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6

밤이 내리고 있었다

이것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소설은 히말라야를 걷는 동안 읽은 김화영의 산문집 <바람을 담는 집>에서 알게 돼 돌아오면 읽어야지 했던 것인데, 마침(?) 모디아노가 노벨상을 수상하며 어느새 국내 서점가에도 전면에 등장해 있었다. 이것도 인연이라 해야 할지. 
김화영의 산문집을 읽으며 여행기는 물론 글쓰기 자체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산문집 세 권을 연달아 읽었던 것이기도 하고. 그는 언제까지나 나에게 카뮈 연구가로서 그의 전집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불문학자 정도로만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번역한 다른 책들, 이를테면 장 그르니에의 <섬>이나,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등을 읽으면서 유독 눈에 띄는 문체 스타일에 주목하게 되었다. 비록 번역서이긴 하지만 번역의 매끄러움이 남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역자 후기 따위에 실리는, 후다닥 읽어내려갈 수 없는 문장의 성질은 그의 글에 주목할 만한 계기를 주기에 늘 충분했다. 
그리고 나름 결론을 내렸다. 이는 올 봄 무렵 있었던 <이방인> 번역 논쟁에 관한 것인데, 그의 번역이 소설 원문의 충실한 번역이냐 아니냐, 라는 팩트의 문제를 떠나 그는 단연코 직역을 할 수 없는 번역가라는 확신이었다. 차라리 그처럼 문장을 유려하게 끌고 나갈 수 있다면, 일정 부분의 의역은 감수하고서라도 그가 번역한 책을 읽고 싶을 정도였다. 그럴 만큼 그의 글은 좋다. 흉내내고 싶을 만큼 좋은 문장도 참으로 많이 있다. 특히나 놀랐던 건, 일찍이 생을 마감한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이었다. 그는 서른 초반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혜린이 남긴 무분별한 원고들을 추스려 책의 형태를 갖출 수 있게 했고, 책이 좀 더 세간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서문을 그럴 듯하게 쓴 다음에 은사인 이어령 선생을 찾아가 서명을 받을 수 있게끔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 전혜린의 유고는 그의 예상대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지금은 원주에 있는 오크밸리다. 아침 일찍 광화문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교보에 들러 無에게 줄 서태지 앨범과 늘 사기를 갈망하던 키스 자렛의 음반 두 개를 샀다. 키스 자렛. 일생에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만일 오더라도, 그 기회를 좀 더 극적으로 붙잡기 위해 그의 음악을 더 많이 접하여 그에게 친숙해지고 그렇게 진정한 팬이 되도록 하자. 그러니 이것은 가정이고 그래서 미래다. 불확실하다. 확실하고 분명한 건 그에게 왠지 끌린다는 것과 그래서 앨범을 두 장이나 샀다는 것. 들어보자. 그런데 바로 오리로 가려고 했는데 리코를 깜빡해서 다시 집으로 갔다 와야 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분당에 가니 12시가 다 되었고, 자동차 검사를 받고 출발을 해서 이곳에는 네시 무렵에 도착을 했다.
문막IC를 빠져나와 산속으로 점점 들어가니 가을이 더욱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계절을 실감하며 천천히 달리다 보니 광활한 오크밸리 부지가 한눈에 시야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다가왔다. 
겨울철이 되면 북적일 스키장 주변은 음산할 정도로 삭막했다. 문을 굳게 닫은 렌탈숍들, 그와 닮은 겨울용 식당들, 눈이 없어 더욱 흉측한 스키장의 코스들, 대자연 속에 방부제를 가득 넣은 음식마냥 꼿꼿하게 제 색을 유지하고 있는 골프장, 한적한 분위기와 사람들. 이러한 풍경들을 스치며 오르막을 오르려는데 막 서쪽 하늘로 곤두박질치는 태양의 빛이 수평으로 쏟아졌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골프장의 나무들 사이로 빛이 거대하게 밀려오고, 나무에 막힌 빛들은 기다란 그림자가 되어 빛의 빛을 은은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이런 자연의 낭만을 나는 언제나 사랑한다. 또 사랑한다. 그래서 기어코 차를 세워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곳은 조각공원과 인접해 있어 창밖으로 삼삼오오 짝을 이뤄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안과 밖. 안에서 나는 언제나 밖을 꿈꾼다. 밖에서는 결코 안을 꿈꾸지 않지만. 
방에 한 시간 정도 머무르다가 밖으로 나가 이미 저문 해의 언저리를 반복해 바라보며 산책을 했다. 밖이 어두워지는 속도는 우리의 걸음의 속도를 금세 앞질러 어느새 저 먼 산의 이어지는 능선들이 더욱 뚜렷하게 윤곽을 지어냈고, 화창했더라면 더욱 빛났을 단풍나무들을 그토록 애잔하고 쓸쓸한 겨울나무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저녁이 왔다. 
저녁은 사 먹어야 했기에 식당을 찾았다. 아침용으로 문을 닫고 있는 베이커리에서 빵 두 개를 사고, 사실상 하나뿐인 식당 ‘가림’으로 가 대구 지리를 시켜 미나리를 추가하는 열정까지 보이며 배불리 먹었다. 그만큼 맛도 깨끗하고 좋았다. 지리여, 사랑한다. 
밥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이곳은 강원도였다. 계절로써 분명하게 자각하는 강원도였다. 게다가 깊숙한 산골 아닌가. 비록 이토록 거대한 인공이긴 하지만, 자연이 가까운 산골, 강원도다. 
無가 센스 있게 준비해온 와인을 마시기 전, 각자 시선을 달리한 채 나는 이렇게 일기를 쓰고 無는 내가 읽어보라고 준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아, 우리가 같이 하는 게 있다. 공간과 이 공간에 울려퍼지는 키스 자렛의 연주를 무의식 중에 듣는 일.


2014. 10. 24. 오크밸리, 원주

마르셀 프루스트와 갈리마르

1913년 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갈리마르 부부가 눈 덮인 산간의 별장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파리 사무실에서 연장 배달된 우편물 속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편지 두 통이 끼여 있었다. 수년 전 시골집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했을 때 좋은 인상을 받을 적이 있었던 작가 프루스트가 각기 550페이지에 달하는 두 권의 책을 갈리마르 사에서 출판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프루스트는 갈리마르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크 코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의 독자, 내 책의 출판인이 갈리마르씨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당신에게서 전해 듣고부터 내 작품이 NRF에 나온다는 것이 더욱더 매력 있게 느껴집니다. 나는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해서 몹시 좋은 기억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탓인지 출판인과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덜컥 겁을 집어먹고 있는 터라 그 분이 만약 출판인이 되어준다면 만사가 간단하고 매력 있어질 것입니다.” 
마침내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두꺼운 노트 뭉치를 갈리마르에게 건넸다. 슐룸베르제의 집에서 갖는 목요일 모임에 참석한 편집위원들의 의견 : 
- 갈리마르가 가져온 노트 뭉치는 어때? 
- 온통 공작부인들로 가득 찬 얘기야… 우리한테는 안 맞아. 게다가 <피가로>지 편집국장 칼메트에게 바친 책이라니… 
이 같은 부정적인 평은 앙드레 지드의 입에서 나왔다고 전해진다. 가스통은 노트 뭉치를 프루스트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작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소개받은 젊은 출판업자 베르나르 그라세는 그 방대한 분량의 원고를 읽어보지도 않은 채 출판할 것을 수락했다. 왜냐하면 출판에 따르는 상업적 위험부담은 작가 쪽에서 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즉 자비출판이었던 것이다. 
1913년말에 이리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권인 <스왕가 편>이 나왔다. 대체로 호평이었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1914년 <NRF>지 1월호에 실린 앙리 게옹의 서평이었다. 그는 리비에르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전했고 리비에르는 또 지드에게 그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이 어떨지를 물어보았다. 갈리마르와 리비에르는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쇄되어 나온 책을 다시 한 번 읽은 지드 자신도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했다. 그는 프루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이 책의 출판을 거절한 것은 NRF의 가장 심각한 오류로 남을 것이요, 내 생애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와 아쉬움들 중 하나로 남을 것입니다.” 잘못은 저질렀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갈리마르가 나설 차례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소설의 첫 권이 자비출판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프루스트는 아직 그라세에게 매인 작가가 아니었다. 
프루스트 사건은 가스통 갈리마르가 동업자, 즉 잠재적 경쟁자에게서 작가를 빼돌리기 위한 최초의, 그리고 가장 성공적인 시도로 기록된다. 이제부터는 처녀작 속에서 엿보이는 젊은 재능이 갈리마르의 사활을 결정하게 된다. 최고의 작가가 NRF 아닌 다른 곳에서 책을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프루스트의 허락을 받은 가스통 갈리마르는, 처음으로 베르나르 그라세에게 편지를 썼다. 1917년 10월 15일. “마르셀 프루스트씨의 출판인 자격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모든 연작들을 완간중에 있는 본인은 작가의 동의를 얻어 귀사에 남아 있는 <스왕가 편>의 모든 재고분을 매입코자 합니다.” 이 기회에 두 출판업자는 처음으로 서로 만났다. 두 사람의 세기적인 라이벌 관계는 여기서 막을 올린다. 
갈리마르가 그라세에서 인수한 약 600권에 달하는 프루스트의 <스왕가 편> 재고분의 가격은 호된 것이었다. 그러나 갈리마르는 그 문제를 깨끗이 정리하고 싶었다. 이리하여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그 자리인 생페르 가의 그라세 출판사에서 마담 가의 갈리마르 사로 손수레 한 대가 수십 킬로그램의 <스왕가 편> 재고분을 운반해 왔다. 갈리마르는 즉시 그라세의 표지들을 뜯어내고 NRF의 표지로 교체했다. 
파리 장안에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라세는 “작가의 장래성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자에게 양보함으로써 프루스트를 놓쳐버린 출판업자"라는 명예롭지 못한 구설수였다. 그라세는 일생을 두고 이 소문을 부인하려고 애를 썼다. 작품의 길이가 너무 길었고 제작비가 많이 드는 일이었으므로 자비출판은 불가피했다. 1차대전만 아니었더라면 조판이 거의 끝나가고 있던 후속작품인 <게르망트가 편>도 곧 나왔을 것이다. 이것이 그라세의 변이다. 한편 갈리마르는 일생을 두고 강조했다. 내가 프루스트를 먼저 알았다(1907년 블롱빌). NRF가 원고를 거절한 것은 유감스러운 오해 때문이었다. 아직 역사가 일천하고 출판사의 조직상태가 허술했던 탓이다. 하여간 프루스트 에피소드는 이 두 출판사의 역사에서 길이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들의 치열한 경쟁은 바로 이 1917년 10월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제 프루스트는 갈리마르의 작가가 되었다. 1919년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의 <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가 나왔다. <스왕가 편>에 필적하는 성공이었지만 작가에게나 출판인에게나 다같이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오직 공쿠르 상만이 독자들에게 그 길고 어려운 작품을 먹혀들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과연 이 작품은 길고 어려웠다. 74세의 아나톨 프랑스는 이 소설을 받아들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인생은 너무 짧고 프루스트는 너무 길도다…” 
그러나 이 너무 긴 소설이 1919년 공쿠르 상 수상작으로 지명되었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프루스트의 집으로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은 물론 가스통 갈리마르였다. 이 책의 초판은 며칠 안에 다 품절되었다. 갈리마르는 수상소식을 들은 지 열흘 만에 가까스로 재판을 찍어 공급할 수 있었다. 재판에는 NRF 역사상 최초로 ‘공쿠르 상’이라는 붉은 띠가 둘러져서 서점에 진열되었다. <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의 성공을 기점으로 하여 갈리마르 사는 1920년대의 호황을 맞게 된다. 라스파이유 대로에서 직영하는 대형서점을 연 것도 이때이고, NRF와 병행하여 <라 르뷔 뮈지칼>이라는 음악잡지를 창간하게 된 것도 이때다.

<바람을 담는 집> 김화영, 문학동네, 1996 

2014/10/15

눈먼 자들의 국가

그렇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박민규의 글도 힘주어 말하고 있지만, 나는 서사론 강의의 도입부에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좋은 이야기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을 다룬다. 사고는 ‘사실’과 관계하는, ‘처리’와 ‘복구’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사건이 정말 사건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산출한다.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때 해야 할 일은 그 진실과 대면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는 사건, 진실, 응답의 구조를 갖는다. 4월 16일에 일어난 일은 ‘세월호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대한민국의 진실을 못 본 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의 주인공이 진실에 응답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시해질 뿐이지만, 우리가 그런 일을 하면 죽은 사람들이 한 번 더 죽는다.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불법이다. 같은 사람을 두 번 죽이기 전에 이 불법 정부는 기소되어야 한다. 
사고와 사건을 구별하면서 시작되는 나의 서사론 강의는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서 끝난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다.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 한정돼 있으니 느낄 수 있는 감정도 제한돼 있다. 그때 문학작품의 독서는 감정의 시뮬레이션 실험일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살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솟구치지는 않았으니 그 감정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아니면 그 감정에 가까이 다가갈 방법이 없다. 예컨데 자식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진상을 알 수 없고 시신도 찾을 수 없을 때 사람이 느끼는 감정 같은 것. 인간은 무능해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고 또 인간은 나약해서 일시적인 공감도 점차 흐릿해진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정부가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려고 할 때, 그런 말들은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죽이려 든다. 
요컨데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좋은 문학이 언제나 해온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말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4월 16일의 참사 이후, 상황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실은 수장될 위기에 처했고, 슬픔은 거리에서 조롱받는 중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모두 세월호 참사 이후 출간된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것들이다.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과 사회과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숙연한 열정으로 써내려간 이 글들이 더 많은 분들에게 신속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다급한 심정 속에서 이 단행본을 엮는다. 이 책은 얇지만 무거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진실과 슬픔의 무게다.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픔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제 이 책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눈먼 자들의 국가> 신형철, 문학동네


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눈에 띈 책이 이것이다. 주문한 책을 퇴근길에 경비실에서 찾아 집에 들어와 포장을 뜯고 우선 이 부분을 읽었다. 그리고 박민규의 글을 읽었다. 피곤했고 어서 씻고 자고 싶은데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어느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흐느껴 한참을 울었다. 안되겠다 싶어 씻으러 들어간 욕실에 주저앉아 또 흐느껴 울었다. 대체, 이토록 잔인한 '사건'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사고는 물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은 사고 이후에 일어난다. 박민규도 말했지만 이는 뺑소니를 생각해 보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모호한 '사건' 앞에 어리둥절하게 서 있다. 사고는 이미 일어났다. 하지만 사고는 물론 사건 또한 여전히 생생하게 우리 눈앞에 살아있다. 사고를 수습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수습하지 못하고(혹 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왜곡하거나 다른 의도의 옷을 입히는 것은 그 순간 사건이 된다. 그래서 사건은 분노를 일으킨다. 그러나 사건의 주체는 사건을 사고의 구석으로 몰아간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얇은 이 책을 읽어나갈 심정이 벌써부터 참담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딛고 일어서야 할, 그래서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숙연해져야 한다.