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10

그도 프랑스야!

알제리 독립전쟁이 시작된 1957년은 알베르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였다. 그는 “조국을 배반할 수는 있으나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를 배반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식민지에도 반대하지만 알제리에서 프랑스인들이 쫓겨나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소설 <페스트>로 알 수 있듯이 카뮈는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이다). 카뮈가 인간관계와 명분 사이에서 주저했다면 사르트르는 단호했다. 
사르트르는 말과 글로 식민지의 반인간성, 반역사성을 강력하게 외쳤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알제리 독립자금 전달책으로까지 나섰다. 당시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알제리인들이 갹출한 독립지원금이 들어 있는 돈가방의 전달 책임자를 자원했던 것이다. 프랑스 경찰의 감시를 피해서 그의 책임 아래 국외로 빼돌린 자금은 알제리인들의 무기 구입에 필요한 돈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의 행위는 문자 그대로 반역행위였다. 당연히 사르트르를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소리가 드골 측근들의 입에서도 나왔다. 이에 대해 드골은 이렇게 간단히 대꾸했다. 
“그냥 놔 두게. 그도 프랑스야!”
‘그도 프랑스야!’ 이 한마디에서 우리는 20세기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사람을 만나고 또 그 두 사람이 가장 프랑스적인 프랑스인이라는 사실과 만난다. 사르트르가 프랑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사상가, 문필가였다면 드골 역시 프랑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정치 지도자였다. 어쩌면 드골이 한 수 위였는지 모른다. 그의 위대성은 “그도 프랑스야!”와 “나는 당신들을 이해했습니다”의 두 마디에 농축되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는 “그도 프랑스인이야!”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도 프랑스야!”라고 말했다. 둘 사이에는 말의 묘미 이상의 차이가 있다. 예컨데 “한총련 학생들도 한국인이야!”와 “한총련 학생들도 한국이야!”의 사이에는 실로 큰 차이가 있지 아니한가.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