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9

이숲생활

이하hija는 에스파뇰로 딸이란 뜻이다.

우리가 결혼을 앞두고 여행을 남미로 가면 어떨까 하고, 무작정 합정동에 있는 '가장자리'에서 에스파뇰을 배울 때였다. 한 권의 책을 같이 보며, 게으르게 수업에 참여했었는데, 어느날 수업시간에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이하hija와 이호hijo였다. 딸과 아들. 그때 이하의 태명은 정해졌다. (나중에 이하가 알면 서운해 하겠지만, 사실 성별을 알기 전까지는 이호라 칭했었다.)
출산에 너무 임박하지 않게 이사를 하기 위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고 3월에 이사하기까지, 처음엔 나름 고향 다음으로 오래 살았던 서울을 떠나는 게 어쩐지 서운했었는데 막상 이삿날이 되자 어서 빨리 지긋지긋한 이삿짐 정리를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사를 하게 된 동네는, 거의 의도적이었지만 처형네 집과 아주 가깝고, 기적적으로 자연 공원이 가까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맛이 있었다. 그리고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새로 이사하게 될 집에 이름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숲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와 이하를 낳고 자라는 모습을 보게 될 터이니 '이'를 붙이고 싶었고, 숲이 가까우니 이숲. 간단하고 부르기 쉽고 무엇보다 어감이 맘에 들었다. 비록 빌려 사용하는 집이지만, 우리만의 이름을 짓고 칭하며 사니 금세 친구처럼 친숙해진다.

그리고 이사를 온 지 석 달 후에 이하가 태어났다. 이제 날이 밝으면 조리원에서 퇴실하고, 본격적인 이숲생활이 시작된다. 이하와 함께.

2016/06/25



이하는 잘 먹고 잘 싼다.

대참사의 날.


이숲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개인생활로 시작한 게 목공.
소박하고 작은 재주 정도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다행히 아직은 재미가 있다.
시작하고 처음 만든 스툴.
스툴이라 부르지 못하는,


뭐든, 해 보고 나면 달라보이는 것.
목공을 시작하고 지금껏 손쉽게 지나치고,
그저 취향대로만 가구를 분류하곤 했던 내가
이제는 사소한 디자인 하나 하나가 새롭게 보인다.
김광석이 그랬던가, 딸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거리에 사람들이
쉽게 보이지 않더라고.



이 작은 발로,
어디 가려니 이하야.

2016/06/19

당신, 이라는 문장

매일같이 당신을 중얼거립니다 나와 당신이 하나의 문장이었으면 나는 당신과 하나의 문장에서 살고 싶습니다 몇 개의 간단한 문장 부호로 수식하는 것 말고 우리에게는 인용도 참조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도치와 철지난 은유로 싱거운 농담을 하면서 매일같이 당신을 씁니다 어느 날 당신은 마침표와 동시에 다시 시작되기도 하고 언제는 아주 끝난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나는 뜨겁고 맛있는 문장을 지어 되도록 끼니는 거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신이 없는 문장은 쓰는 대로 서랍에 넣어두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맨 아래 칸은 비우던 기억이 납니다 영영 못 쓰게 되어버린 열쇠 제목이 지워진 영화표 가버린 봄날의 고궁 입장권 일회용 카메라 말린 꽃잎 따위를 찾아냈습니다 이제 맨 아래 서랍이라면 한사코 비어 있길 바라지만 오늘도 한참을 머뭇거리다 당신 옆에 쉼표를 놓아 두었습니다 나는 다음 칸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쉼표처럼 웅크려 앉는 당신 그보다 먼저는 아주 작고 동그란 점에서 시작되었을 당신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시작되는 문장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있고 쉼표가 있고 그 옆에 내가 있는 문장 나와 당신 말고는 누구도 쓴 적이 없는 문장을 더는 읽을 수 없는 곳에서 나는 깜빡이고 있습니다 거기서 한참 아득해져 있나요 맨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당신, 
유진목, <연애의 책>, 삼인 

한 권의 시집을 통째 읽는 맛이, 오랜만이어서 얼마나 달던지.
그렇게 달고 좋아서 오히려 눈물겹다.

피그말리온, 조지 버나드 쇼

히긴스: 알파벳을 발음해 봐. 
리자: 알파벳은 나도 알아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세요? 어린애를 가르치듯이 할 필요 없어요.
히긴스: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알파벳을 발음해 보라고.
피커링: 해봐요, 둘리틀 양, 곧 이해하게 될 거야.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해요. 선생님 방식대로 가르치게 해요.  
리자: 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아이, 버이, 커이, 더이 -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열린책들, 2011)은 알파벳을 '아이, 버이, 커이, 더이 -'로 발음하던 일라이자를 음성학자 히긴스가 불과 몇 개월을 가르침으로써 상류층이 즐비한 가든파티에서 멋진 숙녀 행세를 할 수 있게 된 이야기다. 만일 이 같은 '성공'을 끝으로 희곡이 마무리되었다면 싱겁지 그지없었겠지만, 쇼는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다. 그리고 다수가 원하는 방식 즉,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해피 엔딩' - 히긴스와 리자의 사랑 -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도 않았다. 대신 히긴스와의 수업을 통해 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 일라이자의 변화된 모습을 바탕으로 영국 사회를 비롯해 인간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여지를 남겨두었다. 

리자: 난 약간의 친절을 원해요. 난 천하고 무식한 아이고, 당신은 유식한 신사인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당신 발톱의 때는 아니에요. 내가 그 일을 했는데, (자신의 표현을 바로 잡으며) 내가 그 일을 했던 건 옷을 얻거나 택시를 타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우리가 같이 있으면 즐겁고, 내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좋아하게 돼서 했던 거예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기를 원했던 것도 아니고 우리가 신분이 다르다는 걸 잊은 것도 아니에요. 단지 더 친해졌으면 했던 거예요. 
리자: 아, 당신은 잔인한 폭군이에요. 당신하고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당신은 모든 걸 나한테 불리하게 바꿔 놓아요. 나는 항상 잘못한 거죠. 하지만 당신도 자신이 남을 괴롭히는 폭군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죠. 내가 당신이 말하는 그 시궁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당신도 알잖아요.  그리고 세상에 당신하고 대령님 말고는 진정한 친구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두 분을 만난 후에 내가 미천한 남자와 같이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척하면서 나를 모욕하는 건 사악하고 잔인한 거예요. 내가 아버지 집 말고는 갈 데가 없으니까 윔폴 거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나를 발밑에 두고 짓밟고 무시해도 된다고 확신하지는 마세요. 난 프레디랑 결혼하겠어요. 내가 그를 부양할 수 있게 되면 바로요. 

2016/06/17

조리원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갑갑하지만,
신생아실이 소독하는 시간 - 18:30~20:30 - 에
우리 방에 와 있는 이하를 돌보는 동안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선잠이 들었다 짜증 섞인 투로 울며 깨며를 반복하다
신생아실로 돌아갔다.

2016년 6월 14일 저녁 8시 48분
이하hija가 태어났다.

2016/06/05

십일 년 전, 먼 땅 인도에서 만나 지금껏 만남을 이어오던 홍과 정민이 어제 결혼식을 올렸다. 얼마나 많은 시간의 겹이 그들에게 쌓였는가. 남은 인도팀의 일원인 우리에게는 그들의 행복한 여정이 참으로 다행이고 기쁨이다. 그건 그렇고 그들이 결혼식 2부로 마련한 서면의 공간 The Brick House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비가 내려서 정원을 한껏 활용하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날씨가 그렇다면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고, 그곳에서의 흥취를 견디지 못한 나는 열차표를 뒤로 미뤄야 했다. 비록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살가움을 느꼈다. 축복된 공기를 흐름을 느꼈다. 앞으로의 그들 삶 앞에도 그와 같은 흐름이 자주 찾아오길.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운동 시합이란 자주 개인의 사소한 대립이나 이해관계를 넘어 어떤 맹목적인 집단 의지 같은 것을 형성하는 데엔 큰 공헌을 하는 수가 있다. 거대하고 맹목적인 집단 의지 속에 잡다한 개인의 불평이나 의식의 편향 같은 건 일거에 깨끗이 해소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가끔 특정 집단의 작은 불평이나 이해 갈등을 해소시키고 그 집단에게 목적하는바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엉뚱한 스포츠 행사를 이용하는 수가 있다. 그야 물론 모든 스포츠 행사가 그 스포츠 고유의 목적 이외에 여러 가지 다른 부수적인 의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당연했다. 이 섬에 대해 말한다면 원장은 그 스포츠 행사를 통해 원생 개개인 간 또는 병사 지대와 직원 지대 간의, 원장과 원생들 간의 인간적인 신뢰감을 회복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에 대한 투철한 자신감을 길러주는 데에 보다 큰 목적이 있었다. 조원장 자신이 한 말이었다. 하지만 원장의 동기가 어디에 있었든 상욱은 역시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151쪽, 문학과지성사

몇 년 전에 읽으려고 사둔 책을 최근 몇 달 사이 김현의 전집을 이리저리 들춰보다가 자주 눈에 띈 이청준이라는 이름 때문에 겨우 집어들어 읽게 되었다. 독서는 많은 경우 이런 식이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경우의 독서는 '적중'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었지만 살아도 알지 못했을 시절 5공이 펼친 3S정책을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5공뿐이랴. 지금도 간혹 나는 '국가대표'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스포츠의 막강한 힘을 볼 때면 어안이 벙벙해지고 만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 자신도 거기에 편승하고 있는 게 확실한 가슴 뜀을 느끼며 진실로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이름의 집단에 몸서리를 치고 만다. 별 수 없는 일일까. 

1960년, 같은 교양학부 강의실에서 1년을 함께 보냈는데도, 그때의 그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내 기억 속에 떠오르는 그는 김승옥이 자취하고 있던 성북동 산기슭의 허름한 집의 자취방 윗목에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던 그이다. 학보로 군대를 갔다가 제대한 뒤 며칠 되지 않아서였다. 우리가 그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 속에 자기가 지켜야 할 무슨 엄청난 것이라도 간직한 듯,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서로들 가능하면 말을 삼가려 하고 있었던 시기라, 자신들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여서 근 20여 년을 사귀어오면서도 나는 그가 그의 글 속에 피력한 과거 외에는 그의 과거를 거의 모른다. 그때 우리는 아마 소주를 마시며 그 당시에 발표되던 소설 얘기를 했을 것이다. 
20여 년간 그와 사귀어오면서, 아니 그와 술을 마셔오면서 내가 언제나 그의 의견에 승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와 여러 번 다퉜고 그 다툼을 때로는 절교 상태로까지 우리의 관계를 몰고 갔다. 그때마다 그는 작품으로써 다시 그의 의견을 나에게 되물었다. 때로 그 작품들은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였고 때로는 나를 더욱 실망시키기도 하였다. 한 호로서 창간과 동시에 종간이 되어버린 <68문학>을 내놓고 그것의 앞날의 방향에 대해 심한 논쟁을 한 끝에 너는 내 친구가 아니다라는 말을 서로 퍼붓고 헤어진 후 거의 1년이 넘어서 그는 나에게 <소문의 벽>을 보여줬다. 그것을 읽고 나는 감동했다. 우리의 우정은 그때 다시 살아났다. 나는 그와 같은 작가를 친구로 갖고 있는 게 즐겁다. 그는 언제나 작품으로써 질문에 대답하는 그런 작가이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다음과 같은 문학이다.
문학은 언제나 자유롭고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의 삶과 세계를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힘이 없이 총체적인 넓이로 바라보고 경험하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삶을 그 삶의 본래의 모습으로 자유롭게 되돌아가 살게 하여야 한다.
김현, <문학과 유토피아> 242~245쪽, 문학과지성사, 이청준에 대한 세 편의 글 '욕망과 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