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2

길 떠나는 이에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 그 무한한 긴장, 기대와 걱정. 배낭의 무게는 거기에서 결정된다. 나는 無用의 결혼식에 부친 詩에 이렇게 썼다. 


   벗이여, 
   이제 우리 긴 여행을 떠나자
   겨우내 얼었던 땅과 나무
   대지를 풍요롭게 하네
   살아있음을 실감케 하는 
   햇살, 바람의 손짓 따라
   떠나자, 여행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따르는 믿음과 사랑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마음과 손과
   발이 대신하리
   우리는 기꺼이 연대하리
   짐을 꾸리자, 벗이여
   우리 앞에 놓여진 그윽한 길
   발을 내딛는 순간, 삶은
   여행이 되리  


그렇다. 얼마든지 삶은 여행에 비유될 수 있다. 같은 장소를 가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여행이듯 삶도 얼마든지 그렇다.
어제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K였던 J가 오후 느즈막이 집에 들렀다. 집에서 가장 시원한, 식탁에 자릴 잡고 앉아 냉장고에 든 맥주를 모두 비우며, 앞으로의 시간과 누군가의 경험에 대해 논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지?)
주제넘게도, 내가 한두 마디 거들 수 있었던 건 고작 서너 해 더 먹은 세월의 겹일 뿐인데도, 나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말은 거만하다.
집과 아이와, 어떤 느슨한 결속에 대해. 그리고 '때時'에 대해.
조금은,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방향으로 삶의 머리를 틀고 싶다는 누워있는 생각.
맥주를 다 비우고 동네 산책을 하고, 오후에 내려둔 커피를 나눠 마시고, J는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