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9

루이스 칸

"저는 이렇게 믿어요. 한 인간이 지니는 가장 커다란 가치란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줄 아는 데 있다고 말이지요. 제가 해 온 방법은 정말로 저만의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여러분이 제 것을 흉내를 낸다면 여러분은 몇 번이고 수없이 죽는 짓을 하는 겁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내가 내 자신을 흉내를 내 봐야 별로 잘 될 것이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게 정말 완전하지 못한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이 정말 소중합니다.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닌 이것입니다. 우리에게만 속하지 않은 이것이 우리가 만든 작품 중에서 더욱 좋은 부분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만 속하지 않은 이것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보물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보물을 생각했다고 할지라도, 그는 그저 그 보물을 생각한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어쩌면 그 사람일지 모르겠군요. 왜냐하면 그 보물을 정말 모든 사람에게 속한 보편적인 공동성의 한 부분이니까요."
김광현,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 52쪽, 공간서가 
 
본래 두 개의 연구동 사이에 있는 이 중정은 연구자들이 휴식하고 산보하는 장으로 나무를 심고 그 나무 밑에서 조용히 묵상도 할 수 있는 정원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 광장에는 아무 것도 두지 않고 '하늘을 향한 파사드'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멕시코의 건축가인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án의 조언을 받아들여 트레버틴을 깐 광장으로 바꾸었다. 칸은 이런 변경안에 매우 만족하였으며, 또 건축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조형에 크게 감탄하고 있다. 그런데 칸을 돕던 구조기술자 어거스트 코멘던트August Komendant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나는 몇 사람의 과학자에게 이 변경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들은 모두 돌로 된 광장보다는 정원을 바라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주변에 메마른 땅이 펼쳐져 있으니 아름다운 정원이야말로 이 장소에 어울린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나는 언젠가 이곳이 정원으로 바뀌게 되기를 기대한다." 
같은 책 95-96쪽  

© 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2016/09/27

ㄷ벤치

꼬박 반 년을 다닌 오밀목공방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건 연귀짜임을 이용한 벤치였다.
만든 과정은 이랬다.
우선 만들고 싶은 형태와 개략적인 크기를 떠올리고, 스케치업으로 정확한 사이즈를 잡아 디자인을 완성한다. 그런 다음 필요한 목재의 사이즈를 확인할 수 있게 집성을 하게 될 개별 목재들을 별도 분리시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페이지에 담아 인쇄를 한다.
이런 식이다.

스케치업으로 완성한 도면

1주차
그걸 들고 공방에 가니, 선생님께서 도면을 보더니 기다란 제재목 세 개와 다소 짧은 제재목 하나를 내준다. 그리곤 말한다. 어떻게 재단할지 생각해 보세요.
그래 한참을 제재목을 보며 머릴 굴린다. 이건 이렇게 잘라 상판으로 하고, 저건 저렇게 잘라 다리로 한 다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다 목재를 해체시키면 연귀짜임 벤치의 멋인 결을 살릴 수가 없다.
그 얘길 선생님께 했더니 '그 말'을 기다렸다며,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하기엔 목재 다루기가 쉽지 않겠지만 결을 살리겠다면 한 번 해 보라고 했다. 하긴 기껏해야 500 정도 길이의 목재만 대패로 다루다가 이번엔 한 번에 2000이 넘는 목재를 기계로 다뤄야 하니, 만만하진 않겠지. 하지만 작업의 방향이 서니 이번엔 전체적인 윤곽이 먼저 머릿속으로 달려들었다.
먼저 결을 살리며 원하는 너비를 얻기 위해 제재목 세 개는 그대로 집성해야 하고, 추가로 주어진 하나의 목재는 상판의 하중을 지지하기 위한 보로 쓴다. 그리고 기왕 결을 살리기로 한 거, 완성 되었을 때 보다 나은 무늬를 얻기 위해 작업대 위에 제재목 세 개를 올려놓고 요리조리 위치를 바꿔가며 고민을 이어간다. 이 과정이, 어떻게 집성을 할지, 각각의 제재목이 놓이는 위치를 얻기 위한 선택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최선의 답은 각자의 취향이기에, 온전히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지만.
결정을 하고! 설계한 두께로 만들기 위해 먼저 수압대패로 한쪽 면을 잡는다. 작업은 일단 단순해서, 제재목 세 개의 작업은 동일하다. 하지만 2미터가 넘는 목재를 수압대패로 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목재가 휘어있어, 약간의 요령이 없으면 굉장히 더딘 작업이 될 수도 있다.

2주차 
이번엔 자동대패로 반대쪽 면을 잡을 차례. 역시 목재의 길이가 작업에 장애요소였다. 수치를 잡아가며, 세 개의 제재목을 번갈아 자동대패에 밀어넣으면, 반대편에서 선생님이 목재를 잡아두는 식이다. 이 작업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두께가 잡힌 제재목 세 개를 집성하기 위해 수압대패로 집성될 면도 같이 잡게 되는데, 막상 대패 작업을 하고 작업대에 제재목을 놓고 집성할 면을 맞대 보니, 아뿔싸 틈이 생긴다. 그래 다시 수압대패로 면을 잡는데, 해도 해도 잡히지 않는다.

3주차
어떻게든 오늘은 면을 잡고 집성을 합시다, 라고 선생님은 작업 시작 전에 내게 말했지만, 여전히 면은 잡히지 않고, 틈이 벌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한다. 여러 갈래로 원인을 추측하고 방식을 바꿔 면을 잡아보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는다. 결국 보다 못한 선생님이 팔을 걷어붙이고 대패 작업을 조금 하더니, 이 정도면 되겠다 한다. 그래 드디어 집성.
비스킷 끼울 위치를 표시하고, 홈을 만든다음 본드를 바르고 집성. 클램프로 잡아둔 다음, 남은 제재목 하나로 보 작업을 하려는 내게 선생님은 보 작업은 급하지 않으니 장부를 딸 지그를 만들라 하신다. 그러니까 보가 다리와 만날 지점에 암장부를 만들기 위한 틀을 짜두잔 얘기다. 작업은 어렵지 않다. 장부 작업을 하게 될 트리머가 다닐 길을 만드는 게 목적인데, 합판을 직각을 유지한 채 트리머 날 두께를 고려한 암장부의 크기로 틀을 만들면 된다. 날 두께는 한쪽이 2밀리이니, 직사각형의 암장부 크기가 지그에서는 가로 세로 4밀리씩 크게 된다.

4주차 
지난 주에 집성해둔 목재는 클램프를 제거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집성된 목재 간 단차가 제법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비스킷을 똑같은 깊이에 심었으니 단차는 없어야 하는데, 대패 작업의 오류의 결과인지, 유독 단차가 심한 부분이 있었다. 이걸 잡아야 했다. 노출되는 면은 마지막에 하면 되니, 결과물에서는 잘 보이지 않게 될 안쪽 면의 단차를 대팻날과 샌딩기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잡아나갔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더디기도 하고, 공을 들인 만큼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작업이기도 했다. 여전히 집성된 목재는 2미터가 넘었고, 어라, 너비는 집성하기 전 반복된 수압대패 작업 때문인지 양 끝단의 길이가 달랐다.
단차를 얼추 잡고는, 슬라이딩 테이블쏘의 톱날을 45도로 기울인 다음 목재를 삼등분했다.

5주차 
과정 하나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이제는 좀 더 디테일한 작업으로 들어간다. 우선 이미 만들어둔 지그를 이용해 양쪽 다리가 될 부분에 위치를 잡고 트리머로 암장부를 따냈다. 암장부 위치에 오차가 있으면 상판의 하중을 지지해야 할 보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될 수도 있기에, 위치를 거듭 확인한 뒤 작업 완료. 그러고는 수압, 자동대패로 보의 두께를 잡고, 숫장부 길이를 고려해 테이블쏘로 재단한 뒤 테이블쏘의 톱날 높이를 조정한 다음 숫장부를 땄다. 따는 중간 중간 암장부와 맞춰보며 오차를 줄이는 과정이 수반되었다.

6주차 
지그 크기에 약간의 오차가 있어 장부의 수치를 수정해야 했다. 숫장부의 길이도 잡고, 두께도 조금 더 다듬은 다음 암장부와 잘 맞는지 체크했다. 그러고 나서 전체적으로 잘 맞는지 보기 위해 비스킷으로 연결 부위 작업을 한 후 가집성을 했다. 대체로 잘 맞았다.
트리머 작업이 하나 더 남았다. 다리 하단부. 처음에 설계를 할 땐 생각하지 못했다가 공방에 있는 벤치를 보고 설계에 반영한 건데, 소위 꽉막힌 ㄷ벤치의 답답함을 줄일 수 있는 요소였다. 다리 폭 양쪽 90밀리 안쪽으로, 15밀리 정도의 깊이로 다리 하단부를 따내기 위해 간단한 지그를 만든 다음 라우터로 따냈다. 그런데 라우터는 트리머보다 두꺼운 날 두께가 말해주듯, 밀 때 드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거의 몸으로 밀 듯 해야 했는데, 그래도 나가는 속도가 더뎌 잘린 면이 검게 타버렸다. 잘 보이지 않는 면이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7주차 
이제 작업이 막바지다. 최종 집성을 하기 전, 보를 비롯해 집성을 하면 작업이 어려울 안쪽 면을 샌딩기로 거듭 마감을 했다. 처음엔 120방으로, 그 다음엔 320방으로. 약간 신경 쓰이는 단차는 대팻날로 조금 더 잡으려 했으나 작업이 막바지라는 점, 어차피 안쪽 면이라는 점이 완성도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했다.
드디어 집성이다. 긴장 또 긴장. 장부 작업을 할 때 마무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보의 숫장부 양쪽 길이에 조금 차이가 생겼는데, 그래서 장부의 위치가 바뀌면 곤란했다. 그래 표시를 한다고 보에는 분필로, 암장부 쪽에는 샤프로 번호를 매겨놨는데, 이런, 막상 하얀색 목공 본드를 바르니 보에 있는 분필 표시가 확인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몹시 당황했고, 집성을 도운 선생님은 손으로 본드 자국을 밀어내 보았지만 그래도 표시가 보이지 않자 맞춰 보자며 보를 암장부 양쪽 직접 끼워보며 결국 위치를 찾아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미 본드가 마르고 있었다. 서둘러 집성을 해야 했다. 먼저 다리와 보의 장부를 잡고, 완전히 결합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상판을 맞췄다. 모든 결합부가 맞는 것을 확인한 뒤 미리 준비해둔 클램프로 가로, 세로, 높이를 잡아가며 조이기 시작했다. 연귀는 클램프 작업이 중요하다고, 선생님께서 누누이 강조하던 그 작업이었다. 긴장도 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가 우왕좌왕 하는 사이, 선생님은 신속하게 위치를 잡아가며 내게 보조 작업을 지시했다. 선생님이 클램프의 한쪽을 잡으면 내가 반대편을 맞춰 잡는 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연귀 부분을 다 잡고 보니, 보가 상판과 2~3밀리 정도는 떠 있었다. 클램프 하나가 추가로 동원되었다. 상판 가운데를 가로질러, 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집성 작업이 끝났다. 아니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집성 부위 바깥으로 밀려난 본드를 제거하는 일. 이걸 제거하지 않으면 나중에 마감 작업을 할 때 그 부위는 오일이 먹히질 않아 표가 난다.

8주차 
두 달에 걸친 작업의 마지막 날. 공방에 도착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사실 지난 주 집성을 했을 때 내심 연귀 짜임 부분의 틈이 생긴 게 제법 신경이 쓰였었는데, 웬걸 클램프가 제거된 나의 벤치는 생각보다(?) 아니 꽤나 잘 집성이 되어 있었다. 연귀 부분도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고, 마지막에 추가로 댄 클램프 덕분에 보도 상판에 잘 붙어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마감 작업을 위해 먼저 대팻날을 꺼내들어야 했다. 노출되고 직접적으로 신체와 닿는 상판의 남은 단차를 없어야 했기 때문에. 그래 대팻날로 단차 부위를 긁어내며 거듭 손으로 단차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오랜 작업 시간 동안 목재가 변형된 부분도 감안해야 했다. 600짜리 철자를 상판에 얹어보니, 예상은 했지만 상판은 이미 완전한 평면이 아니었다. 하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는 물론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좀 더 대패 작업을 한 뒤, 샌딩기로 120방, 320방 사포를 연이어 사용하며 마감 작업을 했다.
콤프레셔로 찌꺼기를 제거한 뒤 두 번의 오일 작업. 드디어 끝났다.

오일이 마르기 전 차에 실어 집에 가져오자마자 마른 헝겁으로 표면에 남은 거친 오일 자국을 닦아냈다. 그리고 벤치가 사용될 2층 서재로 옮겨 남은 오일을 말렸다.

서재에 놓인 ㄷ벤치

결이 무너지지 않게 하고 싶었다

안쪽은 새까맣게 타버린 하단부

고르고 고른 결의 배치

상판 밑엔 보가 있다


2016/09/21

열병을 털어내고 찾아온, 
온이의 백일 



오랜만에 생두를 샀다. 그리고 로스팅. 예가체프 110그램 정도.
반 노동에 가까운 직화 로스팅엔 많은 변수가 있겠지만,
생두마다 팝핑의 정도나 시기가 어쩜 그렇게 다른지.
그리고 이론상으로 불리는 1차 팝핑이니, 2차 팝핑은 실제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팔을 휘젓다 보면 감각이 무뎌지고 얼른 커피가 볶였으면 하는 마음에 구분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 조금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1차 팝핑이 따가울 정도로 쏘는 소리가 드문드문 간헐적으로 난다면,
2차 팝핑은 이제는 뜨거워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정신없이 발사되듯 터지는 소리가 난다.

바야흐로 따뜻한 커피의 계절이 돌아왔다.

2016/09/03

언니네 이발관이 새 앨범 녹음에 들어갔다.
5집 '가장 보통의 존재'이후 얼마 만인지. 그 동안 이석원은 세 권의 책을 냈다.
이석원이 매번 마지막 앨범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신보를 접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새 앨범을 기다린다.



이날, 제주 중산간에서 울려 퍼지던 소리는 어찌나 맑고 선선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