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3

우선 창조라는 행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창조라고 하면 다 좋은 거냐는 거죠. 모든 창조가 좋은 작품으로 연결되지는 않잖아요. 가령 별 볼 일 없는 창조도 있는 거죠. 창조라는 것이 대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창조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들 중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나서 번역은 창조이냐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 질문에는 논란이 있죠. 없던 걸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가령 언어는 성긴 그물 같은 거잖아요. 언어는 사진이 아니니까. 작가가 파란 하늘에 초록색 풀밭이 있다고 썼다면, 그것이 얼마나 파란색이고 얼마나 초록색인지, 풀이 얼마나 조밀하게 나 있는지 얼마나 높은지 누구도 모르죠. 언어는 자체로 완전하지 않아요. 따라서 몇 마디 말을 가지고 우리는 어떤 부분들을 그려내면서, 상상하면서 읽게 되죠. 예컨대 이처럼 성긴 부분을 채워나가면서 읽는 행위 자체가 창조적 행위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번역 역시 창조적 행위라고 할 수 있겠죠. 오리지널을 창조하느냐, 그에 파생된 창조 행위를 하느냐는 물론 다른 범주이지만. 그렇다고 이 둘을 무조건적인 상하관계로 배치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에요. 창조 행위의 결과로서 가치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_정영목, <Axt no.031 2020. 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