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3

원더풀 사이언스 (나탈리 앤지어, 2010)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가장 정교한 발톱으로 문제를 공격해 느낄 수 있고 음미할 수 있는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는 기술이다. (38)


반 데르 발스의 힘도 분자를 결합시키는 또 다른 힘이다. 이 이름은 이 힘을 발견하고 수학적으로 설명한 19세기 네덜란드 물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사실 반 데르 발스의 힘은 결합시키는 힘 가운데 가장 약한 힘으로 수소결합의 4분의 1 크기밖에 안 된다. 그러나 약한 것이 도리어 장점이어서, 반 데르 발스의 힘은 수많은 금속과 액체에 필수적이며, 우리의 생존을 결정하는 물질들의 특성을 결정한다. 수소결합을 비롯한 다른 결합들은 전자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음전하 입자와 양전하 입자가 상당히 고정되어 있는 배열의 분자나 화합물을 만든다. 그러나 반 데르 발스의 힘은 전자의 다른 성질을, 다시 말해 전자가 얼마나 즉흥적인지를 보여준다. 

전자는 당연히 다른 전자가 근처에 오는 것을 꺼려한다. 같은 전자에 대한 뿌리 깊은 반발심 때문에 우리는 텅 빈 공간에 가까운 원자들로 이루어진 물체를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전자는 또한 양성자에 끌린다. 그 양성자가 자신이 속한 원자의 핵에 들어 있건 이웃한 다른 원자의 핵에 들어 있건 가리지 않는다. 이런 전자의 성질은 전자가 분자나 이온의 일부가 돼서 액체나 고체 상태로 있을 때도 변함없다. 한결같이 양성자는 좋고, 전자는 싫은 것이다. 이 같은 전자의 선천적인 극단적 성향 때문에 원자나 분자가 서로 가까이 다가가면 전자들은 다른 전자를 피해 자신의 구름 집 한쪽 끝이나 그 집을 벗어난 어딘가로, 양성자의 기운을 좀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때문에 분자는 전하의 불균형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약한 극성을 띠게 되고, 이런 양전하와 음전하가 겹쳐지게 되면 여러 물질들을 서로 묶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깨지기 쉬운 힘이다. 분자나 이온을 만들 때와 달리 이 경우는 원자들끼리 전자를 정식으로 공유하는 것이 아니며, 디즈니 만화의 등장인물처럼 생긴 물 분자의 경우처럼 전자 궤도가 균형을 잃어도 된다고 허용하는 것도 아니다. (223-224)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2017)

한가운데 대성당을 끌어안은 밀라노 시가지에는 또하나 중요한 기호가 있다. 바로 나빌리오 운하다. 

19세기 파리에서 시작된(그리고 오늘날 대체로 '서구적'이라고 여겨지는) 서유럽의 도시계획 이념은 기하하적인 원이나 직선 위에 구축된 강인하고 인공적인 도시공간 구성에 기초하는데, 대표적인 도시들이 하나둘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중세에는 주로 대성당을 기점으로 외곽을 이루는 성벽을 향해 시가지가 불규칙적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시가지 중심에 대성당이 있다는 점은 밀라노도 다르지 않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운하가 이 도시를 여느 도시와 다르게 만들어준다. 밀라노 사람이 성벽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이 운하는 성벽 한참 안쪽에, 좁은 곳은 반지름 500미터 정도의 불규칙한 원을 그리며 형성되어 있다. 원래는 대성당 건설에 사용할 석재를 운반하기 위해 팠다고 하는데, 폭이 20미터도 안 되지만 밀라노 남서쪽에서 알프스로부터 흘러드는 티치노 강으로 이어져 중요한 교통수단 역할을 했다. 그와 동시에 파리의 센강, 로마의 테베레 강 같은 자연의 물길이 없는 밀라노 사람들에게는 없어선 안 되는 풍취를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운하로 갇힌 둥근 도심 공간은 밀라노라는 도시의 중핵을 이루며 번영을 가져왔다. 그러나 실로 아쉽게도, 종전 후 부흥 과정에서 나온 성급한 도시 정비안 탓에 이 운하는 대부분 흔적도 없이 매립되어버렸다. 

이 '나빌리오의 고리' 바로 옆에 사는 한 노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이 집 앞에는 좁다란 보도 너머로 운하 물이 흘렀어요. 겨울이면 나빌리오에서 피어오른 안개에 가스등 불빛이 부옇게 가라앉아 정말 아름다웠지요. 아침에는 안개 속에서 갑자기 납작한 물윗배가 나타나기도 했고요. 운하가 없어지고 도심의 습기가 한결 덜해진 건 사실이지만요. 

오늘날 도심을 둘러싼 세나토 거리나 비스콘티 디 모드로네 거리를 숨막힐 듯 가득 채운 자동차 무리를 보고 있자면, 문득 옛날 그 아래를 흐르던 물소리가 땅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70-71) 


누구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욕심으로 화제를 독차지하려는 사람이 있는 밤이면 시간의 흐름이 더디게 느껴졌다. 우리의 이런 대화가 알고 보면 호스트의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싶어 문득 공허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초대를 받으면 또 기대감을 안고 찾아가게 되는 이유는 역시 대화로 만들어내는 허구 세계의 즐거움 때문이었으리라. 오늘은 재미있었다, 혹은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마치 작품을 논하듯 그날 대화의 성과를 비평했다. (88)


스테파노는 페데리치 부인이 주최한 모임에 혼자 올 때도 있고 아내 라우라와 함께 올 때도 있었다. 라우라는 스테파노와 비슷하게 키가 커서 늘 굽 낮은 구두를 신었다. 키가 작은 페데리치 부인이나 내게 인사할 때면 항상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구부려주었다. 파도바의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는 종종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정치인이었는데, 그녀는 큰 키와 유명인인 아버지 모두 부끄럽게 여기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스테파노가 천천히 문학론을 펼치면 라우라는 그를 보는 듯 마는 듯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자기 생각과 다른 얘기가 나오면 그렇지만, 하고 끼어들어서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띄엄띄엄 제 의견을 말했다. 말을 마칠 때는 항상 내 생각은 그래요, 하고 매듭지으며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쑥스럽게 어깨만 살짝 움직이는 그녀의 웃음을 보면 문득 긴장이 풀리면서 왠지 모르게 설득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이론을 말한 것도 아니고 모두를 장악할 만한 주장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체로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인데도, 다들 라우라의 의견을 여름날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다리곤 했다. (92)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2023)

언론이 하는 일은 겪은 이들과 겪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기억의 연결고리가 깜빡이다 꺼지지 않도록 기능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공적인 애도에 대해 적으려면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야기가 때론 이야기에 불과하고, 지나치게 매끈히 다듬어진 이야기는 오히려 해체가 필요할지도 모르며,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위험성을 또렷이 기억하면서. 기억을 듣고, 이야기로 꿰어서, 이해로 마음을 집어넣는 일이 쉬워지면, 슬픔을 나눈 공동체를 상상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누군가의 애도가 우리의 애도가 되고 결국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도록. (262)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특히 사진이나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기자라면 '보이는 고통'을 만났을 때 기록하고 촬영해서 독자와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본능을 억누르기 어렵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고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지면과 화면에 잘 옮겨진 타인의 고통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사이에 '보여줄 수 없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96) 


특혜에서 배제된 집단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선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악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약자라는 맥락 안에서 조명받곤 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136) 


해넌의 전략은 '우리'의 연민을 응집하려는 것이었던 듯하다. 넷플릭스를 보고 인스타그램도 하고 이렇게나 '우리'와 닮은 사람들에게도 "빈곤하고 외딴 곳에 사는 이들"에게나 일어나는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니 충격적이라는 말은 뱃속에서 갓 끄집어낸 듯 정직하게 날것이라, 순식간에 그가 규정한 우리라는 틀 밖에 있는 사람을 배제하고 탈락시킨다. 그가 말하는 '우리'의 바깥, 빈곤하고 외딴 곳이라 불린 유럽의 바깥에서는 생명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게,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식으로. 계급 차별과 제국주의 가장 안쪽에서 나온 말이다. (142-143)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2021)

매 순간 갖가지 원인이 우연히 겹쳐서 '지금'이 태어나고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는 식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성립되는 것 아닐까요. 구키 슈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지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우연이다. 우연은 '현실의 생산점'이다. (103)


수많은 조건과 여러 줄기의 흐름이 한순간 '만나서' 우연히 '지금'이 태어납니다. 야구에서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현실이란 이렇게 성립되는구나 하며 놀랍니다. 그와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현실이 태어나는 순간은 물론,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선수들의 강인함도 아름답습니다. 선수들은 현실이 우연에 좌우된다 할지라도 결코 노력과 준비를 그만두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면서도 선수들은 배트를 휘두르고 글러브를 내밉니다. 필연성을 추구하여 시합의 전개를 예측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일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던집니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믿고 몸을 내맡길 만큼 강인한 것입니다. 저는 그처럼 강인한 선수들을 동경합니다. '지금'이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하다 때때로 울컥하기도 합니다. (105) 


본래 일상생활이란 다양한 상태가 얼룩덜룩하게 섞인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그 얼룩무늬의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일상은 느릿느릿 나아가지요. 그런데 병에 걸린 사람의 일상은 무슨 수를 써도 '환자'라는 상태가 얼룩무늬를 정리해버립니다. 그 결과 역할과 역할이 서로 충돌한 끝에 그저 침묵하게 되어버리죠. (157-158)


민중의 이름으로 (이보 모슬리, 2022)

그들(정당)은 파벌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인위적으로 놀라운 힘을 부여한다. 그리고 국민의 뜻이 놓여야 할 자리에 일개 정당의 의지를 가져다 놓는다. 그러나 정당의 의지라는 것은 국민공동체에서 오직 작은 비율에 불과한 소수의 교묘한 장사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서로 다른 정당들이 번갈아가며 권력을 잡으면서 당쟁으로 인하여 행정업무는 서로 모순된 사업들을 진행하며 혼선을 빚게 된다. 행정부는 의원들이 완전히 이해를 하고 상호 이익을 고려해서 수정이 된 일관성 있고 건전한 계획을 반영하는 기관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한편, 정당들은 결합하거나 연합하여 때로는 공익을 성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과 사건이 경과함에 따라 그것들은 교활하고 야심있고 방종한 인간들이 민중의 권력을 전복시키고 정부의 실권을 찬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엔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엔진은 교활하고 야심있고 방종한 인간들이 민중의 권력을 전복시키고 정부의 실권을 찬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28-29, 조지 워싱턴 대통령 고별연설 인용)

권한·권력은 환상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새로운 통찰이 아니다. (34)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2022)

<이토록 평범한 미래>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이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습이 가려진다. 파도는 바다에서 비롯되지만 바다가 아니며, 결국에는 바다를 가린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현실이 아니며, 결국에는 현실을 가린다.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으리라.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왜 불안해지는가? '행복'이라는 말이 실제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대신한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18-19)


"오래 전에 비트겐슈타인의 책에서 '그러나 당신은 실제로 눈을 보지는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고 그 혜안에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책을 편집하다보면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한쪽에서만 나오죠.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26-27) 


이기면 조금 배울 수 있지만 지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지기만 하는 인생도 나쁘지 않아요. 중간에 선택을 바꾸지만 않는다면. (32)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건 놀라운 말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말이더라.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우리는 죽지 않고 결혼해 지금 이렇게 맥주를 마시고 있잖아. 줄리아는 그냥 이 사실을 말한 거야. 다만 이십 년 빨리 말했을 뿐. 그 시차가 평범한 말을 신의 말처럼 들리게 한 거야. 소설에 미래를 기억하라고 쓴 엄마는 왜 죽었을까? 그게 늘 궁금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엄마도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34)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34) 


이태원 참사

오전 8시 16분, 일본 상공

휙휙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돌면서, 폭탄이 B-29 폭격기에서 떨어지는 데 43초가 걸렸다. 투하되는 순간에 폭탄 중간쯤에 나 있는 작은 구멍으로 전선이 끌려 나왔다. 전선이 1차 기폭장치의 시계 스위치를 켰다. 폭탄의 검은 강철 케이스 뒤쪽에 작은 구멍이 더 많이 나 있었고, 자유 낙하가 진행되는 동안 이 구멍으로 공기 표본이 채취되었다. 지상에서 2,000미터 높이까지 떨어졌을 때, 기압 스위치가 켜져서 2차 기폭장치가 가동되었다. 
땅에서 보면 B-29 폭격기의 은빛 윤곽이 겨우 보이지만, 폭탄(길이 3미터에 폭 0.8미터)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약한 전파 신호가 폭탄에서 나와서 아래에 있는 시나 병원으로 내려간다. 이 전파 신호의 일부는 병원 벽에 흡수되지만, 대부분은 반사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폭탄 뒤쪽의 회전 날개 근처에 채찍처럼 생긴 얇은 안테나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이 안테나들은 반사된 전파 신호를 수집하고,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으로 지상에서의 높이를 잰다. 
580미터 상공에서 마지막으로 반사된 전파 신호가 수신된다. 존포 노이만을 비롯한 연구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폭탄이 너무 높은 곳에서 터지면 대부분의 열이 공중으로 흩어지고, 너무 낮은 곳에서 터지면 땅이 움푹 파인다. 600미터보다 조금 낮은 곳이 폭파에 가장 이상적인 높이이다. 
전기 충격으로 인한 기폭으로 재래식 폭약이 폭발한다. 정제된 우라늄의 일부가 폭탄 안쪽에 있는 포로 밀려들어간다. 처음에 이 포는 해군의 함포를 그대로 베낀 무거운 장치였다. 몇 달 뒤에야 오펜하이머 측의 사람 중 하나가 함포는 여러 발을 쏴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 포는 단 한 번 쓰기 때문에 무거울 필요가 없다. 2톤이 넘는 포 대신에 겨우 1/5에 불과한 포가 만들어졌다. 
우라늄 덩어리 하나가 1.2미터쯤 이동해서 얇아진 포신 안으로 들어가고, 발사되어 다른 우라늄 덩어리에 충돌한다. 지구 어디에서도 정제된 우라늄이 수십 킬로그램의 공으로 축적된 적이 없다. 내부에는 돌아다니는 중성자가 꽤 있다. 우라늄 원자는 전자들로 빽빽하게 둘러싸야 있지만,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기 때문에 전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중성자는 전자의 장벽을 뚫고 들어간다. 그중 많은 것들이 그냥 통과해버리지만, 몇몇 중성자는 중심에 있는 작은 핵에 충돌한다. 
핵 속에는 양전하를 띤 양성자가 있기 때문에 대개 외부 입자가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기 때문에 양성자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이곳에 도달한 중성자는 핵을 때리고, 균형을 무너뜨려서 흔들리게 한다. 
지구에 묻혀 있는 우라늄 원자들은 45억 년 이상 된 것들이다. 지구가 형성되기 전에 있었던 아주 강력한 힘만이 전기적으로 서로 반발하는 양성자를 한데 묶을 수 있었다. 우라늄이 한번 형성된 다음에는, 강한 핵력이 접착제처럼 작용해 이 양성자들을 긴 세월 동안 유지한다. 그동안 지구가 냉각되고, 대륙이 형성되고, 아메리카가 유럽에서 분리되고, 북대서양이 서서히 생겨났다. 지구 반대편에는 화산이 분출하여 일본 열도가 만들어졌다. 이제 여분의 중성자 하나가 이 안정성을 깨트린다. 
핵의 강한 접착력을 깰 정도로 흔들림이 커지면, 양성자가 가진 전기의 힘으로도 핵이 쪼개질 수 있다. 핵 하나는 아주 가볍고, 핵의 조각은 더 가볍다. 이것이 속도를 얻어서 우라늄의 다른 부분을 때려도 열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라늄의 밀도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면, 파편 두 조각은 금방 4개, 8개, 16개로 늘어난다. 원자 속에서 질량이 '사라지면서' 이것이 에너지로 변해 핵의 파편에 속도를 가한다. 이제 E=mc²이 작동한다. 
계속해서 두 배로 불어나는 과정은 겨우 몇 백만 분의 1초 만에 끝난다. 폭탄은 여전히 습한 아침 공기에 떠 있고, 바깥쪽 표면에 희미하게 물방울이 맺힌다. 43초 전에 폭탄은 9,500미터 상공의 차가운 공기 중에 있었고, 지금은 580미터 상공으로 내려와서 26.5도로 조금 따뜻한 공기 중에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반응이 일어나는 동안에 폭탄은 겨우 몇 분의 1센티미터쯤 떨어진다. 바깥에서는 강철 표면이 이상하게 비틀려서 안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고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연쇄 반응은 두 배로 불어나기를 80번 거듭하고 나서 끝난다. 마지막 몇 단계에서 부서진 우라늄 파편이 아주 많아진다. 이 파편들이 매우 빠르게 날아다녀서, 주위의 금속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몇 번이 결정적이다. 정원 연못에 수련이 매일 두 배씩 늘어난다고 하자. 80일째에 수련이 연못을 완전히 뒤덮는다. 그러면 연못의 반이 여전히 덮이지 않고 햇볕을 받는 날은 언제인가? 바로 79일째이다. 
이 시점에서 E=mc²의 활동은 모두 정지된다. 질량은 더 이상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에너지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 핵들의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뀐다. 손을 마주 비비면 손바닥이 따뜻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c²이라는 어마어마한 값이 곱해지므로, 우라늄 파편은 정지한 금속을 엄청난 속도로 비벼댄다. 파편들은 빛의 속도의 몇 분의 1 정도로 날아다닌다. 
비비고 때리면서 폭탄 내부의 금속이 따뜻해진다. 처음에는 체온에 가까운 온도(37도)까지 올랐다가 물이 끓는 온도(100도)에 도달하고, 그 다음에는 납이 끓는 온도(560도)에 도달한다. 연쇄 반응이 계속 진행되면 더 많은 우라늄 원자가 쪼개지면서 온도가 5000도(태양 표면온도)에 이르고, 그 다음에는 수 백만 도(태양 중심의 온도)가 되며, 이렇게 계속된다. 짧은 시간 동안에, 공중에 떠 있는 폭탄 속에서는 우주가 창조될 때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다. 
열이 밖으로 나온다. 열은 우라늄을 싸고 있는 강철 충진재와 폭탄 전체를 감싸는 강철 케이스를 쉽게 뚫고 나오지만, 여기에서 멈춘다. 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먼저 나온다. 엄청난 양의 X선이 위로, 옆으로 나오고, 나머지는 아래로 넓게 호를 그리면서 내려간다. 
이 모든 일이 공중에 떠 있는 채로 일어난다. 파편들은 스스로를 냉각시키려고 하며, 그 상태로 있으면서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쏟아낸다. 이렇게 0.0001초 동안 X선을 방출한 다음에, 열의 공이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다. 
이제야 겨우 중심의 폭발이 보이기 시작한다. X선을 내뿜는 동안에는 보통의 광자가 함께 나올 수 없다. 외곽에 희미한 광채만 나타날 뿐이다. 완전한 섬광이 나타날 때는, 하늘이 찢어져서 열린 것 같다. 은하계 저 멀리에나 있을 거대한 태양 같은 물체가 나타난다. 지구에서 보는 태양보다 수 백 배 더 큰 빛의 덩어리가 하늘을 채운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 물체는 0.5초 동안 최대로 타오르다가 2, 3초 만에 스러진다. 이 '스러짐'은 주로 열이 밖으로 빠져 나가면서 일어난다. 갑자기 불꽃이 일어난다. 빛 덩어리의 표면이 찢어지면서 거대한 장막이 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뒤덮는다. 히로시마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연쇄 반응으로 생긴 에너지의 최소 1/3이 이 섬광으로 방출된다. 나머지도 곧 뒤따른다. 열이 주위의 공기를 밀어내고, 공기는 이전까지는 결코 도달한 적이 없는 속도를 얻는다. 어쩌면 먼 옛날에 거대한 운석이나 혜성이 충돌했을 때 이런 속도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 공기는 가장 강력한 태풍보다 몇 배 빠르고, 소리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도리어 조용하다. 조금 뒤에는 조금 느리게, 다시 한 번 공기 진동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는 주위의 공기가 밀려들어서, 다시 한 번 공기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채운다. 이때 잠시 동안 공기 밀도가 거의 0이 된다. 폭발 지점에서 멀리 있어서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아주 잠깐 동안, 우주의 진공에 노출된다. 
발생한 열 중에서 소량은 밖으로 퍼져 나가지 못한다. 이 열은 뇌관과 안테나와 폭약이 있던 곳 근처에서 떠돌다가, 몇 초 뒤에 위로 솟구친다. 이 열은 위로 올라가면서 부풀어 오르고, 충분한 높이가 되면 퍼져 나간다. 
이렇게 해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면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E=mc²의 작동이 끝났다. 


_ 데이비드 보더니스 <E=mc²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 김희봉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3/10/15

며칠 단상

10/6 금
  • 학교에서 두 번째 캠핑. 하지만 하루로 바뀐. 부족한 숯을 고구마용 장작으로 보태가며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 학교를 나오며 창룡문에서 개막한 미디어아트를 지나가며 구경하려고 방향을 틀었다가 차를 세워놓고 놀다가 집으로 갔다. 

10/7 토
  • 학교 캠핑이 당일로 바뀌면서 비게 된 하루. 오후에 대나무 파빌리온 프로그램 지원 요청을 받고 오후 내내 장안공원에 머무르다. 

10/8 일
  • 실패한 용접을 다시 하고, 지하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 
  • 골목 아주머니의 제안으로 옆 공터 쓰레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화분 몇 개를 모퉁이에 배치했다. 두고볼 일. 
  • 북지터에 하림밴드가 온다고 해서 저녁 먹고 부리나케 나갔는데, 두 곡밖에 못 들었다. 성곽 중턱에 온이랑 둘이 앉아 보는 공연은 짧았지만 좋았지. 우리집 머리도 보이고. 

10/9 월
  • 처음 참여한 어린이집 체육대회. 잠시 내린 비 때문에 한 시간 늦게 시작했지만, 원활한 진행으로 밀도 있게, 즐겁게 놀았다. 상품이 어른들 위주라 애들이 실망을 했지만. 
  • 집으로 가는 길에 정비가 끝난(시장+주차장) 화서시장에 들러 손님용 고기와 과일을 사고 분식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다. 
  • 능행차 교통통제로 집 가는 데 한참 걸리다. 
  • 오후 3시30분쯤 집을 나서 능행차를 보러 갔으나, 한 시간이나 지나야 메인 행렬이 장안문을 지나온다고 해서 성곽에서 놀다가 농협과 한옥기술전시관 근처에서 구경을 하다. 시시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품어야 할까. 늘 생각한다. 
  • 여섯 시 넘어, 예정된 손님들 도착. 다음 주면 사라질 동네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장안공원 파빌리온에 같이 가다. 
  • 지하에서 화로에 불을 붙이고 날리는 잿속에 담소를 나누다 불이 잦아들고서야 고기를 굽고 와인을 마셨다. 한 병, 두 병, 세 병. 입가심 맥주까지. 실내로 자릴 옮겨가며. 
  • 긍정적이고 맑은 기운을 가진 젊은이들과의 시간이 즐겁다.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2015)

노년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말이거나 거짓이다. 예를 들어 생생한 몸이 부패하지 않고는 현명해질 수 없다는 듯 노년의 지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그렇다. 노인은 천천히 청력을 잃고 시력을 잃고 천천히 경직되고 멍청해진다. 이제는 누구와도 교제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것에 대해 증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멍청해졌다고 생각한다. 노년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할 수 있다면, 다만 두 가지 관점에서 노년이 죽음에 대한 준비로서 쓸모가 있다는 것뿐이다. 우리에겐 담보물들의 나사를 죄어 결국 어느 정도 그럴듯한 전기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기억들을 오랫동안 갈고 연마할 시간이 있다. 또한 우리는 지속되는 몰락과 함께 자기 자신이 귀찮아져서, 인생에서 가졌던 것들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것인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도록 어느 날엔가 죽음이 다가오기를 고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멍청해지는 속도보다 부패하는 속도가 더 빠를 경우에만 해당된다. (118-119)

나는 평생 너무 확고하게 자연을 신봉하느라 충분히 좋은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아무리 클로드 로랭의 그림이라 해도 바다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바다 자체에 대해서보다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자연의 기술적 독창성은 제쳐두고라도 내게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 전체가 항상 능가할 수 없는 예술작품으로 여겨졌다. 비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자연 안에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구조역학 전문기사라도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뼈대를 고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모방이다. 콘센트에서 마이크로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모방일 뿐이다. 바퀴조차도 그렇다. 구(球) 모양이 없다면 바퀴도 없다. (135-136)

순수한 감사의 시간은 사랑의 첫 단계이다. 어떤 사랑이나 그럴 것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우리가 원했던, 또는 심지어 우리 안에 파묻혀 깨어나지 않은 채 숨어 있던 특성들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가 더불어 사는 데 익숙해 있던 다른 특성들을 몰아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더 아름답고 더 부드럽고 현명하다. 우리는 우리의 소심함과 우리의 악의에서 구원된다. 우리는 가장 사악한 적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의 행복으로 모든 나무와 모든 거리와 모든 순간을 환하게 비추고 그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탄한다. 우리는 하늘과 비와 바람과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된 것처럼 느낀다. 우리는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고 또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148)

나는 당시의 내 상태를 나의 자연적인 정상 상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속박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강력한 내적 욕구만을 따랐기 때문이다. 프란츠와 내가 그렇게 동물의 세계에 관심을 돌렸던 것이, 과연 우연이었는지 나는 그때 이미 숙고해보았다. 나는 멸종한 독거성 동물에 관심을 가졌고 프란츠는 단일 표본으로서는 생활에 부적격하고 무리를 지어야 비로소 완전한 하나의 유기체가 되는 작은 개미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가. (172-173)

개미들의 생활은 매우 이성적으로 질서가 잡혀 있어서, 그것을 정서적으로 미화하고 싶은 아주 작은 욕구에 대해서 일말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다. (173)

"내 아버지가 옳았어. 사람은 인생의 것이지. 그리고 아버지를 위한 인생이 루치에 빙클러였다면 아버지는 그녀의 것이었어." (191)



일본, 후쿠시마, 동일본대지진, 원전, 오염수...

1. 2023년 8월 24일 오후 1시를 기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했다. 7,888톤. 
2. 2023년 10월 5일 2차 방류 시작. 7,800톤. 
3. 2023년 11월 2일 3차 방류 시작. 7,729톤. 
4. 2024년 2월 28일 4차 방류 시작. 17일간 7,800톤. 


<후쿠시마 원전 폭발 및 오염수 관련 기사 모음>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대니 사피로, 2022)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다른 일들처럼 실천해야 한다. 글을 쓰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면 내 이름이 박힌 소책자 하나가 겨우 나왔을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누가 느낄 수 있을까? 마라토너가 달리고 싶은 기분이 될 때까지 기다리나? 교사가 가르치고 싶다는 욕구로 가득 차서 일어서는가? 잘 모르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추정컨대 오직 행위만이 생산적이다. 할 일을 하는 것만이 그에 대한 욕구를 가능하게 한다. 선수가 경기복을 입고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발명가가 작업실로 터덜터덜 걸어가 등 뒤로 문을 닫는다. 작가가 오로지 작업하기 위한 시간을 내며 작업공간에 앉는다. 그렇게 해서 작가가 영감을 받았을까? 딱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자극이 필요한 작가가 산만해지고, 지루해하고, 외로워졌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원고에서 벗어나 정신을 배회시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라는 걸 안다. (105)


나는 연습(practice)이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삶이란 온전히 '실천'(practice)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지나야 했다. 글쓰기, 운전하기, 하이킹, 양치, 점심도시락 준비, 침대 정리, 저녁식사 준비, 사랑 나누기, 개 산책시키기, 심지어는 잠자기까지도. 우리는 언제나 실천한다. 오로지 실천뿐이다. (111~112) 


채널을 열어두도록 해. 마냥 즐겁기만 한 예술가는 없어. 어느 때고 무엇에건 만족할 일은 없어. 그저 이상하고 신성한 불만족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뿐이야. 다른 이들보다 더욱 살아 있게 해주는 축복만이 불안만이 있을 뿐이야. ... 어느 때고 무엇에건 만족할 일은 없어. 아주 산뜻하고, 솔직하고, 엄청난 위안이 되는 말이다. 어느 때고 무엇에건 만족할 일은 없다는 말에 엄청난 위안을 받을 사람은 작가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위안을 받았다. 이 말은 내가 결국 이런 일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곱씹게 한다. 나는 결과물과 자신을 분리하는 한편, 최선을 다해 작업해야 하고 채널을 열어두어야 하는 삶과 계약했다. (167)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인물들과 그들의 상황이 어쨌거나 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유명한 예술가에 관한 소설을 썼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받아온 정신분석가에 관한 소설도 썼다. 이 인물들을 사랑했고, 이들은 내게 진짜였다. 하지만 평범하지는 않았다. 회고록 <슬로 모션>을 쓰고 다시 소설로 돌아갔을 때, 제이콥이 아팠던 와중에, 내 머릿속에서 뛰놀기 시작한 건 평범한 가족이었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계시는 일상에 있다는 걸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점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댈러웨이 부인은 그저 자기 일을 보러 나가는 여성이다. 클러리서 댈러웨이를 비범하게 만드는 건 그녀 내면의 삶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도 이를 알고 있었다. 에마 보바리와 샤를 보바리는 곤경에 처한 평범한 사람이다. 포크너는 "자신과 충돌하는 인간 내면의 문제만이 좋은 글을 생산한다"고 말했다. 박동하는 심장이라면 필히 내재하고 있을 이런 충돌을 조명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독자에게 공감하고, 하나 되는 감각을 갖고, 발견하게 해주므로. 여기서 우리는 개별성에서 벗어나 인간됨이라는 일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문학이 주는 가장 큰 위안을 얻는다. (175)


나는 제이콥이 자기 부모를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기를 바란다. 하루 하루가 다르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 집에서는 축제 아니면 기근이다. 이 모든 일들이 아이가 커서 생선가게 주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할지도 모른다. 아이는 간절히 안심과 일관성을 바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누가 아이를 탓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이가 예술가라면, 재능과 갈망, 견디는 능력, 무엇보다도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를 융합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삶이 우리를 선택하니까. (252-253)


이 까칠하고 과민하고 교류에 서툰 사람들이 내 부족이다. 당신이 작가라면 당신의 부족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작가들 사이의 경쟁과 질투라는 걸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다. 우리는 다른 이가 아닌 자기 자신과 경쟁하고 있다. 낭독회나 컨퍼런스나 온라인에서 서로를 만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낯선 존재를 희망을 갖고 인지한다. 우리는 우리가 같은 종족의 구성원이며 살아남으려면 다른 이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비록 혼자서 글을 쓰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일종의 협업이다. (259-260) 


나는 계속 글을 쓸 거예요. 글쓰기는 나를 구원했습니다. 이 장엄하고 분란한 존재에게 활짝 열린 창문이 되어주었고, 내가 손에 쥔 모든 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되어주었지요. 글쓰기는 나를 아늑함과 안전함 너머로, 자기 인식의 한계 너머로 몰아붙여 내 이해 능력을 확장시켜주었습니다.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고, 지성을 강화했어요. 글쓰기는 특권이었지요. 내 엉덩이에 채찍질을 해댔고요. 내가 귀중한 명철함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날마다 고통, 무작위, 선한 의지, 운, 기억, 책임감, 친절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내가 그러고 싶건 아니건 말이죠. 글쓰기는 내가 성장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진화해야 한다고요. 더 나아지라고,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몰아붙였죠. 글쓰기는 나의 병이자 약입니다. 내가 겪었던 상실들을 견디게 했고 상실들의 대안이 되어주었죠. 어떤 패턴을 찾아낼 때까지 내가 느꼈던 어떤 혼란을 조금씩 사라지게 하면서요. 아주 가끔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나를 자랑스럽게 여겼을지도 몰라.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어머니를 이해시킬 수 있는 단어를 찾아냈을 수도 있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바꾸고 있어. 나는 죽은 자와 산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에게 손을 내밀고 있어요.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래요,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315-316) 

2023/08/22

팔달문 성곽잇기

 <기사 모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대충 짐작은 가지만 개인적으로는 팔달문 성곽잇기에 찬성하지 않는다. 종로사거리를 삼거리로 만들고 그 안에 살던 사람들, 기관들을 다 내보내고 텅 빈 광장을 만드는 것보다 명분이야 있겠지만, 그간 팔달문 주변에 허물어진 성곽 자리에서 쌓아온 사람들의 시간도, 도시의 기억도 소중하기 때문에. 복원 앞에 붙은 '완전한'이란 수사보다도. 
차에게는 충분히 양보하는 원형이 뭐가 그리 중요해서. 

화성을 복원하고 옛 모습을 찾아 그때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그것이 읍치가 통째 옮겨온 자리에 오래 살고 장사해온 사람들을 무조건 몰아내도 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에는 현대의 삶이 있고, 어떤 식으로 조화롭게 관계를 맺을 거냐는 진지한 고민을 해보았을까? 
수원화성이 매우 아름다운 축조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수원에는 부러 찾아가고 싶은 현대 건축물이 없다. 더군다나 성 안이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염태영 전 시장이 한옥전시관 뒷편 문화시설 부지에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됐던, 패터 춤토르의 프로젝트가 더더욱 아쉽다. 


<고은문학관 기사 모음>

 

<신풍초 철거 기사모음>

알바루 시자와의 대화

루이스 바라간이 그랬던 것처럼 공사 중에 무언가를 바꿀 필요를 느끼십니까?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현장을 수없이 살펴볼 수 있었고 그래야 했습니다. 또한 시공자와 건축주는 최상의 결과물을 얻고 싶어했습니다. 그 어느 것도 한 발 한 발 공간을 발전시켜 나간 경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발견이 있었기에 공간들 사이의 관계가 변하기보다는 깊어진다는 걸 내다볼 수 있죠. 요즘 늘 괴로운 이유는 그러한 발견이 점점 더 어려워져 가기 때문이죠. 미리 정해져서 더 이상 손 볼 수 없는 건축의 상세 도면들이 비록 중요시되고 있지만 조금씩 얻게 되는 풍부함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수준에 도달하려면 사전에 엄격한 통제를 해야 하고 건축의 상세 도면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며 전체 일정도 잘 지켜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과정이 작업을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기 때문이죠. 이처럼 사전에 통제하지 않는다면 새롭게 뭔가를 발견하거나 경험하는 일은 어려울 겁니다. 오늘날 작업 구조에서 그렇게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다 지난 세대의 건축과 비교해 보면 작업은 빈약하기까지 합니다. 
여기 그러한 기회가 저에게 있었습니다. 건축의 상세 도면들을 고쳤으며 창문을 열어젖혔고 높이를 높이거나 지붕을 낮추는 등의 실험을 현장에서 실제 크기로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시도를 할 수 없다면 우린 건축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207쪽)

 

2023/08/20

부모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교육적이다. 아이들은 가장 가까이에서 부모의 모습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활기찬 삶을 사는 모습이 어떤 교육보다 더 가치 있는 가르침이 된다. 
학부모 면담에서 자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를 만난 적이 있다. 오랫동안 관심 있었던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시도해보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는 자기 인생을 잘 찾아갈 테니 저는 이제 제 꿈을 향해 나아가려고요."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부모에게도 중요한 듯하다. 
_ 민들레 148호 '아이의 독립, 부모의 독립' 중에서

걷기 좋은 도시를 위하여

 <기사, 연구 등>




수원의 도시와 공간

 

2023/08/15

 <새로운 가난이 온다> 질문과 요약

  1.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얼마나 바꾸어 놓을까? 인간과 새로운 기계는 서로 의존하는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을까? 
    • 인간과 기계는 다르다. → 사멸성, 우연성(예외)은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 없다. 
    • 현실과 분리되어 논리만으로 구성된 세계 = 이데올로기ideologie
    • 인간의 다양한 경험 속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예외'를 철저히 무시했을 때 탄생했던 체제가 바로 '전체주의' (한나 아렌트)
    • 인간을 닮은 기계... 기계가 닮아야 하는 인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 플랫폼 노동은 충분한 소득을 보전해 주지 못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회피하는 형식으로 제공된다. 
    • 결핍의 시대의 노동 윤리 = 게으름은 악 → 노동으로 증명하라.
    •  풍요의 시대는 노동만을 생존의 자격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 
  2. 기술의 발전이 바꾸어 놓은 자본주의에서 공유 플랫폼은 어떤 것일까?
    • 자본주의의 변화: 통제된 자본주의(자본에 국적을 붙여 국가 간 상호 협력) → 신자유주의Washington Consensus(global market, 즉 자본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국가는 방해 요소, 그 결과 만들어진 초국적 기업) 
    • 새롭게 만들어진 국제기구: WTO, IMF, World Bank 등
    • 개인들도 국가의 보호라는 우산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ex. 민영 보험) 
    • '너무나 명확한 길이 있다. 열심히 일하면 된다.' 
    • 스마트폰 → 공유 경제 → 플랫폼 자본
  3. 민주주의는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통제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 새로운 불평등 → 자식에게 세습되는 자본 소득
    •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초국적 기업으로 인해 국가 전체 부는 늘어나지만 정부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공공의 부가 민간 영역으로 이전, 즉 민영화) 
    • 디지털 시대의 정경유착: 민주주의 사회의 거대 조직화 → 관료화 → 소수가 결정권을 가지는 과두제 발생 → 초국적 자본 및 로비스트와 결탁 
    • 현재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 결정권자들이 다수의 의견을 얼마나 대변하는가? 
  4. 노동은 합당한 존중을 받고 있는가? 
    • 자본이 영토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면 노동에 대해서는 애착을 가질 이유가 없어진다. 
    • 생산자 사회 → 소비자 사회
    • 정책 결정권자들이나 정치는 소득이 높은 이들에게 반응하고 소득이 낮은 이들에겐 반응하지 않는다. (ex. 사용자의 의견이 더 반영되는 최저임금) 
    • 소득이 낮은 이들이 '쓸모없는 존재' 취급을 받는 사회(게다가 소비자 사회)에서 실업이란? 
    • 플랫폼 노동의 특징: 노동자는 기업에 속하지 않는다, 플랫폼을 통해 고객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인(노동자)가 일한 만큼 벌 수 있다. (클라우드 노동자도 있다!) 
    • 노동은 존중받지 못하는데 노동 윤리는 굳건하다(노동하는 자만 가격이 있다). → 소비사회에서 생산자들의 윤리인 노동 윤리가 필요한 이유는 가난한 자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키기 위해서다. 
    • 사는 게 힘들어 기어이 죽음을 택해도 사회를 향해 아무 요구도 하지 않는다. →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  
  5. 새로운 기술의 시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새로운 기술의 시대는 결핍의 시대가 아니다, 과잉 생산, 과잉 소비되는 풍요의 시대다. 
    • 인간다운 삶의 조건: 자유권, 정치권, 사회권
    • fellow-citizen(동료 시민): 시민은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다른 구성원들에게 어느 정도 기대고 있다는 걸 아는 개인들(유대감, 책임감) 
    •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권리인 디지털 시민권이 필요하다. 
    • 로봇세, 구글세, 기본소득, 기초자본, 전국민고용보험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2023)

'살아간다'는 건 우연을 내 인생의 이야기 속으로 녹여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우연이란 '나'가 있기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게 인간의 우연한 삶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우연한 일들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여 녹여낼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하고 안이하게 외부의 스토리에 내 인생을 내어주고마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 우연을 '나'의 인생으로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우연에서 새로운 시작을 발견한다. 미야노가 모임에서 한 번 만났을 뿐인 이소노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태도에서 비롯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언제라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설사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262쪽)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영혼은 늙게 태어나 시간이 갈수록 어려지는데 이것이 인생의 희극이다. 반면에 육체는 어리게 태어나 점점 더 늙어가니 이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145쪽) 


통조림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사실 겉에 붙은 라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에 대해 말할 때도 그의 본성이 아니라 드러난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과거는 밀봉된 채 선반 위에 올려놓은 통조림과 같아. 그래서 우리는 라벨만 보며 얘기하는 거지. 하지만 거기 통조림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78-79쪽)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을 제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거, 기억납니까? 그 세계는 우리가 디디고 선 이 땅의 아래에 있습니다. 지상의 사람들은 몰라도 되는 세계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세계는 아닙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광부들의 세계는 존재합니다. 조지 오웰에게 소설가란 이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드는 존재입니다. 비유하자면 소설가는 마르고 젖은 존재인 셈이죠.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말한 것도 다정함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가능성으로만 숨어 있던 발밑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깨어나는 경험이 없었다면 저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지만, 제 뒤에 오는 사람들은 지금 쓰러져 울고 있는 땅 아래에 자신이 모르는 가능성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 세계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말입니다. 제가 소설을 쓰고 출판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113-114쪽) 


언젠가 시각장애의 본질은 보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이듦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각능력이 점점 멀어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타인의 감각 대상에서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감각 대상에서 멀어지면 모든 존재는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136쪽)


그 섬의 여름은 끈질겨서 9월이 지나도 한없이 늘어진다. 그렇긴 해도 빛이 성기어지는 어스름이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한층 시원해졌다. 이미 떠나왔음에도 나는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왜 이런 것일까, 떠나온 뒤에도 왜 또 이다지도 떠나고 싶은 것일까... (213쪽) 


"다르게 말하면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그리고 그 사실을 제가 알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저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영향을 받은 만큼 그 사건이나 죽은 아이들의 의미도 달라질 테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책임감이에요. 그 사건에 기꺼이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겠다는 것." (236쪽) 


"밤하늘을 관찰하는 태도를 학생들이 잊지 않도록, 어쩌면 책임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그 선생님은 그런 사진을 우리에게 찍어주신 게 아니었을까요?" (239쪽)


무일푼이었지만 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연을 가지고 있었다. 욕망에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돌보는 사람이 되면서 세상 사람들이 가난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에게는 풍요로운 삶이 됐다. (247쪽)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 앞에서 생각은 제멋대로 오간다. 스스로 맥박치며 움직이는 혈관이나 내장과 같아 어떤 생각은 내 의도와 무관하게 저절로 생겨났다가 저절로 사라진다. 이제는 그 사실을 잘 알게 됐지만, 어릴 때만 해도 나는 내 안에서 스스로 생겨나는 생각이 두려웠다. 내가 그 생각의 주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그리고 그런 생각이 영영 사라지지 않을까봐, 또 그 생각들이 현실이 될까봐. 

그런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엄마가 죽는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 도대체 그런 생각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럴 때면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다. (252-253쪽) 


오랫동안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57쪽) 


우리는 저절로 아름답다. 뭔가 쓰려고 펜을 들었다가 그대로 멈추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 채, 다만 우리 앞에 펼쳐지는 세계를 바라볼 때, 지금 이 순간은 완벽하다. 

이게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세계라는 게 믿어지는가? 이것은 완벽한, 단 하나의 세계다.

이런 세계 속에서는 우리 역시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생각의 쓸모는 점점 줄어들고, 심장의 박동은 낱낱이 느껴지고, 오직 모를 뿐인데도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255-256쪽) 


'살아간다'는 건 우연을 내 인생의 이야기 속으로 녹여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우연이란 '나'가 있기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게 인간의 우연한 삶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우연한 일들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여 녹여낼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하고 안이하게 외부의 스토리에 내 인생을 내어주고마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우연을 '나'의 인생으로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우연에서 새로운 시작을 발견한다. 미야노가 모임에서 한 번 만났을 뿐인 이소노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떤 것은 이런 태도에서 비롯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언제라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설사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262쪽)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265쪽) 


작년에 나온 '이토록 평범한 미래'도 좋았는데, 이 소설집은 더 좋다.  

새로운 가난이 온다 (김만권, 2021)

그렇다면 인간은 왜 증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걸까요? 신학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은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을 믿음belief으로 대체하기 때문이에요. 증명은 두뇌의 활동에 바탕을 두고 있죠. 그렇다면 믿음은 두뇌로 하는 것일까요, 마음으로 하는 것일까요? 이런 것들을 '만약 ~라면, ~이다'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기계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해 기계에게 '마음'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까요? 과학적으로 '마음'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논란인 상황에서 말이죠. / 게다가, 수많은 철학자들이 지적해 왔듯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시간'의 존재예요. 인간이 끊임없이 고뇌하며 이 세계를 향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시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 즉 유한하며 사멸하는 존재라는 데 있어요.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1958)에서 명확히 들려주듯, 인간이 누군가의 탄생을 기뻐하는 이유 역시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47쪽)


하지만 그 변화의 흐름이 구조적인 것이라면 그 변화가 무엇인지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에 적응함과 동시에, 그 변화가 만들어 낼 위험이 어떤 것인지 예측하여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겠죠. (68쪽)


이것이야말로 내가 우리 사회에 살며 가장 근본적으로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더 깊이 잠수하지 못하고 표면에서만 허우적거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매일매일 슬픈 것을 본다. 매일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꽃.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 우리는 우리만의 입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모르는 사이 사라지는 꽃. 꽃들은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서 너는 희미하게 서 있었다. 감정이 있는 무언가가 될 때까지. 굳건함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오래 믿는다는 뜻인가. 꽃이 있던 자리에는 무성한 녹색의 잎. 녹색의 잎이 사라지면 녹색의 빈 가지가. 잊는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인가. 잃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 준다는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듯 잿빛에 기대어 섰을 때 사물은 제 목소리를 내듯 흑백을 뒤집어썼다. 내가 죽으면 사물도 죽는다. 내가 끝나면 사물도 끝난다. 다시 멀어지는 것은 꽃인가 나인가. 다시 다가오는 것은 나인가 바람인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영영 아프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슬프게 되었다. 


_ 이제니

2023 포르투&바르셀로나 준비

  • 일정: 8/26 ~ 9/10(가족들 8/8 ~ 9/10)
    • 포르투 8/26~8/28, 바르셀로나 8/28~9/9
  • 집 - 공항 이동
    1. 공항버스: 한일타운 -> 인천공항 13,500원
    2. 공항택시: 인천공항 -> 수원 통행료 포함 7만원대
    3. 공항주차: 약 71,500원(50% 감면)
  • 언어 맛보기: 듀오링고
  • 읽을 책
  1.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소아(김한민)
  2.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3.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인상과 풍경, 시전집
  4. 처음 만나는 스페인 이야기 37(이강혁), 아워 리스본 포르투(조인숙), 바르셀로나(아뜰리에15구), 포르투갈 시간이 머무는 곳(최경화)
  5. 안토니 가우디 아름다움을 건축한 수도자(손세관)
  6. 마로니에북스: 살바도르 달리, 안토니 가우디  

 

  • 가이드북: 론리플래닛 바르셀로나(12판)

2023/07/10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2023)

"속도는 기분을 좋게 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도에 빠지는 건 그게 좋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온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느끼고, 어느 주제에 관해 무엇이든 알아내고 배울 수 있다고 느끼게 되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노출되는 정보량의 엄청난 팽창과 정보가 들이닥치는 속도를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다. "점점 진이 빠지게 됩니다." 수네가 말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모든 것을 다 따라잡아야 하고 늘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면 깊이를 가질 시간이 없어져요. 관계에서의 깊이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에너지가 필요해요.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죠. 거기에 전념해야 해요. 주의력도 필요하고요. 깊이를 요구하는 모든 것이 악화되고 있어요. 그게 우리를 점점 더 표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고요." (52쪽)

 

일상 속에서 우리 다수는 그저 쓰러짐으로써 산만함에서 벗어나려 한다. 텔레비전 앞에 드러누움으로써 하루치의 과부하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휴식으로만 산만함에서 도망친다면, 본인이 애써서 추구하는 긍정적인 목표로 산만함을 대체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산만함으로 이끌릴 것이다. 산만함에서 벗어나는 더욱 강력한 방법은 자신만의 몰입을 찾는 것이다. (92쪽)


독서는 "바깥을 향한 관심과 내면을 향한 관심을 결합하는 방법"이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한다. 레이먼드는 그때 우리가 "다양한 인물과 그들의 동기, 목표를 이해하려 애쓰고, 그런 다양한 요소를 따라가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연습입니다. 그때 아마 사람들은 현실에서 실제 인물을 이해하려 할 때와 똑같은 인지 과정을 사용할 겁니다."(135-136쪽) 


우리는 딴생각 중에 천천히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 ...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분명히 개별 단어와 문장에 집중하지만, 정신의 작은 일부는 언제나 배회하고 있다. 우리는 이 단어들이 자기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생각한다. ... 이것은 독서에서의 결함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독서다. 지금 정신이 배회하게 두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이해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방황할 정신적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독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도 그렇다. 딴생각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조너선은 내게 "딴생각을 하지 못하면 다른 수많은 것들이 사라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딴생각을 많이 할수록 더욱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고 더 창의적이며, 끈기 있는 장기적 결정을 더 잘 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신이 표류하면서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삶을 이해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더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 (147-148쪽) 


"기술의 목적이 뭘까? 우리는 왜 기술을 만들까? 우리가 기술을 만드는 이유는 기술이 우리 안의 가장 인간적인 면을 끌어내 확장하기 때문이야. 그게 붓의 목적이야. 첼로도 그렇고, 언어도 그래. 이 기술들은 전부 우리 안의 어떤 면을 넓혀줘. 기술은 우리를 초인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냐. 우리를 더욱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주는 거지." (184쪽)


안타깝게도 인간의 행동에는 기이한 특성이 하나 있다. 대체로 우리는 긍정적이고 잔잔한 것보다 부정적이고 충격적인 것을 훨씬 오래 바라본다. (203쪽)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을 분노하는 데 쓰면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다. 트리스탄이 말했듯이, 이러한 현상은 '증오를 습관화'한다. 증오가 우리 사회의 뼈대에 스며드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내가 10대였던 때 영국에서 열 살인 두 어린이가 막 걸음마를 뗀 제이미 벌저Jamie Bulger라는 유아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다. 이에 당시 보수당 총리였던 존 메이저John Major는 우리가 "비난은 조금 더 많이, 이해는 조금 더 적게" 할 필요가 있다고 공개 발언했다. 14살이었던 내가 총리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악랄한 행동일지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언제나 더 낫다. (204-205쪽)


그의 말에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고, 한동안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확실히 니르의 접근법은 기술 기업이 집중력 문제에서 우리가 택하기를 바라는 접근법과 비슷하다. 기업들은 더 이상 이 문제를 부인할 수 없으므로 다른 방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자신들이 아닌 여러분과 내가 자제력을 더 발휘해서 해결해야 하는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도록 우리를 슬며시 떠밀고 있는 것이다. (229쪽)


이 책의 자료 조사를 하는 내내, 집중력 위기의 구조적 특징을 명심하려고 애썼다. 우리는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문화에 살고 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개인적 실패로 받아들이고 개인적 해결책을 찾으라고 끊임없이 압박받는다. 집중할 수 없는가? 과체중인가? 가난한가? 우울한가? 이러한 문화에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도록 배웠다. 그렇다면 그건 내 잘못이야. 힘을 내서 이 문제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아서 찾았어야 해. (326쪽) 


"핵심은, 현재 기술의 작동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고 결정을 내리는 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넘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 사이의 골짜기를 지나야 하니까요. 그게 바로 규제의 역할입니다. 골짜기를 더 쉽게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요. 하지만 저 너머의 산은 훨씬훨씬 아름답습니다." (253쪽)


조부모님에게서 나에 이르기까지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인간 삶의 가장 기본 요소 중 하나, 바로 우리 몸의 연료인 음식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인터뷰한 전 세계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허리둘레와 심장에 나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지만, 또 다른 핵심 영향, 즉 음식의 변화가 우리 집중력의 상당 부분을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등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310쪽) 


인덱스를 한 부분은 더 많지만 이 정도만 기록해둔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집중력을 얼마나 좁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주변에 은근히 권하고 싶은 책, 한 권을 만났다. 

2023/06/28

눈부신 안부 (백수린, 2023)

개개의 인간들의 몸을 구성하는 아주, 아주 작은 요소인 원자는 멀고도 먼 옛날 폭발한 어느 별에서 왔다는 말. ... 지난 수십 년 동안 새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아무튼 오늘 아침엔 그 말을 곱씹어보다가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단다. 우리는 모두 그 자체만으로도 태초의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존재들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말이야. 
어린 시절 나는 늘 '생의 한가운데' 속 주인공인 니나를 동경했지. 소심하고 주저하는 성격 때문에 니나처럼 삶을 살아내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단다. 내가 조금 더 용감했다면, 관습으로부터 더 자유로웠다면, 더 근사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하지만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마도 누군가의 눈에 나는 극동의 가난한 분단국가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팔려온 노동력일 뿐인 거야. 다른 누군가에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막내딸이거나 이혼녀, 뇌종양으로 단명한 비극의 주인공일 뿐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뚜벅뚜벅 걸어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로, 슬로베니아로 이어지는 광대한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기도 했단다. 물론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늘 동경했던 시인이 되지도 못했고, 뼈아픈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겪었어.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보며 더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302~304쪽)


지난 이틀 동안 백수린 첫 장편소설인 이 책을 읽으며 인덱스를 제법 많이 했다. 아침, 우선 이 부분을 남기고 인덱스는 따로 정리를 하기로 한다.  

독일은 형식적인 절차가 중요하고, 건조해요. 건축주와 미팅을 한다면 오늘 날씨가 어떠니 따위를 딱 두 마디 하고 세 번째 문장부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식이에요. 또 한번 계획과 협의를 끝내면, 변수 없이 그대로 실현하는 미덕을 중시해요. 그러기 위해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미리 정하기 때문에 계획 과정에 시간을 몇 배로 많이 들이고요. 가끔 예측 못한 상황으로 무언가 틀어져도 원래 계획대로 끌고 나가려는 의지가 강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죠. 한국은 이보다 확실히 유연한 것 같아요. 작년에 하동을 여행하는데 농촌 풍경이 참 아름다웠어요. 집 위에 가벼운 철제 구조를 올려 고추를 말린다거나 하는 의외성이 쌓이면서 전체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수원 성곽 옆 주택(2023) 프로젝트로 한국에서는 처음 설계부터 시공의 전 과정을 맡아 했는데, 현장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시시각각으로 많은 것이 바뀌는 상황이 계속되더라고요. 현장의 분들과 끝없는 '딜'을 해야 한달까요? 어쩔 때는 이런 과정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설계안과 실제가 너무 멀어져버리거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_ '뿌리가 땅을 말할 때: 김기준', <SPACE(공간> 2023년 6월호 인터뷰 중


베를린에서 아뜰리에를 운영하는 김기준 건축가의 공간 인터뷰. 

동네에 있다는 '수원 성곽 옆 주택'이 궁금하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이미상,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제 소설에는 '한 방'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단편소설 특유의 좁은 지면 탓에 문장을 아껴 쓰며 굽이굽이 나아가다 순간 탁, 터뜨리는 에피파니라고 해야 할까요, 와우 포인트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부족하다고 하잖아요. 모든 문장을 쭉 빨아올리며 꼭대기에서 탁 터뜨리는, 푹 꺼뜨리기도 하지만 그건 비위 약한 작가들을 위한 탁 터뜨림이고요. 여하튼 결정적인 한 장면,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한순간, 우리가 책을 덮고 고개를 젖혔을 때 공중에 떠 있는 그 뭐가 제 글에는 없대요." (10쪽) 


"왜긴요. 딴 애들이 불쌍해서죠. 소설에 쓴 모든 문장이 그 '한 방'을 위해 쓰이는 것 같잖아요. 그 한순간을 들어올리기 위해 팔을 벌벌 떨며 벌을 서고 있는 것 같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뭐 소설계의 대장장이가 되어 모든 문장을 평평하게 두들겨 신scene들의 평등을 꾀하겠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럴 주제도 못 되고요, 그저 모든 자잘함을 지우며 홀로 우뚝 선 한순간을 지지하는 것을 찜찜해한다는 거죠." (11쪽)


"백 마디 말보다 이런 뇌리에 박힌 한순간이 결국 인간을 바꾸는 거 아닐까? 나만 해도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영상을 보지 않고 있어. 보면 바뀌니까. 고기를 못 먹게 될 거야." (14쪽)


'그러니까 이런 거란 말이지.' 목경이 눈을 뜨며 생각했다. 먼훗날, 숨넘어가기 직전, 누군가 자신에게 오늘에 대해 묻는다면 목경은 이 이미지만을 기억할 것이다. 처음에 들었던 두 사람의 대화는 잊고. (14쪽)


근본적으로 그의 소설론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건 "영원히 일회용 비닐봉지와 용기를 쓰지 않겠다" "'되도록'은 안 된다"(13쪽)며 온몸으로  짐을 잔뜩 안고 떠난 세번째 여자의 목소리다. 그 안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쓸 수 있는 것을 쓰겠다는 마음이다. (소유정 해설, 59쪽) 


그러나 이 소설은 힘이 세서 그런 물음표들을 다 쓸어버린다. .... 작가는 두 진영(?) 중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모두가 그를 자기편이라고 믿게 만든다. 좀 잊고 산 거 같은데, 원래 이런 게 소설 아닌가. (신형철 심사평, 347~348쪽) 

2023/06/23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온전한 삶을 열망하는 아들이고 딸입니다. 

자녀들은 당신을 통해 왔으나 당신에게서 온 것은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나 당신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몸을 가둘 수는 있지만 마음까지 가둘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기거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당신이 꿈속에서라도 방문할 수 없는 곳입니다. 

당신이 그들처럼 되고자 할 수는 있겠으나 그들을 당신처럼 만들지는 마십시오. 

삶은 거슬러 가지도 않으며 어제에 머무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_ 칼릴 지브란

ETF

  • 상장지수펀드(ETF, Exchage Traded Fund):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만든 펀드
  • 추종하는 지수의 구성 종목들로 이루어져 있는 펀드, ETF 1주 매수 시 해당 지수 구성 종목 전체를 조금씩 매수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 -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분산 투자
  • 정기적인 리밸런싱(Rebalancing)
  • 저렴한 운용보수(일반 주식형 펀드 연 1~2%, ETF 연 0.2~0.4% 수준)와 투명한 운용(펀드 보유종목을 영업일 기준으로 매일 공시)
  • 단순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원자재, 부동산, 국가별 등 다양하게 상장되어 있어 원하는 시장이나 테마에 손쉽게 투자. 
  •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어 쉽게 사고팔 수 있으며, 별도의 환매기간이나 환매수수료 없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수량만큼 거래한 가격을 직접 확인하고 매매(영업일 기준 이틀 후 현금으로 되찾을 수 있음)
  • 순자산가치(NAV): 매일 장 마감 이후 자신의 가치와 수량 변화를 통해 계산하는 ETF의 순자산 가치
  • 추정 순자산가치(iNAV): ETF가 실시간 거래가 될 수 있도록 거래소에서 실시간으로 제공해주는 추정 순자산 가치
  • 비과세: 국내주식으로 구성된 ETF
  • 과세(배당소득): 국내채권, 원자재, 해외주식 등 그외 ETF(매수시점부터 매도시점까지 과표기준가격의 상승분과 실제 발생한 매매차익 중 적은 금액에 대해 15.4% 원천징수)
  • 유동성 공급자(LP): ETF 순자산가치에 가깝게 호가를 불러 가격괴리를 방지하고자 하는 제도
  • 국내ETF 종류: KODEX(삼성자산운용), TIGER(미래에셋자산운용), KBSTAR(KB자산운용), KINDEX(한국투자신탁운용), ARIRANG(한화자산운용), KOSEF(키움자산운용) 등
  • ETF수수료: 거래수수료, 운용보수, 기타비용
  • TR: ETF 주식에서 발생하는 배당금을 재투자하는 방식
  • H(환헤지): 자산의 가격이 환율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놓는 것

세상 물정의 물리학(김범준, 2015)

민주주의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전체적으로 옳은 의견으로 수렴되는 그런 것 말이다. (206쪽)


3장 물리학자는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챕터의 첫 번째 글 마지막 문장. 

읽으며 인덱스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 문장만 덩그러니 남겼지만 복잡한 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한 물리학자가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게 바라보는지 체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2023/05/05

박완서

막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집에 잔손 갈 일이 없어지자 비로소 이제부터라도 엄두를 내야 할 것 같은 엄청난 욕구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느꼈다. 그 걷잡을 수 없는 욕구는 증언의 욕구였다. 6.25 때 오빠하고, 끝내 자기 자식을 두지 못해 나에게는 아버지와 다름없었던 삼촌이 비참하게 죽었다. 남들이 다 남쪽으로 피난가 있는 동안 남아 있던 우리 식구들은 강제로 찢기고 일부는 북으로 끌려가야 하는 고난을 겪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인들 안 당했겠는가.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언젠가는 저자들을 악인으로 등장시켜 마음껏 징벌하는 소설을 쓰리라는 복수심이었다. 왜 하필 소설이었을까. 소설로 어떻게 복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기를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 

_ 박완서,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그리움을 위하여> 357쪽, 문학동네, 2013. 

지금 내 나이를 반으로 툭 갈아 그 시절로 돌아가면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군대에 있던 나는 한 선임이 추천해준 책 몇 권을 읽었는데 그 중 한 권이 박완서의 것이었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소설을 읽었다는 감각만이 남아 있는 정도이지만 그 당시에도 '아주 오래된'과 '농담'이 나란히 적힌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후 책 읽기를 권장하는 프로그램에서 작가의 소설이 소개되었던 것 같고, 작가의 자전적 소설들이 꽤 인기를 끌었었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2013년 무렵에 아주 우연한 계기로 작가의 데뷔작인 <나목>을 읽게 되면서 작가를 다시금 대면하게 되었다. 

작년 어버이날, 그러니까 지금 무렵일 텐데 본가에 아버지 읽으라고 세계사에서 펴낸 박완서 소설전집을 보내드렸는데 아버지가 살아온 시절을 관통하는 소설들이어서 그런지 아버지도 그런 시대적 증언에 대한 부분을 몇 번이고 언급하셨다. 

두 달 전쯤에는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의 제목을 단 작가의 인터뷰집을 읽었는데 그게 또 너무 좋아서 이번에는 문학동네에서 펴낸 작가의 단편소설 전집을 주문해 그 중 맨 끝 권인 <그리움을 위하여>를 이제 막 다 읽은 참이다. 

요즘 활발히 출간되는 소설들에 견주어 보면 어디서 이렇게나 찰진 우리 말들의 향연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특유의 냉소와 농담은 또 어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