 선수들을 동경합니다. '지금'이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하다 때때로 울컥하기도 합니다. (105) 


본래 일상생활이란 다양한 상태가 얼룩덜룩하게 섞인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그 얼룩무늬의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일상은 느릿느릿 나아가지요. 그런데 병에 걸린 사람의 일상은 무슨 수를 써도 '환자'라는 상태가 얼룩무늬를 정리해버립니다. 그 결과 역할과 역할이 서로 충돌한 끝에 그저 침묵하게 되어버리죠. (157-158)


민중의 이름으로 (이보 모슬리, 2022)

그들(정당)은 파벌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인위적으로 놀라운 힘을 부여한다. 그리고 국민의 뜻이 놓여야 할 자리에 일개 정당의 의지를 가져다 놓는다. 그러나 정당의 의지라는 것은 국민공동체에서 오직 작은 비율에 불과한 소수의 교묘한 장사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서로 다른 정당들이 번갈아가며 권력을 잡으면서 당쟁으로 인하여 행정업무는 서로 모순된 사업들을 진행하며 혼선을 빚게 된다. 행정부는 의원들이 완전히 이해를 하고 상호 이익을 고려해서 수정이 된 일관성 있고 건전한 계획을 반영하는 기관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한편, 정당들은 결합하거나 연합하여 때로는 공익을 성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과 사건이 경과함에 따라 그것들은 교활하고 야심있고 방종한 인간들이 민중의 권력을 전복시키고 정부의 실권을 찬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엔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엔진은 교활하고 야심있고 방종한 인간들이 민중의 권력을 전복시키고 정부의 실권을 찬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28-29, 조지 워싱턴 대통령 고별연설 인용)

권한·권력은 환상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새로운 통찰이 아니다. (34)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2022)

<이토록 평범한 미래>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이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습이 가려진다. 파도는 바다에서 비롯되지만 바다가 아니며, 결국에는 바다를 가린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현실이 아니며, 결국에는 현실을 가린다.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으리라.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왜 불안해지는가? '행복'이라는 말이 실제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대신한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18-19)


"오래 전에 비트겐슈타인의 책에서 '그러나 당신은 실제로 눈을 보지는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고 그 혜안에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책을 편집하다보면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한쪽에서만 나오죠.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26-27) 


이기면 조금 배울 수 있지만 지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지기만 하는 인생도 나쁘지 않아요. 중간에 선택을 바꾸지만 않는다면. (32)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건 놀라운 말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말이더라.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우리는 죽지 않고 결혼해 지금 이렇게 맥주를 마시고 있잖아. 줄리아는 그냥 이 사실을 말한 거야. 다만 이십 년 빨리 말했을 뿐. 그 시차가 평범한 말을 신의 말처럼 들리게 한 거야. 소설에 미래를 기억하라고 쓴 엄마는 왜 죽었을까? 그게 늘 궁금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엄마도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34)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34) 


이태원 참사

오전 8시 16분, 일본 상공

휙휙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돌면서, 폭탄이 B-29 폭격기에서 떨어지는 데 43초가 걸렸다. 투하되는 순간에 폭탄 중간쯤에 나 있는 작은 구멍으로 전선이 끌려 나왔다. 전선이 1차 기폭장치의 시계 스위치를 켰다. 폭탄의 검은 강철 케이스 뒤쪽에 작은 구멍이 더 많이 나 있었고, 자유 낙하가 진행되는 동안 이 구멍으로 공기 표본이 채취되었다. 지상에서 2,000미터 높이까지 떨어졌을 때, 기압 스위치가 켜져서 2차 기폭장치가 가동되었다. 
땅에서 보면 B-29 폭격기의 은빛 윤곽이 겨우 보이지만, 폭탄(길이 3미터에 폭 0.8미터)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약한 전파 신호가 폭탄에서 나와서 아래에 있는 시나 병원으로 내려간다. 이 전파 신호의 일부는 병원 벽에 흡수되지만, 대부분은 반사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폭탄 뒤쪽의 회전 날개 근처에 채찍처럼 생긴 얇은 안테나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이 안테나들은 반사된 전파 신호를 수집하고,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으로 지상에서의 높이를 잰다. 
580미터 상공에서 마지막으로 반사된 전파 신호가 수신된다. 존포 노이만을 비롯한 연구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폭탄이 너무 높은 곳에서 터지면 대부분의 열이 공중으로 흩어지고, 너무 낮은 곳에서 터지면 땅이 움푹 파인다. 600미터보다 조금 낮은 곳이 폭파에 가장 이상적인 높이이다. 
전기 충격으로 인한 기폭으로 재래식 폭약이 폭발한다. 정제된 우라늄의 일부가 폭탄 안쪽에 있는 포로 밀려들어간다. 처음에 이 포는 해군의 함포를 그대로 베낀 무거운 장치였다. 몇 달 뒤에야 오펜하이머 측의 사람 중 하나가 함포는 여러 발을 쏴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 포는 단 한 번 쓰기 때문에 무거울 필요가 없다. 2톤이 넘는 포 대신에 겨우 1/5에 불과한 포가 만들어졌다. 
우라늄 덩어리 하나가 1.2미터쯤 이동해서 얇아진 포신 안으로 들어가고, 발사되어 다른 우라늄 덩어리에 충돌한다. 지구 어디에서도 정제된 우라늄이 수십 킬로그램의 공으로 축적된 적이 없다. 내부에는 돌아다니는 중성자가 꽤 있다. 우라늄 원자는 전자들로 빽빽하게 둘러싸야 있지만,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기 때문에 전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중성자는 전자의 장벽을 뚫고 들어간다. 그중 많은 것들이 그냥 통과해버리지만, 몇몇 중성자는 중심에 있는 작은 핵에 충돌한다. 
핵 속에는 양전하를 띤 양성자가 있기 때문에 대개 외부 입자가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기 때문에 양성자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이곳에 도달한 중성자는 핵을 때리고, 균형을 무너뜨려서 흔들리게 한다. 
지구에 묻혀 있는 우라늄 원자들은 45억 년 이상 된 것들이다. 지구가 형성되기 전에 있었던 아주 강력한 힘만이 전기적으로 서로 반발하는 양성자를 한데 묶을 수 있었다. 우라늄이 한번 형성된 다음에는, 강한 핵력이 접착제처럼 작용해 이 양성자들을 긴 세월 동안 유지한다. 그동안 지구가 냉각되고, 대륙이 형성되고, 아메리카가 유럽에서 분리되고, 북대서양이 서서히 생겨났다. 지구 반대편에는 화산이 분출하여 일본 열도가 만들어졌다. 이제 여분의 중성자 하나가 이 안정성을 깨트린다. 
핵의 강한 접착력을 깰 정도로 흔들림이 커지면, 양성자가 가진 전기의 힘으로도 핵이 쪼개질 수 있다. 핵 하나는 아주 가볍고, 핵의 조각은 더 가볍다. 이것이 속도를 얻어서 우라늄의 다른 부분을 때려도 열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라늄의 밀도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면, 파편 두 조각은 금방 4개, 8개, 16개로 늘어난다. 원자 속에서 질량이 '사라지면서' 이것이 에너지로 변해 핵의 파편에 속도를 가한다. 이제 E=mc²이 작동한다. 
계속해서 두 배로 불어나는 과정은 겨우 몇 백만 분의 1초 만에 끝난다. 폭탄은 여전히 습한 아침 공기에 떠 있고, 바깥쪽 표면에 희미하게 물방울이 맺힌다. 43초 전에 폭탄은 9,500미터 상공의 차가운 공기 중에 있었고, 지금은 580미터 상공으로 내려와서 26.5도로 조금 따뜻한 공기 중에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반응이 일어나는 동안에 폭탄은 겨우 몇 분의 1센티미터쯤 떨어진다. 바깥에서는 강철 표면이 이상하게 비틀려서 안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고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연쇄 반응은 두 배로 불어나기를 80번 거듭하고 나서 끝난다. 마지막 몇 단계에서 부서진 우라늄 파편이 아주 많아진다. 이 파편들이 매우 빠르게 날아다녀서, 주위의 금속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몇 번이 결정적이다. 정원 연못에 수련이 매일 두 배씩 늘어난다고 하자. 80일째에 수련이 연못을 완전히 뒤덮는다. 그러면 연못의 반이 여전히 덮이지 않고 햇볕을 받는 날은 언제인가? 바로 79일째이다. 
이 시점에서 E=mc²의 활동은 모두 정지된다. 질량은 더 이상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에너지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 핵들의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뀐다. 손을 마주 비비면 손바닥이 따뜻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c²이라는 어마어마한 값이 곱해지므로, 우라늄 파편은 정지한 금속을 엄청난 속도로 비벼댄다. 파편들은 빛의 속도의 몇 분의 1 정도로 날아다닌다. 
비비고 때리면서 폭탄 내부의 금속이 따뜻해진다. 처음에는 체온에 가까운 온도(37도)까지 올랐다가 물이 끓는 온도(100도)에 도달하고, 그 다음에는 납이 끓는 온도(560도)에 도달한다. 연쇄 반응이 계속 진행되면 더 많은 우라늄 원자가 쪼개지면서 온도가 5000도(태양 표면온도)에 이르고, 그 다음에는 수 백만 도(태양 중심의 온도)가 되며, 이렇게 계속된다. 짧은 시간 동안에, 공중에 떠 있는 폭탄 속에서는 우주가 창조될 때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다. 
열이 밖으로 나온다. 열은 우라늄을 싸고 있는 강철 충진재와 폭탄 전체를 감싸는 강철 케이스를 쉽게 뚫고 나오지만, 여기에서 멈춘다. 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먼저 나온다. 엄청난 양의 X선이 위로, 옆으로 나오고, 나머지는 아래로 넓게 호를 그리면서 내려간다. 
이 모든 일이 공중에 떠 있는 채로 일어난다. 파편들은 스스로를 냉각시키려고 하며, 그 상태로 있으면서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쏟아낸다. 이렇게 0.0001초 동안 X선을 방출한 다음에, 열의 공이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다. 
이제야 겨우 중심의 폭발이 보이기 시작한다. X선을 내뿜는 동안에는 보통의 광자가 함께 나올 수 없다. 외곽에 희미한 광채만 나타날 뿐이다. 완전한 섬광이 나타날 때는, 하늘이 찢어져서 열린 것 같다. 은하계 저 멀리에나 있을 거대한 태양 같은 물체가 나타난다. 지구에서 보는 태양보다 수 백 배 더 큰 빛의 덩어리가 하늘을 채운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 물체는 0.5초 동안 최대로 타오르다가 2, 3초 만에 스러진다. 이 '스러짐'은 주로 열이 밖으로 빠져 나가면서 일어난다. 갑자기 불꽃이 일어난다. 빛 덩어리의 표면이 찢어지면서 거대한 장막이 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뒤덮는다. 히로시마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연쇄 반응으로 생긴 에너지의 최소 1/3이 이 섬광으로 방출된다. 나머지도 곧 뒤따른다. 열이 주위의 공기를 밀어내고, 공기는 이전까지는 결코 도달한 적이 없는 속도를 얻는다. 어쩌면 먼 옛날에 거대한 운석이나 혜성이 충돌했을 때 이런 속도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 공기는 가장 강력한 태풍보다 몇 배 빠르고, 소리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도리어 조용하다. 조금 뒤에는 조금 느리게, 다시 한 번 공기 진동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는 주위의 공기가 밀려들어서, 다시 한 번 공기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채운다. 이때 잠시 동안 공기 밀도가 거의 0이 된다. 폭발 지점에서 멀리 있어서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아주 잠깐 동안, 우주의 진공에 노출된다. 
발생한 열 중에서 소량은 밖으로 퍼져 나가지 못한다. 이 열은 뇌관과 안테나와 폭약이 있던 곳 근처에서 떠돌다가, 몇 초 뒤에 위로 솟구친다. 이 열은 위로 올라가면서 부풀어 오르고, 충분한 높이가 되면 퍼져 나간다. 
이렇게 해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면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E=mc²의 작동이 끝났다. 


_ 데이비드 보더니스 <E=mc²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 김희봉 옮김,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