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4
편지를 보낸 후
"우선, 저희는 저희가 거주하게 될 집이 동네에 자연스럽게 스미길 바랍니다."
메일을 쓰며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말을 무엇보다 먼저 하고 싶었기에 그 대상은 ㅇㅇㅇㅇ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아내는 안 될 거라며 한 발 물러나는 몸짓을 보였지만, 나는 며칠을 망설이며 쓰고 다듬은 메일을 보냈다. 2017년 3월, 늦은 밤이었다.
메일에는 저토록 추상적인 바람 외에도 최소한 갖춰야 할 규모와 추상적인 바람 못지 않게 중요한 우리의 요구사항이 하나 더 담겼다. 그것은 커뮤니티 성질을 가지는, 개인 집이라는 사적인 성격과는 조금 동떨어진, 중성적인 공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내용을 위해서라도 윤곽은 미리 갖춰야 하겠기에, 그러면서도 혹 과대한 부피는 염려가 되어 조심스럽게 글자를 배열했다.
2018/02/13
2017년 2월 23일의 일기
그러니까 어제, 오후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지도를 보니 괜찮아 보여 퇴근하고 아내와 함께 가 보았다. 가 보니, 괜찮다. 괜찮았다. 그러니까 아내와 나는 그 땅을 본 순간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래, 느낌이 좋다.
바로 부동산으로 가서 긍정의 의사를 전하니 곧장 계약을 하자고 한다. 그게 바로 오늘. 도서관 앞 땅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동시에 우리 땅이라는 직감이 머릴 스친다. 그러자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 계약 무산의 과정을 겪었다.)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그 땅에 들렀다. 어두울 때 골목의 분위기를 보고 싶었다. 높이 매달린 가로등 불빛은 꽤나 밝았고, 거주자 우선주차 때문에 도로는 비좁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답답해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좋은 느낌을 유지한 채 집으로 돌아가니 이제는 돈 문제가 전속력으로 달려 들었다. 하! 정신이 없는 게 아니라 녀석을 안고 그대로 뒤로 나자빠져 뒹굴고 있었다.
은행에 가서 대출 요건을 알아보고, 계약금만 빠듯하게 맞춰 부동산으로 향했다. 시간이 좀 일러 그 땅을 주위를 배회하다가 — 현재 조건만 유지되면 일조량이 아주 넉넉하다 — 부동산으로 갔다.
그렇게 우리가 노랠 부르던 집을 짓기 위한 첫 관문, 땅을 계약했다. 이제부터 시작. 하지만 돈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그리고 늘 고대해 왔지만 너무 갑작스럽다는 얼떨떨함. 그래서 미처 준비가 소홀하거나, 건축가를 택하는 데 조바심으로 그르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대중없이 나를 공격한다.
2018/02/11
벌써 일 년
물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예상대로, 기록은 여러 곳에 감추어져 있다. 미처 머리와 가슴 속에서 끄집어내지 못한 기록들은 이미 사장되었을 것이다.
기적적으로,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원하던 그곳에 땅을 샀다. 그 땅에는 1968년에 준공된 조적집이 있다. 1968년. 무려 50년 전이다. 그리고 우리가 땅을 산 지 벌써 1년이다. 그럼 1년 동안 뭘 했냐고?
돈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팠고, 지금도 아프다.
얼마나 무모했던지. 세상을 이렇게도 몰랐다니. 땅 계약을 하고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오셨고 그 땅을 보고 나서 같이 걸으며 자금계획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부끄러웠고 가슴을 벌렁거리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제서야 욕망의 카테고리에서 빠져나온 것 같았다.
우리는 자금을 마련하고자 전세를 갈아타기 위해 매물을 내놓았지만 꼬박 1년 만에, 계약기간을 거의 다 채우고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집은 좁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지 못한다는 것과 이사를 하려고 짐을 헤아려 보니 이 집은 좁은 게 아니라 넓은 곳이 없는 것뿐이며 우리가 가진 다소 많은 가구를 배치하기에 최적이었다는 것을. 희한한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