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3

여기, 두 개의 문 앞에 우리 운명의 결정자, SS 하급장교가 서 있다. 그의 오른쪽에는 블록앨테스터가, 왼쪽에는 막사반장이 서 있다. 알몸인 채로 타게스라움에서 10월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나온 우리들은 두 개의 문 사이를 몇 걸음에 달려가서 SS 대원에게 카드를 넘기고 다시 숙소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SS 대원은 두 행동이 이어지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우리의 얼굴과 등을 한눈에 보고 각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렇게 하여 자기가 받은 카드를 오른쪽 남자에게, 혹은 왼쪽 남자에게 건네준다. 이게 우리들 각자의 죽음과 삶을 가르는 것이다. 3~4분 사이에 200명이 수용된 한 막사의 선발이 '완료'되고, 오후에 1만 2,000명이 수용된 전 수용소의 선발이 끝난다.   
_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195-196쪽, 이현경 옮김, 돌베개. 

너무 끔찍해서 서둘러 읽을 수 없었고, 읽는 동안 어떤 불특정한 지점을 응시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2005년의 워싱턴 그리고 2013년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