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1

현실은 현실에 대한 어떠한 표현보다도 더 크다. 그러나 경험이 독서보다 반드시 삶에 더 유효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데에 독서의 신비가 있다. 우리는 우리 삶에 필요 없는 것을 분명하게 한정할 수 없다. 장자는 필요 없는 것을 배제하고 필요한 것만 포섭하려는 혜자의 견해에 대하여, 발을 딛고 있는 땅은 서는 데 필요하고, 그 이외의 땅은 서는 데 필요 없다고 하여 나머지 땅을 다 잘라 버린다면 땅을 딛고 서 있을 수도 없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한 사람이 실제로 걸어 본 지역은 한 평생 걸은 길을 다 합친다 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지리와 지질과 지형에 대한 우리의 담화는 대부분 독서에 의존하고 있다.  
_김인환, <과학과 문학> 32-33쪽, 수류산방,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