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7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이성복, <남해 금산>, 문학과지성사, 1986
2017/08/15
독일은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생산할 능력도 없다는 게 확인되었다.
일대 사기극이 시작된 것은 그때였다. 원자폭탄 경쟁에서 나찌를 누르기 위해서라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정당화는 단번에 뒷전으로 물러났으며 그와 함께 도덕적인 힘, 그로브즈가 15만 명의 남녀들 - 특히 과학자와 기술자 들 - 을 더욱 열심히 일하게 만들기 위해 불러일으킨 도덕적인 힘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의 휘하에 있던 일급 과학자들은 예상대로 "독일에 그것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가"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과학자 중에서도 제일 선두에 선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정당했던 공포로 인해 당초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실현시켰던 바로 그 망명 과학자들이었다. 그로브즈는 입장을 바꿔 나찌를 항복시키기 위해 원자폭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작업을 더욱 신속하게 진척시키라고 외쳐댔다. 그가 그렇게 설쳐댄 것은 사실 나찌가 항복하기 전에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원자폭탄을 실험해보기도 전에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날 것이 점차 분명해지자 그로브즈는 인간을 목표로 원자폭탄의 위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까봐 몹시 걱정했다. 일본이 아직 적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들이 핵무기 계획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앞지르기 위해 원자폭탄 제조가 필요하다는 식의 구실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원자폭탄의 사용이 전쟁을 단축시키고 수십만 미국인의 생명을 구할 것이라는 제2의 대사기극이 연출되었다.
'미국인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구호는 후에 베트남 전쟁에서 부녀자, 어린이, 심지어 품속의 아기들까지도 죽인 미라이의 대학살 그리고 그와 유사한 수많은 학살사건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역질나는 공식이 된다. 그로브즈 장군은 '미국인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구호가 수십만의 일본 민간인들에 대한 살육을 정당화해준다는 논리로 그런 공식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로브즈 자신도 그런 구실이 일류급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원자폭탄은 일본의 항복을 확실히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원자폭탄이 실험을 거치면 즉각 일본에 대해 사용될 것이란 말이 그로브즈의 '빈틈없는' 보안망을 뚫고 새어나오자 과학자들 사이에서 곧 반발이 일었다. 독일이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처럼, 가장 크게 우려를 나타낸 건 맨해튼 프로젝트를 맨 처음 주장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윌프레드 버체트, <히로시마의 그늘> 141-145쪽, 표완수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5
계속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227쪽, 창비 2014
김준의 사이트에서 황정은이란 이름을 몇 차례 보며, 나도 읽어봐야겠다, 국내 작가에 대해 너무 무심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지난 일주일, 황정은의 나의 첫 번째 책,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으며 큰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그런데, 비록 이야기는 나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결코 비상상의 세계는 아닌, 바로 근처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너무나 일상적인. 그래서 은근한 애정이 남는. 그러니까 소설은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들, 우리들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사서 서재에 꽂아두고 싶었는데, 그 자리는 아무래도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옆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통의 존재를 다룬 소설 속 인물들이 3인칭이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꽤나 비중 있게 다가온다. 더군다나 엄마도, 소라와 나나는 애자로, 존재 고유의 이름으로 부른다. 다만, 지극히 내적인 고백, 즉 나기의 고백에 등장하는 소년만이 '너'로 표현될 뿐이다. 그 고백은 동성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동성애는 아직 우리 나라에서 내적인 고백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한 것일까.
2017/08/14
동네를 찾아서
용인으로의 이사는 십여 년의 서울 생활의 청산과 함께 이십대가 되며 시작된 아파트 생활에서 다시 단독주택으로 돌아가는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물론 우리 부부의 의지이자 여러 제반 여건이 고려된 결과이기도 했다.
택지지구 내 기반시설이 정비된 곳에 위치한 지금 집은 소위 말하는 땅콩 주택이어서 그리 넉넉한 공간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가 갓 태어난 딸 아이와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원래 야산인 곳에 산책로를 개설한 공원이 가까이에 있고 도서관이나 호수공원도 마음만 먹으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큰 주저 없이 택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형네 집과 무척 가까웠다. (이 동네를 우리에게 알려준 이도 다름 아닌 처형이었다.)
처음엔 미분양이었다는 동네는 단독 필지가 대략 8-10개 정도 모여 있는 클러스터가 이어져 있는 형태인데, 단독주택 붐이라도 불었는지 우리가 이사 오고 나서는 자고 일어나면 한 집 착공하는 일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동네의 빈 땅들이 하나둘 채워져 가는 사이, 어느새 아내와 내 마음 속에도 집을 짓고자 하는 욕망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다. 더없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집을 짓고 살기에 우리 가족에게 적합한 곳은 어디일까?
사는 데 불편하지 않고 딱히 동네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질문에 지금 동네라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동네가 가진 장점, 즉 쾌적함과 고요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비용 면에서도 지금 동네는 타협의 지점이 멀고도 멀었다. 게다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더 그럴싸한 변명을 하자면, 내겐 참을 수 없는 시간이 존재했다고 해야겠다.
어느 동네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왜인지 그 필요한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대중교통의 불편함은 치명적인 단점임에도 불구하고 '시간' 앞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리고 그 시간이란 변명은 동네스러움이라는 나의 까다로운 기준에도 부합해야 했다.
동네를 찾아나서야 했다. 그 일 번지, 내 마음 속 일 번지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히로시마에서는 최초의 원자폭탄이 도시를 파괴하고 세상을 뒤흔든 지 30일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불가사의하게 그리고 끔찍하게 죽어가고 있다 ━ 하늘과 땅을 온통 뒤흔들어놓은 그 대폭발에서도 상처를 입지 않았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기자는 원자병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히로시마는 폭격당한 도시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증기롤러가 깔아 뭉개고 지나가서 그 도시를 완전히 없애버린 것 같다.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사방을 둘러보면 25-30평방마일 내에서는 건물 한 채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저지른 그 같은 파괴를 보면 뱃속이 휑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자는 임시 임시 경찰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도심의 한 판잣집 같은 건물로 갔다. 거기서 남쪽을 바라보니 붉은 돌부스러기들만 3마일 정도 뻗쳐 있다. 수십 개로 구획지어진 도시의 거리며, 건물, 집, 공장, 인간 들을 파괴하고 원자폭판이 남긴 것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폭탄이 떨어졌을 때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으나 나중에 괴상한 후유증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들의 건강은 악화됐다. 식욕이 없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져나가고 몸에는 푸른 반점이 생겼다. 그 다음에는 귀와 코와 입에서 출혈이 시작됐다. 처음에 의사들은 일반적인 쇠약증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들에게 비타민 A를 주사했는데 결과는 끔찍했다. 주사바늘이 꽂힌 곳부터 살이 썩어가다가 예외없이 죽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이 투하한 최초의 원자폭탄이 가져온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후유증 가운데 하나이다. 거기서는 내가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특이한 냄새가 났는데, 유황 냄새와 비슷하긴 하지만 정확하게 그 냄새도 아니다. 아직도 타고 있는 불더미 옆을 지날 때나 잔해더미에서 시체들을 끌어내고 있는 곳 등 모든 것이 파괴된 지역이면 예외없이 그 특이한 냄새가 났다.
"아침 일찍 공습경보가 있었지만 정작 나타난 것은 비행기 두 대뿐이었지요. 우리는 정찰기로만 생각하고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해제 경보가 울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러 나갔지요. 그후 8시 20분쯤 내가 사무실로 가려고 막 자전거에 올라탔을 때 비행기 한 대가 돌아왔어요. 그러고는 뭔가가 번개처럼 번쩍하는 동시에 뜨거운 열기와 폭풍처럼 세찬 바람이 얼굴에 확 와닿았어요. 나는 땅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내 옆에서는 집이 무너져내렸지요. 내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에 옆에서 강력한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벼락 같은 폭발 소리가 났어요. 올려다보니 낙하산 모양의 거대한 검은 연기기둥이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더군요. 그 중심부에는 진홍빛 선이 있었는데, 그것이 연기기둥을 헤치고 점점 퍼져나가 마침내 전체가 빨갛게 되었어요. 그리고 히로시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나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윌프레드 버체트, <히로시마의 그늘> 63-67쪽, 표완수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