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0

만일 내가 이날 기차 안에서의 상황을 의미심장하게 느꼈고 그 여운이 길게 남았다면, 다들 기대어 잠든 뒤에, 혹은 집으로 돌아와서 짧게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창밖에는 시커먼 구름인지 산인지 모를 무언가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목포까지 멀리 다녀왔으니 뭐라도 써보자며 기계적으로 노트를 폈다면 <우리는 목포로 가고 있었네> 같은 것을 써놓고 기록이 경험에 비해 많이 싱겁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 노래를 쓰고 몇 년이 지나자 나는 후자의 문장보다 전자의 문장에 좀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밖에 길게 펼쳐진 무엇이 있었다> 정도의 단순한 문장, 의외로 그런 것들이 노래가 된다. 내 눈길을 끌었던 만큼 풍성한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_김목인,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34-35쪽, 열린책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